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by 김민

『이 별의 책』 퇴고에 돌입했다. 산모퉁이 외딴 우물에 나를 가두는 시간이다. 아마 죽는 날까지 한 줄씩 고쳐 쓰고 있으리라. 띄어쓰기 하나에도 괴로워하면서, 내가 쓴 글이 미워져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이 남은 삶의 풍경이리라. 어떤 내가 말해도 입을 막지 않는 것이 창작의 시작이라면 모든 내가 됐다고 해야 퇴고의 끝이다. 아마 이 원고를 붙들고 해를 넘기리라. 정말 미친 사람처럼 썼다. 해야 할 일은 오직 그것뿐인 것처럼 살았다. 10권의 책을 출간했다. 내년 여름 『오늘 날씨, 읽음』이 나올 것이다. 『지은이에게』 두 번째 파트를 쓰고 있고, 십 년 동안 한 단어씩 채우고 있는 ‘낭만사전’도 아마 언젠가 낼 수 있을 것이다. 퇴고는 여전히 괴롭다.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굳게 마음을 잡는 기간이 필요하다. 책의 권수가 쌓일수록 더욱 어려워진다. 조금이라도 성장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 예전에 냈던 책과 적어도 한 끗 이상은 달라야 한다. 주어나 서술어를 다른 단어로 바꿔 끼운다. 쉼표 하나를 넣고 마침표 하나를 뺀다. 예전에 썼던 표현은 아닌지 검열한다. ‘이런다고 누가 알아줄까?’ ‘왜 이딴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걸까?’ 온갖 부정적 감정이 솟아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은 빗을수록 빛이 난다.”는 한마디를 믿고 나아간다. 버린 문장만큼 이야기는 단단해진다. 퇴고를 평생 하더라도 ‘완벽한 작품’을 쓸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온전한 형태’로 내어놓아야만 하는 것도 알고 있다. 질릴 정도로 고쳐 써야만 한 사람이라도 설렐 이야기가 된다. 달달 외울 정도로 다듬어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책이 된다. 영원이라 느껴질 만큼 고쳐야 찰나라도 껴안는 문장이 되겠지. 퇴고는 작가에게 주어진 단 한 자루의 칼이다. 작가의 긍지는 번듯한 새 책이 아니라 너덜너덜한 원고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 퇴고가 가장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홀로 나이 드는 것은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 고독은 글을 쓰는 이에게 좋은 작업 환경이 되어준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원래 물욕 자체가 없는 인간인지라 문제 될 것이 없다. 아무리 운동해도 빠지지 않는 체중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이 들수록 종합병원이 되어가지만 이것 역시 살아있기에 겪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더 이상 쓸 것이 없는 삶이다. 직장인으로 치면 갑자기 회사가 부도나거나 정리해고 통보를 받는 셈이다. 어떻게든 먹고 살 수야 있을 테지만 마음이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아예 쓸 수 없지는 않을 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긴 할 테니까. 하지만 그저 그런 이야기를 쓸 수는 없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며 자기 복제만 거듭하는 삶은 견딜 수 없다. 적어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 ‘읽을 만한 이야기’를 쓸 수 없게 된다는 건 작가에게 사형 선고나 다를 바 없다. 물론 다른 일을 할 수는 있겠지. 글쓰기 강연을 다니거나 편집 일을 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쓰지 않는 삶이라니. 남들에게는 뭐, 그딴 일로 여겨지겠지만 읽는 세상에서 쓰는 세계로 넘어온 이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아내가 없는 삶, 아이가 없는 삶,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포기한 삶,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삶, 보통의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을 포기하면서까지 선택한 것이 글을 쓰는 삶이었으니까.

조금 심하다 싶을 만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타입이다. 강연 하나만 잡혀도 한 달 전부터 준비한다. 강연 준비는 물론이거니와 이발할 날짜까지 조율한다. 일주일 전부터 짐을 챙기고 표 예매까지 끝내는 인간이다. 그런 나지만 노후 계획 어찌 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수 있느냐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쓰는 삶을 선택했을 때.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글을 쓰다 죽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마음먹었다. 모두의 삶이 책이 될 수 있다지만 그걸 직업으로 삼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미 너무 많이 써버렸는데 또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더 이상 쓸 것이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하루를 채워야 하지?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데 쓸 것까지 없어지면 끝장이다. 죽도록 두렵고 미치도록 불안했다. 몇 달 동안 고심했다. 미드에 빠져 지냈으니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외화시리즈에서 넷플릭스까지의 이야기를 써볼까? 드라마의 주제나 소재를 글감으로 삼으면 괜찮지 않을까? 술을 좋아하니 ‘술기오른 작가생활’로 술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배낭여행이라도 떠날까? 마흔 넘어 떠나는 배낭여행 이야기라면 괜찮지 않을까? 언젠가 쓰고 싶었던 인터뷰 책을 써볼까. 놀이동산 직원부터 특수교사까지. 우리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 볼까?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 발코니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아, 일단 저 사람에 대해 써야겠다. 혼자 사는 사람이 ㅗ주류가 된 시대, 기존의 직업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시대, AI니 메타버스니 하는 것들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시대. 거기에 독신자의 쓸쓸함, 프리랜서의 애환, 중년의 서글픔을 담아내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 시대가 무슨 상관인가. 팔릴 만한 이야기인지가 뭐가 중요한가. 그것이 진실한 이야기니까.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니까.

제목 한 줄만이 정해졌을 뿐이지만 왠지 안심이 된다. 챕터는 마흔넷, 마흔다섯, 마흔여섯, 마흔일곱. 일단 이렇게만 짜두자.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모른다. 어디에 닿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 써야만 할 주제를 찾았다는 것 이걸로 충분하다. 삶이란 어차피 결말을 알 수 없는 이야기 아니던가. 결말이 정해져 있다면 뻔하고 지루할 뿐이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기에 삶은 여행이 되지 않던가.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르기에 삶은 가슴 뛰는 무언가가 되지 않던가. 그래도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이 원고를 다 써버리고 나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오늘 먹을 음식이 있고 내일 읽을 책이 있지 않은가. 적어도 당분간 나를 갈아 넣을 일이 있지 않은가. 일단은 이걸로 만족하기로 하자. 노트북에 매달려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오늘 가게에 놀러 올래?’ 그는 마시지 않겠지만 술 한 잔은 따라 줄 테니까.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 아닌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에 안주하는 대신 계속해서 나아가기로 결심한 까닭이다. 평생을 먹고살 돈이 생기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나의 삶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지금을 사랑하는 마음과, 다음을 상상하는 마음이다. 과연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기에 불안하고,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몰라 두렵지만, 지금 펼쳐든 원고에 나를 갈아 넣을 수 있다면, 지금 쓰는 한 줄에 생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나는 소유로 만족하거나 성취로 행복해하는 인간이 아니니까. 결과 따윈 상관없다. 아직 조금은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삶이라지만, 적어도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알고 있으니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을 다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거면 충분히 괜찮은 삶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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