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우치아 프라다와 프라다재단
세계적인 패션 잡지의 편집장과 그의 비서가 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제목에서부터 ‘프라다(Prada)’가 명품 패션 브랜드의 상징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대중들에게 친숙한 이 이름을 듣고, 패션이 아닌 현대 미술을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프라다 재단(Fondazione Prada)은 프라다와 미우미우(miu miu)의 수장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 1949~)가 설립한, 베네치아와 밀라노에 미술관을 두 곳이나 두고 있는 대표적인 예술 재단 중 하나다.
이처럼 패션 브랜드의 CEO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슈퍼 컬렉터가 되고, 예술 재단을 만드는 것은 사실 프라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루이 비통, 디올, 펜디 등을 소유한 글로벌 럭셔리 그룹 LVMH의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1949~)는 20세기부터 현대까지의 폭넓은 컬렉션을 아우르는 루이 비통 재단의 설립자로 파리에 웅장한 재단 미술관을 지었으며, 구찌, 이브 생 로랑, 발렌시아가 등을 거느린 케링(Kering)의 명예 회장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 1936~) 역시 엄청난 슈퍼 컬렉터로 심지어는 유서 깊은 미술품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Christie’s)를 인수하고 베네치아에 두 곳의 미술관을 열었다(그리고 곧 파리에도 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매년 미술계의 영향력을 평가하여 100명의 인물을 선정하는 ‘아트 리뷰 파워 100’ 순위 내에 늘 머물러있다.
패션과 미술을 연결 짓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현대 예술의 여러 지평에 패션계 기업인들이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다. 특히 지난 2019년 아트 리뷰 파워 11위에 이름을 올린 미우치아 프라다가 지금껏 보여준 ‘예술 행보’는 그동안 우리가 패션-예술의 관계에 대해 흔히 갖고 있던 편견을 깨부순다.
패션 디자이너가 예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흔히 디자인적 영감을 주는 수단으로써의 예술을 떠올리게 되지만,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 디자인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여러 매체에서 꽤 단호하게 분리하는 발언을 해왔다. 심지어는 패션이 자신의 직업이지만, 한편으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하는 재정적 수단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Fashion is my job and I do it with passion but it is also the financial mean that allows me to dedicate time and energy to what is the most important to me: Art.) 그러면서도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칭하는 것에는 “나는 패션 디자이너다”라고 명확히 선을 긋기도 했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마음속에서 예술이란, 일이나 직업적 열정을 넘어선 어떤 사랑과 동경의 대상인 것 같다.
프라다의 예술 사랑은 그의 패션, 영화에 대한 열정과 함께 아마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을 테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현대 미술 컬렉팅을 시작한 것은 남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 1946~)와 함께였다. 한때 가죽제품 업계에서 프라다의 경쟁자였던 베르텔리는 유능한 비즈니스맨으로 결국 프라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프라다 브랜드의 CEO가 됐다. 베르텔리는 비즈니스 파트를, 미우치아 프라다는 크리에이티브 파트를 맡아 손발을 맞추며 ‘프라다’를 가족 사업에서 기업 수준으로 확장시켰다.
부부의 마음은 예술에 대해서도 한 방향이었던 것 같다. 프라다와 베르텔리는 컬렉팅을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이들 부부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작가들을 만나러 분주히 세계를 누볐다. 오랜 기간의 공부와 아티스트들과의 만남은 부부에게 예술의 힘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바로 ‘생각의 정교화(the sophistication of thought)’였다. 예술은 아름답고, 또 매력적이지만 프라다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이 세상과 현실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 부부가 1995년 설립한 프라다재단의 주요한 미션 역시 ‘배움(learning)’이었다.
프라다재단은 베네치아에 미술관을 두고 있다가, 지난 2015년 밀라노에 또 하나의 문화단지를 오픈했다. 루이 비통 재단미술관이 프랭크 게리에게 건축을 맡기고, 프랑수아 피노의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 미술관이 안도 타다오의 작품이듯, 프라다재단의 새 보금자리도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 1944~)가 설계했다. 밀라노 외곽의 낡은 공장 건물 7개와 3개의 새 건물을 결합하여 오래된 것과 새 것, 수직과 수평,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과 같은 대조적인 특성이 어우러지고 다양하게 변주되는 거대한 예술 단지의 형태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베르텔리는 이브 클랭, 루치오 폰타나, 루이스 부르주아,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된 컬렉션 전시와 함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그 중 특히 많은 화제를 불렀던 것은 지난 글에서 소개한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의 1969년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를 오마주하여 2013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베네치아 프라다재단에서 선보인 전시다. 완성된 작품 대신 아이디어와 개념을 전시장에 가져오며 미술계의 흐름을 바꿔놓았던 이 전설적 전시를 2013년 프라다재단의 디렉터였던 미술사학자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 1940~)가 치밀하게 재현해내면서, 프라다재단이 ‘새로운 지평을 여는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현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인터뷰에서 남긴 말 중에 인상적인 것이 있다. 요즘 세상에는 한 시대를 움직이는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것 같다고. 프라다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늘 옳거나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이정표를 제시해줄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프라다는 대학 시절 정치학과를 다니며 사회주의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아마도 예술이 그 빈자리를 대체해줄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현대 미술에 대해 지금껏 프라다가 보여준 태도, 그리고 그의 믿음과 생각들은 상상 이상으로 진지하고, 굳건하다. 패션계와 미술계 양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프라다 같은 인물이 예술이 가진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제대로 구현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행동할 때 그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그가 금기를 깨고 가죽과 실크 대신 나일론으로 가방을 만들어 패션계에 충격을 안겼던 것처럼, 70세가 넘은 프라다는 지금도 세상을 예리하게 앞서 보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컬렉션과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참고자료
Numéro - Interview with Miuccia Prada : “The word “beautiful”is overused, just like the words “luxury” or “chic” in fashion circles.” (2018-12-14)
ARTREVIEW POWER 100 – Miuccia Prada (2019)
Larry’s List - The Collection of Fondazione Prada (2015-04-01)
W Magazine - Miuccia Prada on Collecting Art, Brazilian Design, and the Merits of Installing a Slide in Your Office (2017-12-16)
Fondazione Prada Official Website
서울아트가이드 칼럼 - 세계의 슈퍼컬렉터 (26)혁신으로 패션계 정상에 오른 프라다 부부, 예술은 취미가 아니라 ‘제2의 직업’
VOGUE Korea - 미우치아 프라다의 영감의 원천 (2019-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