먹어낸다는 말

by 김민

엄마는 이번 주말에도 음식을 만들어 두고 가셨다. 시락국에 김치찌개에 제육볶음까지. 이걸 다 먹어낼 수 있겠냐 하시기에 이 정도야 충분히 먹으니 걱정 말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래도 먹어내니 다행이네.” 하셨다. ‘먹어내다.’라는 말이 왠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 깃든 의미는 무엇일까. 한동안 뜻을 헤아리려 애썼으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늘 지인의 유산 소식을 들었고 다른 지인이 내일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아버지의 몸을 태우던 날에도 충무김밥을 먹었고, 연인과 영영 이별한 날에도 술을 마셨다. 사람들은 그래도 먹어야 한다며 내 입에 김밥을 넣어주었고 회를 집어 접시에 올려 주었다. 끼니라는 낱말은 때로 서럽다. 우리가 먹이를 구하지 않으면 생을 이어갈 수 없는 짐승과 다르지 않음을 떠올리게 한다. 하릴없이 새어나가는 생명을 겨우겨우 땜질하며 나아가는 기분이다. 햇살과 물만으로도 당당한 매화 앞에서 삶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먹을 수밖에 없다. 먹어내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먹어낸다는 말은 살아낸다는 뜻이다. 식사는 음식 따위를 입을 통해 배 속에 들여보내는 일이다. 끼니마다 우리는 몸 안에 세상을 들인다. 살아있던 것을 내 몸으로 들여보내 삶을 이어간다. 바닷속에서 춤을 추던 미역을 따다가, 들판에 돋아난 쑥과 냉이를 캐다가, 뜨거운 피를 가진 돼지의 숨을 끊고서, 갯벌에 숨은 바지락을 파내서 식탁에 올리는 것이다. ‘내다’라는 단어는 앞에 나온 행동을 스스로의 힘으로 끝내 이루었다는 뜻이다. 끝내라는 단어를 쓸 만큼 힘이 들었다는 뜻이다.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듯이.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어내듯이. 아픔에 벌벌 떨면서도 밤을 버텨내듯이. 겨울을 버틴 나무가 꽃을 피워내듯이. 우리는 살아있는 것을 먹어 생의 길을 이어간다.


그러니 먹어낸다는 것은 삶을 해낸다는 뜻이다. 살아낼 힘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아직 살아갈 희망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한 끼를 먹어낼 때마다 생은 나아간다. 눈물 젖은 빵도, 서러움에 삼킨 밥도, 쌓여가는 약봉지도 생을 나아가게 만드는 연료다. 모든 끼니는 시간여행자의 도시락이다. 한 끼를 먹을 때마다 우리는 내일로 나아간다. 기름을 넣지 않으면 차가 멈추듯, 먹지 않는 자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먹는다는 행위는 살아내겠다는 선언이다. 내일로 길을 내겠다는 뜻이다. 오늘도 나는 기어코 밥을 지어먹는다. 밤새 불려둔 콩에 쌀을 넣어 씻는다. 전기밥솥은 힘찬 기적 소리를 울리며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갓 지은 밥을 맛본다. 농부의 손길에 감사하며 제 몸을 내어준 열매와 곡식들을 생각한다. 내 생의 제단에 바쳐진 날짐승과 들짐승들을 생각한다. ‘너’의 생명을 취해 ‘나’의 삶을 이어가는데 어찌 함부로 대할까. 한 톨의 쌀도 남기지 아니한다. 한 점의 고기도 허투루 버리지 아니한다. 한 조각의 김치도 그냥 버리지 아니한다. 어떻게든 먹어내려 애쓴다. 엄마는 사람도 버리는데 그깟 음식 하나 버리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하시지만 어찌 그러겠는가.


사람은 햇살과 빗물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너의 생명을 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너의 생명을 취한 값을 치르고 싶지만 어찌 생명에 가격을 매기겠는가. 그저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수밖에. 내게 몸을 바친 생명을 떠올리며 삶을 소중히 끌어안는 수밖에. 살아있던 것을 먹었으니 살리는 삶을 살아가는 수밖에. 높은 곳에 오르고 많은 것을 갖기 위한 삶만은 살지 않으리라. 타인을 해치고 세상을 망치는 행위를 피하려 애쓰리라. 돌 틈 사이 피어난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뽑지 않으리라. 입으로 들어온 것들이 나를 살렸으니 바깥으로 내어놓는 것들도 마땅히 그러해야 하리라. 따스한 말을 건네는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환경을 위해 뭐라도 하고, 또 하지 않는 삶을 살리라. 세상을 위해 뭐라도 하고, 또 하지 않는 삶을 살리라. 너의 생명을 연료 삼아야만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삶이라면 보람된 일을 해야만 하리라. 내게 몇 끼의 식사가 남았을까. 먹어낼 수 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식탁을 치우고 그릇을 씻고 나니 메시지가 몇 개나 와있다. 글쓰기 수업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독립 출판으로 출간한 적이 있으나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그는 꼭 내게 배우고 싶다고 했다. 꽃길을 걷게 할 수는 없으나 끝까지 마음을 다할 수는 있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을 걸고 배우려는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당신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의 궁금증에 답하다 보니 어느새 가슴에 열기가 차올랐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이제야 만나 후회되지만 이제라도 만나 감사하다고 했다. 그래, 글쓰기에 깃든 치유와 성장의 힘을 나누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농부처럼 생명을 키우진 못하지만, 어부처럼 목숨을 걸지는 못하지만,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아픈 이들을 돌보지는 못하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내가 내는 밥값이 될 것이다. 내가 밥을 먹으며 쌓아온 이야기들을 읽는 이들에게 나누어주면 된다. 글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나누어주면 된다.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생명을 나눠주는 일, 먹어낸 것들을 온기로 전환해 타인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야지. 오늘도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린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용기에 답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내게 생명을 내어준 곡식처럼, 꿈꾸는 이들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어갈 연료가 되어주어야지. 꿈은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지켜가는 것이라고, 저 너머의 무지개에 닿지 않아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마다 꽃이라고 말해주어야지. 내게 생명을 내어준 열매처럼 진실한 문장을 써야지. 어디에 있어도 당신의 삶은 빛나고 있다고, 세상이 밀어내도 당신은 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당신은 꽃이고 별이며 초록이라고, 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를 계속해야지. 지금의 한 줄을 위해 여태 살아온 것처럼 써야지.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당신도 꽃이라고 말해줘야지. 허투루 먹지 않으며 헛되이 쓰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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