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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Mar 14. 2024

아주 편안한 죽음 - 시몬 드 보부아르

삶과 죽음. 자신을 받아들이는 자세 그리고 진정한 삶이란.


이야기는 작가의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낙상으로 인하여 입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낙상한 것도 위험에 빠진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두 우연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우연의 연속이다. 삶은 우리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삶은 아무도 알 수 없고 계획할 수 없는 것이다.


입원 후 검사를 하던 중 골절보다 더욱 심각한 병을 발견한다. 평소에 어머니가 원하지 않았던 질병. '암'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자매는 어머니에게 '암'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의사는 수술을 권한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즉답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평온한 임종을 위해서 거부해야 하는 것일까?"


갈등 초기에는 수술을 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굴복하여 수술을 진행한다.

내가 보부아르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그런데 숨이 왜 막힐까? 부모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 때문일까? 과연 그러한 이유만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결국 나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굴복하고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수술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녀처럼 말이다.


수술을 마친 어머니는 욕창, 혼수상태 등 심각한 고통 속에서 일상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삶에 대해 돌아보기도 하고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며 인간이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통해 삶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강인하고 활기찬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고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지 못했으며,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특히 보부아르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고 스스로를 옭아매도록 교육받은 탓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자신을 돌아봤다. 나 역시 자신을 옭아매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옭아매는 사람들은 자신의 매력을 알지 못하고 깎아내리기 급급하다. 그러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는데 온 힘을 다한다. 그렇게 하나뿐인 자신의 삶을 소진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이성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다들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감정적인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았다.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무서워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고마워서 울고 어렸을 때 나는 자주 울었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에도 그랬다. 반대로 웃기도 잘 웃었다. 작은 기쁨에도 웃고 큰 기쁨에도 웃었다. 모든 것에 감정 이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주변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괴로웠다.


때로는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점차 나를 바꿨다. 감정을 숨기기 시작했고 무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일이든 최대한 실수 없이 꼼꼼하게 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감정을 죽이고 스스로를 옭아맸다. 더 이상 망신 당하고 싶지 않았고 우스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다 보니 내가 원했던 대로 놀림의 대상에서 벗어났고 차분하고 믿음직한, 자신의 일은 알아서 하는 이미지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다.


이제는 내 감정이 어떤지, 내 육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가 어떤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정말 로봇이 된 기분이다. 다만 보부아르의 어머니와 같이 강인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타인을 구속하려는 등의 시도는 하지 않는다.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결국 어머니는 임종한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비참하지 않았다. 보부아르가 말했듯이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하지만, 죽음을 통해 진정한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주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행복과 불행을 떠나서 그것이 진정한 삶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녀처럼 죽음 직전에 나를 옭아매는 올가미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더 일찍 벗어나고 싶다. 항상 그런 상상을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마도 삶이 힘들 때 다시 읽게 될 책이라고 생각하며 독후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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