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새로운 것을

by 김민

올해 계획 중 맨 위에 위치한 것은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다.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창작 활동까지 진행할 수 있다니. 가난한 작가에게 황홀한 꿀물이 아니던가. 이왕이면 도서관이 좋겠다. 그곳에서라면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해볼 수 없었던 것을 얼마든지 실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글쓰기 강연이 가능하고, 글쓰기 정규 수업도 가능하다. 북토크도 환영, 지원만 해준다면 지역을 주제로 글을 써서 문집을 만들 수도 있을 거다. 에세이뿐일까. 시 쓰기 수업도 이미 해본 일이다. 유일한 취미가 읽기에다 독서 에세이도 출간 예정이니 결과물 보고도 어렵지 않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필사나 낭독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가슴 뛰는 일이 될 테지. 도서관은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작가를 얻게 될 테고, 주민들은 글쓰기에 깃든 힘을 느낄 수 있을 테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돈가스를 사 먹을 수 있을 거다. 이번 달 25일에 발표가 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부산이나 경남이면 좋겠지만 다른 지역이라도 너무 멀지만 않으면 가서 살면 그만이다. 제 돈 들여서 한 달 살기도 떠나는데 가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홀가분한 독신 아니던가. 물론 생활비는 꽤 들 테지만 여행이라 생각하면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음 줄에는 <첫 책 쓰기 프로젝트>라고 쓰여 있다. 보통 사람들은 편집자와 작업해 볼 기회가 없다. 작가의 피드백을 받기도 쉽지 않다. 출간 제안서 작성부터 목차 짜기까지 함께 하며 이야기의 뼈대를 잡고 프롤로그와 첫 꼭지를 같이 쓰고 나면 머릿돌은 놓은 셈이다. 3개월에 30만 원. 가격까지 딱 붙여놓은 것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보람과 보상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그었다. 돈만 보고 했다면 설정할 수 없는 가격이다. 그리고 라이팅 클럽 기수를 이어가야지.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도울 것이다. 글쓰기 챌린지도 협업의 형식이건 봉사의 개념이건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다. 부산이나 경남에 위치한 동네서점에서 북토크 제안이 오면 기꺼이 달려갈 것이다. 아직은 머릿속 아이디어로만 존재하지만 맥북토크 (맥주를 마시며 나누는 북토크), 커피 라이팅 (커피 마시며 글쓰기)도 해보고 싶다. 공저 에세이를 기획하고 편집해 보는 것도 꼭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되건 안 되건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 잘 되건 되지 않건 도전은 해봐야 한다.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냥 저질러 보는 거다. 나이를 핑곗거리로 삼는 것은 이미 질릴 정도로 해보았다. 나를 근거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지금’보다 나은 때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이 들면 세상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아픈 곳이 많아지니 젊을 때 당연했던 행위들이 불가능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멀리 떠나거나 오래 머무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생각이 좁아지니 세상이 좁아진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긍정하기 위해 살던 대로 살아가려 한다. 살아낸 날이 살아갈 날보다 작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그러니 더욱 남은 날들을 잘 써야 한다. 죽음은 신체적으로 심장이 멈춘 상태다. ‘가슴 뛰지’ 않는 삶이라면 영혼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 아니던가.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고, 새로운 노래를 들어야지. 죽음은 영혼이 떠난 배다. 삶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동안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근사한 여행을 해야지. 끝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오고 말 테니까.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만은 하지 않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 삶은 세월을 들여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니까.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되었을까.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세월을 들여야만 한다. 그러니 나이 먹는다고 서러워할 시간에 나를 만들어가기로 하자.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어른이던가. 명문대를 나와도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뭐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규 교육 과정을 밟지 않고도 성공한 사업가나 철학가들도 얼마든지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다들 어른이 되던가.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사람들도 결혼을 하고 감옥에 넣어야 할 인간도 아이를 낳는다. 혼인을 하지 않는 성직자는 모두 성장이 멈춘 사람이란 뜻인가. 물론 교육을 받아야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만 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결혼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저마다의 깨달음이 있을 뿐이다. 나이 든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나이라는 택배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배달되어 온다. 그러나 모두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선물을 꺼내보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끊임없이 배우려는, 열린 마음이다.


지극히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태도, 말투, 표정, 음식, 독서와 운동.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바꿀 수 없는 것만 원망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말투나 표정만 바꿔도 관계가 달라진다. 태도만 바꿔도 바람의 방향이 달라진다. 차 한 잔만 꾸준히 마셔도 삶의 질이 달라지고 일주일에 두세 번만 운동해도 체형이 바뀐다. 나이를 핑계 삼는 대신 사소한 거라도 시도해 보는 거다. 시작점보다 도착점이 가까울 나이다. 상황을 변명거리 삼기에는 부끄럽지 않은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바꾸고, 다른 하나가 또 다른 변화로 이어진다. 작은 구멍 하나가 댐을 무너뜨린다면 그 역도 가능한 법이다. 너른 숲도 풀씨 하나에서 비롯하는 법이니까. 그저 나이 드는 대신 해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하자. 해봄을 해냄 삼아 나아간다면 매일이 봄일 것이다. 서툰 시작을 두려워 않는 용기와 초라한 반복을 버텨내는 끈기만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고 믿는다. 설령 이루지 못할지라도 가슴 뛰는 삶이 될 테니 손해 볼 일은 없을 테지.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것은 분명 심장 건강에도 좋을 테니까. 나이 들수록 빨라지는 시간, 새로운 시도는 과속방지턱이 되어 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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