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입니다만
며칠 전 본의 아니게 생일이었습니다. ㅋ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건
손해가 분명해 보입니다. 하하하
축하 파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분명
크리스마스와 생일이 묶여서 한 번에
퉁 치는 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저는 제가 애써서 나온 날도 아니고,
부모님이 오히려 고생을 하신 날이기도 하니까
굳이 동네방네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각종 SNS 생일 알림 기능을 모두 꺼둔 상태지요.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달라진 풍경이 있습니다.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거지요.
닉네임을 '마음지기'라고 짓고 함께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글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까 합니다.
가제 '갔다 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ㅋㅋ
중요한 건 이 나이가 되어 만나다 보니
단순하게 '둘'만 좋아서 인연을 쌓아나간다기보다
주변 함께하는 사람들을 모두 함께 알아가는 거지요.
그녀의 가족이 있고, 제 가족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아버지께서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해서
오랫동안 생일에 두문불출했던 일상을 깨고,
즐겨하던 음식점에서 소주를 한 잔 걸쳤습니다.
그 마음이 참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흰머리 소년께서는 티브이 삼매경이십니다.
평생 '생일 축하 한다'거나
'오늘은 뭐 하나 사 먹어라'라는
듣기 좋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으신 분이시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버지, 날이 추워져서 운동을 나가실 때는
지금처럼 아침 일찍 나가지 마시고
해가 뜨면 점심때쯤 따뜻할 때 나가세요."
"난, 괜찮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는 서운하더라고요.
"아버지, 그냥 아들놈이 걱정돼서 말씀드리면
그냥 '그래 알았다' 하시면 안 돼요?
아버지 하고 싶은 대로 하시더라도 말로만이라도.."
역시 아무 대답이 없으십니다.
말해놓고 '아 괜한 소리를 했다' 싶었습니다.
괜한 투정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리 준비한 케이크와 맥주 한 캔을 들고
그것과 다른 이런저런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가
흰머리 소년도 웃고 나도 웃음이 날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왔습니다.
올해 생일은 '말이 많아진 날'이 됐습니다.
함께 식사하자고 손 내밀어 주는 분이 있고,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는 분도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곁을 내주는 날이었습니다.
케이크는 다 먹지도 못했고,
맥주도 반쯤 남긴 채 잠이 들었지만
허전하지 않은 꽉 찬 하루처럼 느껴졌습니다.
크리스마스와 겹친 생일이라는 건
손해라고 생각해 왔는데
올해는 덤을 하나 더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곁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고,
집에 돌아오면 반기는 흰머리 소년이 있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날들입니다.
밖은 영하 11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밖에서 물건을 분류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오늘도 출근해서 할 일이 깜깜합니다.
하긴, 날이 좋다고 출근하기 좋은 날은 없었으니
오늘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하루를 열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