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두번째 토픽 '커피'
2. 커피... 나의 인생의 많은 걸 준 친구다. 음... 나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혼, 재혼 가정의 힘듬을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집이 그렇게 편한 공간이 아니었다. 내가 회피를 선택한 공간은 카페였다. 그 때는 무의식적으로 카페를 그냥 좋아했지만, 지금 생각을 해보면 나는 집 대신 회피할 공간이 필요했고 아늑하고 음악이 흐르는 여유로운 카페가 좋았던 거 아닐까 싶다.
기억을 더듬자면, 21살 때? 처음으로 알바를 하게 되었다. 난 알바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취미로 듣는 커피교실 수업에 가는데,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셔서 커피를 취미로 배워보고 싶었던 나는 그 카페로 따라 나섰다. 그때 당시 커피 교실이 끝나고 카페 사장님께서 나 보고 알바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다. 그 때의 나는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알바할 생각이 없었기에 거절했었다. 그러고 어머니와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곰곰히 생각을 해보다가 주말만 알바하는 거라면 괜찮을 거 같았다. 내가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니고, 리프레쉬도 하고, 돈을 벌면서 내가 취미로 배우고 싶었던 커피를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을 보고 다시 카페로 찾아가서 주말만 하는 거면 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나는 커피에 첫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처음으로 사회생활이라는 걸 해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열심히 일을 했던 거 같다. 처음 맡은 일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커피를 서빙하고 바닥을 쓸고 닦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걸 몇일 열심히 했더니, 아메리카노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 때는 그게 왜 그렇게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었는지. 그렇게 아메리카노 만드는 법을 시작으로
카라멜 마끼야또-> 카페 모카 -> 바닐라 라떼 -> 라떼를 배웠다. (아직도 배운 순서를 기억하네..)
나한테 가장 어려운 건 따뜻한 라떼였다. 내가 일했던 카페는 라떼 아트를 해서 나가야하는데, 아무리 연습을 해도 잘 못했다. 지금도 라떼 아트를 그렇게 잘하지는 못한다. 그렇게 커피를 처음으로 배워나갔다. 커피에 관해 즐겁게 일을 했지만, 문제는 사람에게 있었으니... 내 첫 사회생활에서 매니저라는 복병을 만나게 된다. 그 복병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녁 시간에 나랑 둘이 일을 하는데, 나이도 한참 많으신 분이 (30대 후반) 나에게 6시간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내가 작은 실수를 하면 엄청 핀잔을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 나이에 그게 견디기 힘들어서 그만둘까라고도 생각했지만, '이거 하나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 라는 생각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매니저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 지 하나하나 파악하고 손님이 없을때도 쉬지 않고 계속 일을 찾고 만들어가면서 했다. 그렇게 노력하기를 두달쯤 되었을까?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첫번째 사회 생활을 극복했다. (7-8년이 지난 지금 매니저님은 사장님이 되었고 그와 나는 많이 친한 사이가 되어서 잘 지낸다.)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음료를 전부 배우고, 핸드드립(브루잉)을 배웠다. 각 산지의 원두마다 맛과 향이 다른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지금 생각하면 한 마디로 커피일 뿐인데, 그게 멋지고 신기하고 순수해보였다. 어느 순간 주객전도가 되어 영어공부보다 커피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도서관에서 커피에 관련한 서적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서점에서 커피 잡지를 통해 바리스타학과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즉시 학교에 대해 알아보고 어디가 좋은지 나에게 맞는 지 등을 알아봤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은 바리스타학과에는 교육부산하와 노동부산하의 학교가 있다는 사실이였다. 그 때 당시 내 마음은 노동부 산하의 학교를 가고 싶었다. 이유는 국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였다. (근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바리스타 자격증은 협회 자격증 밖에 없다는 사실... 국제 바리스타 자격증이 아니라 유럽 협회 자격증에 불과했다.)
그렇게 부모님 설득에 들어갔다. 걱정은 했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당연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한 게 그래도 다른 부모님들에 비하면 정말 양호한 반응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 때 당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세가지를 가지고 설득을 했다.
1. 전세계 커피 무역량
2. 마케팅 전공의 아쉬운 점
3. 내가 처음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일
첫번째 : 전세계 커피 무역량을 가지고 말을 시작했다. 바리스타라고 해서 전부 바 안에서 커피만 타는 게 아니라 전세계 커피 무역량을 생각하면 이 시장은 엄청나게 큰 시장이다. 내가 커피 전공을 한다고 해서 바 안에서 커피를 탈 거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크고 원대한 꿈이 있다.
두번째 : 마케팅은 실용, 응용학문이다. 대신 마케팅은 실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인 뭔가하고 합쳐졌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게 커피다.
세번째 :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다.
부모님은 승낙을 해주셨다. 단, 노동부산하는 안되고 교육부산하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라 하셔서 그 부분은 협의 끝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허술한 부분이 많은 논리였는데, 그 때 당시 나를 존중해주셨던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나는 대한민국 바리스타학과 중 유일하게 교육부산하에 있는 백석예술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당시 내가 학교를 입학하면서 정했던 두가지가 있었다.
1. 학교 재학 중 카페를 창업한다.
2. 내가 창업한 카페에서 학교 학생을 채용한다.
나는 정말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한 덕 택에 내가 정한 두가지를 이루고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는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창업을 하고 힘들어하는 과정 중 나는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다.
3. 사업... 참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할 말이 정말 많다.
(해당 글은 22년 1월에 써놓고 발행하지 않았다. 좀 더 다듬고 싶었던 욕심이었다. 그 때의 필체와 감정이 들어간 거기 때문에 그냥 발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