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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작가 May 08. 2017

뉴욕이라는 기호

Empire state of mind 가 아직도 인기 많은 이유

  얼마 전 이태원의 한 힙합 클럽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요즘 '서울에서 가장 핫한 클럽'으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라 자정이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입장했음에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당연히 열기도 뜨거웠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심취해 몸을 흔들었다. 그 후끈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녹아들었다. 조명과 술, 사람들, 열기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이 '돞(Dope)'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DJ의 선곡이었다. 제이 콜(J. Cole), 드레이크(Drake),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등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트렌디한 힙합퍼들의 히트곡이 연달아 플레이되었다. 그런데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음악의 전환을 알리는 DJ의 레코드판 돌리는 소리와 함께, 매우 익숙한 비트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둥기둥 짝! 둥 둥기둥 짝" 하는 둔탁한 비트와 이와 상반된 경쾌한 피아노 소리.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환호성과 함께 손을 하늘로 높이 치켜들어 N, Y를 상징하는 손가락 제스처를 취했다.


2009년 발매 된 Jay-Z 의 'Empire state of mind'

  그렇다. 그 노래는 "Now you're in New York"이라는 후렴이 인상적인 제이지(Jay-Z)의 히트곡 'Empire state of mind'였다. 그전까지 신은 나지만 가사를 몰라 그저 비트를 즐기던 사람들도 그 노래만큼은 다 따라 부르고 있었다. 과연 '불후의 명곡'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8년도 더 전에 발매된 옛날 노래가 아직도 서울의 가장 핫한 클럽의 플레이리스트에 버젓이 들어있고, 사람들이 이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힙합 음악들 중에서도 '노장'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단순히 비트와 멜로디가 좋아서일까? 물론 Empire state of mind 의 비트와 멜로디는 훌륭하지만, 그것만으론 동시대의 많은 인기 힙합 노래 중에서 유독 이 곡만이 아직까지 선전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아니면 가끔 나타나는 옛날 노래의 '역주행' 현상의 하나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Empire state of mind 가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였다거나 하는 계기도 없을뿐더러, 그 인기가 너무 지속적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는 그 비결이 바로 '가사'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Empire states of mind 의 가사는 브루클린 출신의 화자가 뉴욕에서 성장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한 편, 바쁘고 활기찬 뉴욕 거리의 풍경을 예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성공과 화려한 삶, 신나는 밤, 관광의 이미지가 가득한 이 노래의 가사는 경쾌한 멜로디와 가슴을 울리는 비트가 함께 어우러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실제로 맨해튼의 타임스퀘어를 방문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즉, 이 노래의 가사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닌, 생생한 삶인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

  그리고 거기에는 바로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성이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회를 '기호소비사회'로 규정했다. 우리가 단순히 제품 그 자체의 효용을 넘어, 제품이 상징하는 기호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장에 100만 원이 넘는 톰 브라운 맨투맨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그 맨투맨이 주는 옷으로서의 효용-따뜻함, 보드라운 촉감, 심미성-보다 브랜드가 상징하는 기호-럭셔리함, 부티 남, 성공의 이미지 등-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Empire state of mind 가 꾸준히 소비되는 것은 가사가 함의하는 기호, 즉 뉴욕으로 상징되는 성공과 화려한 삶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뉴욕이라는 기호를 파는 제품은 이 외에도 많다. 질스튜어트는 자사 남성 라인의 이름을 '뉴욕'이라고 붙였고, 국내 매장 수 대비 최고 매출을 자랑하는 패스트푸드점 쉐이크쉑-보통 쉑쉑이라 부른다-은 '뉴욕 정통 스트릿푸드'라는 아이덴티티를 지향함으로써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뉴욕의 한 예술가이자 사업가인 저스틴 기그낵(Justin Gignac)은 맨해튼의 쓰레기를 "Garbage of New York City"라는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서 떼 돈을 벌고 있다. 


  "뉴욕을 팔아먹는 게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판단을 하려고 이 긴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비자가 판단할 몫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건 뉴욕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상품성 기호'가 판치는 오늘날, 뭐 하나를 사더라도 이 제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지 한 번쯤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도 있거니와, 재밌지 않은가. 아 물론 이와는 별개로 Empire state of mind 는 언제 들어도 신난다. 좋은 노래다.  



[출처] 잡상 023. 뉴욕이라는 기호|작성자 HELLO GEN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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