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 정치에 한창 관심이 많을 나이다. 이십 대에는 입만 열면 이성 이야기를 하더니 이제는 자리에 앉았다 하면 정치 이야기다. 연봉이 얼마고, 집이 몇 평이고, 자식 학교가 어쩌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결국은 다시 대통령이 어떻고 국회의원이 어떻고. 마법의 단어라도 되는지 기승전, 정치다. 어찌나 열변을 토하는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잠시 말이 끊긴 시점에 은근슬쩍 다른 주제로 이동하려 하지만 다시 원위치, 저마다의 정의가 있을 것이다. 각자의 옳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술자리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모처럼 모인 술자리에서 언성이 높아질수록 웃음기는 메말라만 간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거야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 뉴스도 보고, 기사도 읽고, 평론도 살피고 해야겠지. 하지만 피선거권을 행사할 요량이 아니라면 술자리에 이보다 부적절한 화제가 있을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들. 투표하러 가서 소신껏 권리 행사를 하고 오면 그만 아니던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지쳐만 간다. 배우려는 이는 한 명도 없고 가르치려는 이들만 가득한 이딴 술자리 다시 오나 봐라. 늘 하던 대로 거절했어야 했다.
물론 역사는 공부해야지.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겠지. 하지만 사실을 알리고 바로잡는 데 그쳐야지.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특히나 사석에서는 말이다. 짜증 나는 녀석이라 손가락질해도 좋으니 그냥 나는 집으로 돌아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나 혼자서라도 하련다. 지극히 사소한 일들을 계속하련다. 블로그에 글을 하나 써서 올린다. 문장으로 꽃다발을 엮어 건넨다. 모은 콩을 기부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던가. 세계를 논하기 전에 나부터 닦는다. 조금이라도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쓴다. 작은 실천이라도 더하려 애쓴다. 해양쓰레기의 몇 프로가 어업 폐기물이니, 미국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가 몇 톤이니, 중국이나 인도를 보라며,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다는 말 따위 귓등으로 흘려버린다. 남들이 똥을 싸니 나도 오줌을 싼단 말인가. 낡은 텀블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련다. 유난스럽단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쓰레기 하나라도 덜 만들려 애를 쓰련다. 작은 실천들은 나를 위한 일이다. 배달 음식을 먹지 않으니 돈도 아끼고 환경도 살리고 살도 덜 찌니 얼마나 좋은가. 교육에 대해 논하느니 우리 조카들부터 제대로 가르치련다. 몸으로 보여주어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이가 되도록 가르치련다. 길 위로 나선 교사들을 위해 글이라도 몇 개 써서 바치련다. 아는 선생님들께 응원의 메시지라도 보내련다. 빈부격차를 논하는 대신 살림은 빠듯해도 정기 후원을 이어가련다. 세계를 이야기할 시간에 작은 실천 하나라도 하며 살련다.
나의 이웃들에게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련다. 버스 기사에게 목례를 건네고 삼계탕을 가져다주신 분께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련다. 마트에서 아이가 흘린 동전을 주워주고 길을 묻는 이에게 이쪽으로 따라오라고 말해주련다. 사람이 가야 하는 길을 가르치기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련다. 나 하나쯤이야 말하는 대신 나 하나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살련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하니까. 나로부터 비롯한 삶은 충만함으로 가득할 테니까. 혼자 살지만 ‘같이’를 생각하며 살기에 홀로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세상의 변두리에서 어슬렁거려도 언제나 생의 중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