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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look Oct 28. 2021

사랑을 하고 노동을 하고  끝끝내 산다는 것

<음악가의 음악> 조희원 인터뷰


ⓒ unlook / Photograph 기우


무대가 점점 달아오를 즈음 조희원은 다음 연주할 곡을 소개하며 말한다.


얼마 전 친한 동료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 꼭 이기자.


그는 2019년 10월 싱글앨범 「Go on Adventures You′ve Only Dreamt of!」를 시작으로 「BIMY」 「Saint!」 「더 블루스」 등을 차례로 발표했다. 그의 음악은 장르적 특성이 뚜렷하다. 블루스와 로큰롤 기반의 음악을 하지만 일렉트로니카, 메탈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에게 음악은 평생 공부해야 할 것이자 가장 재밌는 일이다.


파란 조명이 커지고 「필승」의 전주가 흐르자 관객의 박수가 잦아들었다. 동료 음악가들을 위해 만든 곡이라고 했다. 자기만의 색을 지키며 예술과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응원가다. 좋은 음악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공부하는 음악가 조희원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노랫말을 뱉는다.


우리의 일상이 남들과 다른 건
해가 지는 방향으로 걷기 때문이야
이젠 무엇도 그댈 막지 못해
그림자를 걷어낸 이 노래를 들어 봐


ⓒ unlook / Photograph 기우


그는 프로듀서로서도 활동을 넓히고 있다. 2020년 발표한 이승윤의 「1995년 여름」과 「영웅 수집가」에 믹싱으로 참여했고, 2021년 발표한 숨비의 싱글앨범 「부동」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후 바닐레어의 싱글앨범 「이곳에」, 랑세의 「중독」 등에도 믹싱으로 참여했다.


조희원은 작업실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만지는 모습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음악가다. 그는 머릿속에 상상한 음악을 구현하는 과정을 사랑한다고 했다. “곡이 완성된 순간에 음악가로서 정체성이 뚜렷해진다.” 하고 말하는 조희원의 모습은 고해하는 사람과 닮았다.



음악가라는 꿈


외가 식구들 가운데 클래식 전공한 분들이 많아요.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었죠. 피아노와 첼로 같은 악기를 배울 기회도 많았고요. 아버지도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아버지가 기타를 가르쳐주셨어요. 학교에서 기타를 칠 줄 아는 애는 저밖에 없었죠. 아이들 앞에서 기타를 연주한 게 공연의 시작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서태지의 음악에 푹 빠져 살았어요. 록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때죠. 그때부터 교회나 학교에서 일렉기타를 연주했어요. 중학교에 진학하고는 친구들과 밴드부를 만들기도 했죠. 그땐 음악가가 되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공부하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음악가보다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죠. 컴퓨터 다루는 걸 좋아했어요.


우연히 쿨에디트(Cool Edit)나 골드 웨이브(GoldWave) 같은 오디오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어요. 당시 한국에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적었던 때라서 해외 사이트를 찾아가며 혼자 공부했어요. 덕분에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죠. 머릿속에 있는 소리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흥미롭고 재밌었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곡을 만들었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든 음악들을 시디로 구워서 친구들에게 자랑했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축제에서 공연했던 때가 기억나요. 축제 무대를 위해 친구들과 몇 개월 동안 열심히 준비했죠. 오기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음악 하면 공부를 못한다는 편견이 싫었거든요. 그래서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더 열심히 공부했죠.

   

축제 당일에 공연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선생님이 내려오라고 하더라고요. 저희 다음 순서가 경찰 홍보단이었는데 그 팀이 빨리 무대에 올라야 한다며 그만하라고 하셨죠. 너무 화가 났어요. 정성껏 준비한 공연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 선생님께 따졌어요. 남은 곡은 모든 순서가 끝나고 다시 하기로 했죠. 속상했지만 아직 무대가 남았다는 생각에 설렜어요. 축제가 끝나갈 무렵 체육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했던 말이 잊히질 않아요.


학교 밴드부가 아직 곡이 남았다고 하는데,
갈 사람은 가고 볼 사람은 봐라.

   

그리고 무대 막이 올랐죠.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친구들이 집에 가지 않고 무대 앞까지 나와서 모여 있었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아직 그때보다 행복한 공연이 없을 정도예요. 그날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음악가라는 꿈이 제 마음속에 자리 잡는 중요한 계기였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는 합창단에 지원했어요. 학교 합창단이 일 년에 한 번 전국 공연을 다니곤 했거든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죠. 오디션을 보는데 음악 선생님이 성악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부모님도 성악을 한다고 하면 좋아할 거 같았어요. 그때부터 성악 입시생이 되었죠. 제가 살던 마을은 아주 작았어요. 저는 ‘최초’라는 타이틀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학교 밴드도 지역 최초로 만든 거였고요. 성악 입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자만했죠. 서울대를 목표로 삼았어요. 그 사실을 모두가 다 알고 있었죠.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고 나라는 사람이 수많은 성악 입시생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자존감이 낮아지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음악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죠. 다른 대학 성악과에 입학하여 음악 공부를 계속하기로 했어요. 대학 생활은 제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어요. 저는 내 음악을 하겠다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거든요.


성악을 하면 내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펼치는 성악가도 많아요. 하지만 당시 저는 시야가 좁았어요. 대학 생활에 흥미를 잃고 부모님께 대학을 관두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말리지 않으시더라고요. 제가 답답해하고 어려워하는 걸 아셨던 거죠. 일 년 뒤 군대에 갈 때까지 많이 방황했어요.


짧게나마 성악을 공부한 게 음악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결국 음악을 공부하는 건 다르지 않거든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전역하고 고등학교 때 알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요. 한번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M.A.R.C’라는 이름의 음악 크루를 하고 있었거든요. 친구들과 크루로 활동하며 음원을 낸 것도 없고 대단한 활동을 한 것도 아니지만 모여서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게 너무 즐겁고 좋았어요. 모든 대화의 주제가 음악이었어요. 저마다 음악에 대해 공부한 것을 서로에게 공유했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어요. 그게 우리에게 가장 재밌는 놀이였고요.


한 번은 힙합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제가 밴드 음악을 연주했어요. 관객들이 하나둘 공연장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더라고요. 힙합 음악을 즐기러 온 거지 밴드 음악을 들으러 온 게 아니었을 테니까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희는 그때 어떤 희열 같은 걸 느꼈어요. 우리 안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한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음악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 시기에 워킹홀리데이로 영국에 갔어요. 캔터베리에서 지낼 때 돈이 모자라서 종종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받았어요. 통장에 돈이 들어올 때마다 생각했어요.


음악을 한다는 게
그저 내 욕심은 아닐까?

     

오래된 고민이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그걸로 모자라면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드려야 했죠. 나중에는 돈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영국에 살면서 좋은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중 아일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호지어(Hozier)의 공연이 기억에 남아요. 영국에 온 지 삼사일 정도 된 때였어요. 제가 너무나 작아 보이더라고요. ‘관객 앞에 서려면 저 정도 실력은 돼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호지어와 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거 같았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음악을 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영국은 펍 공연 문화가 잘되어 있어요. 동네 펍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거든요. 프로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과 용기만 있으면 되죠.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관객의 반응도 신경 쓰지 않아요. 평가에도 연연하지 않죠. 좋아서 하기 때문이에요.


저도 용기를 내서 펍 무대에 올랐어요. 영국 펍 공연 문화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처음 무대에 오르면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자기들끼리 떠드느라 바쁘죠. 그러다 무대에서 좋은 공연을 하면 한순간에 태도가 바뀌어요. 펍 전체가 조용해지죠. 펍에서 공연하며 좋은 피드백을 받았어요. 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죠. 내 음악을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이 생기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작은 경험들이 쌓이면서 다시 음악을 시작할 힘을 얻은 거 같아요.


여전히 흉내 낼 수 없는 벽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특히 사운드를 구현하는 부분에서요. 믹싱이나 프로듀싱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지만 한계가 느껴져요. 최신 음악에서만 벽을 느끼는 게 아니에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If I Can Dream」이나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 같은 곡은 아무리 들어도 어떻게 사운드를 구현했는지 모르겠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작년부터 동료 뮤지션들과 작업할 기회가 생겼어요. 아직 프로듀서라고 말하기엔 실력도 경험도 부족하지만 차근차근 배워가는 중이에요. 나이가 들면 프로듀서로 살고 싶어요. 믹싱과 프로듀싱은 컨설팅에 가까워요. 프로듀서의 음악적 지식을 활용해 아티스트의 곡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운드를 제시하는 일이죠. 다른 음악가의 곡을 컨설팅하는 일은 평생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을 할 때 레퍼런스를 최대한 활용하는 편이에요. 레퍼런스로 삼은 음악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는 편이죠. 최근에는 악틱 몽키즈(Arctic Monkeys)의 음악을 들으며 벽을 느꼈어요. 아티스트와 프로듀서 인터뷰를 살펴보며 어떤 장비를 사용했고 어느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는지 알게 되었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유학하며 공부하고 싶어요. 제가 느끼는 벽을 죽기 전에 꼭 허물고 싶어요.


한국 음악계에서 프로듀서가 조명을 받지 못하는 건 정말 아쉬운 부분이에요. 저명한 음악 시상식에서 프로듀서에게 주는 상은 없죠. 믹싱이나 프로듀싱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도 많지 않고요. 프로듀서는 음악적 실력만큼이나 소통 능력도 중요해요.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아티스트의 곡에 프로듀서의 색을 전부 덮는 거예요. 창작자와 프로듀서가 서로의 색을 존중하며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해요.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논쟁했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좋은 음악은 함께 만드는 거예요.


여러 활동명으로 음악을 했던 건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영향인 거 같아요. 클래식 음악사를 공부하다 보면 시대별로 유행하던 장르가 있어요. 그것에 맞춰 악기 편성과 작곡 형태를 연구하거든요. 음악가를 공부하다 보면 장르라는 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에요. 시대의 문화, 역사적 사건 등 필연적인 이유가 꼭 있어요. 그것이 모여 하나의 장르가 되는 거죠. 장르에 따라 활동명을 다르게 한 것은 그 이유예요. 나중에는 장르별로 무대 의상을 입고 공연하고 싶어요. 저는 음악적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있어요. 제가 하려는 작업들이 조화를 이뤄 하나의 정체성이 될 때까지요.



TRACK 1

BIMY


☑ 「BIMY」 같은 곡을 들으면 과거의 사운드로 회귀하고 싶은 욕망이 느껴져요. 1970년대, 1980년대 미국 음악의 느낌도 나고요. 이전 세대에 유행했던 음악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근본적인 이유는 옛날 사운드가 좋아서죠. 단지 감성적으로 좋다는 게 아니에요. 예전에는 좋은 스피커가 없었어요. 공연장에 앰프 시스템도 없었죠. 그러니 악기 자체를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야 했어요. 빈티지 기타 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때 1950년대에 만든 기타를 쳐봤는데 소리의 크기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앰프가 없으니 악기 자체의 소리가 커야 했던 거죠.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음향 시스템이 워낙 좋으니까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기계로 만질 수 있거든요.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같은 음악가의 앨범을 들으면 감탄할 수밖에 없어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황금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이 황금기라는 걸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지나고 나서 알게 되는 거죠. 과거는 이제는 살 수 없는 시대이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아 있어요. 저는 그것들을 보며 제가 살지 않은 시대를 상상해요. 「BIMY」를 작업할 때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앨범 「Pet Sounds」를 많이 들었어요. 그 시절 느낌을 최대한 흉내 내고 싶었어요. 당시 느낌이 어울리는 기타 사운드를 골랐고 녹음 방식도 예전 방식을 따라 해봤어요. 이 곡의 코러스를 자세히 들어보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거든요. 옛날에는 마이크 한 대로 녹음을 했기 때문에 악기나 코러스 배치에 따라 사운드가 쏠려요. 그런 부분을 구현하려고 코러스 사운드를 한쪽으로 몰았죠.


☑ 「BIMY」의 가사 가운데 “아이폰도 갤럭시로 바꿀 수 있어” 하는 가사에 귀를 쫑긋했는데요. 과거의 형식을 지향하며 만든 곡에 굉장히 현대적인 단어가 들어 있어 재밌었어요.

성악곡 「Core′n grato」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성악가 사이에서는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곡이거든요. “오늘도 이 노래는 어느 성악가가 무대에서 부르고 있다.”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이탈리아 작곡가 살바토레 카르딜로(Salvatore Cardillo)가 쓴 작품인데요. 카르딜로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아요. 딱 이 곡만 세계적으로 사랑받죠. 언젠가 제 노래도 「Core′n grato」처럼 수십 년 뒤에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어요. 그래서 「BIMY」가 만들어진 시대를 알 수 있는 소재를 가사에 담고 싶었죠. 음악의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유행하는 스마트폰 브랜드들을 활용했어요.


TRACK 2

사자를 보러 가자

              

☑ 「사자를 보러 가자」에서 “겨누어진 총구를 향해 달려가는 이 마음”이란 가사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어딘지 모르게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죠.

이 가사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극 중 헤밍웨이의 대사에서 따온 거예요. “겨누어진 총구를 향해 달려드는 사자를 쏴 본 적이 있소? 그 마음이 어떨 것 같소.” 하는 대사였죠. 이 대사를 보고 생각했어요.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결심이 필요한 일이구나.

「사자를 보러 가자」를 작업하면서 이 부분이 가장 잘 들리게 하고 싶었어요. 저는 노래를 만들 때 핵심이 되는 가사를 한 문장씩 넣곤 해요. 이 곡의 핵심 문장이 바로 이 부분이죠.

서태지의 「로보트」에는 “매년 내 방문 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내 키를 체크하지 않게 될 그 무렵부터”라는 가사가 있어요. 「사자를 보러 가자」에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제 어린 시절의 이미지가 담겨 있어요. 어릴 때 언덕이나 동산에서 돌아다니며 노는 꿈을 자주 꿨어요. 그런 기억들이 곡에 녹아 있는 거 같아요.

   

☑ 「사자를 보러 가자」는 다른 곡에 비해 좀 더 부드러운 보컬이 두드러진다고 느꼈어요.

호지어의 음악을 들어보면, 보컬 자체는 굉장히 거친데 곡 전체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서 목소리도 부드럽게 들려요. 「사자를 보러 가자」를 노래할 때 특별히 다른 발성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애초에 부드럽게 들리도록 구성했어요. 「사자를 보러 가자」를 공연할 때면 호지어를 흉내 내곤 해요.

성악을 공부했다 보니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어떤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지 나름 가늠할 수 있어요. 그래서 흉내도 잘 내는 편이에요. 완벽하게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연습을 하면 어느 정도 비슷하게 할 수 있어요. 성악을 배운 게 행운인 거 같아요. 소리 내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세상에는 이미 좋은 작품이 널려 있어요. 모방은 창작자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 코러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거 같아요. 「사자를 보러 가자」뿐만 아니라 「BIMY」, 「Vr!」 등 여러 곡에서 코러스를 활용하고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목소리를 감추고 싶어서요.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잖아요.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심지어 메인 보컬도 더블링 해서 녹음했어요. 코러스도 비슷한 의미죠. 다른 악기로는 목소리를 감출 수 없어요. 목소리는 목소리로 감춰야 하죠.

사람 목소리가 가장 좋은 악기라고 생각해요.

저는 성격상 나를 감추고 싶어 해요. 정제된 것만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완성된 모습만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어요. 그래서 그동안 앨범도 많이 내지 않았어요.

「사자를 보러 가자」는 발표한 음원 가운데 가장 많은 실수가 들어간 곡이에요. 믹싱을 제가 했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작업했죠. 하도 실수가 잦아서 어떻게 사운드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어요.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내죠. 우리가 사용하는 장비 중에 실수로 태어난 것들이 많아요. 음악가들이 기계를 잘못 만져서 들어간 사운드가 지금도 사용되는 거죠. 이것저것 시도하다 우연히 나온 사운드 말이에요.

더 많은 음원을 발표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보려고요. 제가 빈티지 사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에 예기치 않은 변수가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TRACK 3

Vr!


☑ ‘Mmm’이라는 활동명으로 발표한 「Vr!」을 들으며 ‘조희원이라는 음악가가 보여주고 싶은 게 참 많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거칠게 표현하자면 “나 이런 음악도 할 줄 알아.” 하고 말하는 거 같았어요.

‘Mmm’은 제게 취미이자 음악적인 탈출구예요. 창작을 하다 보면 일정한 패턴이 생기는 거 같아요. 또 어떤 장르에 갇히기도 쉽고요. 같은 걸 계속하면 재미없잖아요. ‘Mmm’은 저를 자극할 만한 작업인 셈이죠.

 

☑ 「Vr!」은 싱어송라이터 이승윤과 함께 작업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식으로 협업했나요?

이 곡은 원래 오래전에 만든 곡이었어요. 밴드 알라리깡숑의 동료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승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데모를 보냈어요. 그랬더니 나름대로 해석해 왔더라고요. 이승윤과 함께 서로의 색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작업했어요.

「Vr!」은 제게 굉장히 소중한 곡이에요. 음악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거든요. 동료 음악가와 함께하며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서로 걸어왔던 시간이 만나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된 거예요.

알라리깡숑의 「날아가자」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밴드 멤버들에게 들려줄 때는 비트만 있었거든요. 멜로디와 가사는 이승윤이 작업했죠. 이런 식으로 같이 작업하며 서로에게 배운 것들이 많아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 시간이 흘러서 조희원의 음악을 누군가 평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나요?

한국에도 이런 음악을 하는 음악가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음악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고 잘하는 뮤지션이라고요. 물론 저도 계속 노력하고 공부해야겠죠.

대중음악 평론에 의심이 들 때가 있어요. 제 주변만 살펴봐도 다양한 장르를 하는 음악가들이 많거든요. 잘하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전체로 따지면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매년 저명한 시상식에서 거론되는 음악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죠. 좋은 뮤지션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게 평론가의 역할이 아닌가요?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좀 더 다양하고 실력 있는 뮤지션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곳곳에 숨은 음악가들을 조명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만약에 이 인터뷰를 기성 대중음악 평론가가 보게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내가 이렇게 말한 걸 후회하게 해달라고요.

평론가는 분명 대중음악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어디선가는 이런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TRACK 4

Saint!


☑ 「Saint!」의 소개 글은 아무런 설명 없이 “Saint”를 일곱 번 반복하고 마지막에 “Hey, Saint!”로 끝나요.

저는 곡 소개를 길게 하지 않는 편이에요. 음악으로 다 설명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더는 설명할 게 없죠. 제가 만든 음악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조금 민망한 부분도 있고요. 리스너가 더 많은 상상을 하도록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기도 해요.


☑ 성경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아요. 기독교에서 7은 완전한 숫자잖아요. 어쩌면 “Saint”를 한 번 더 외쳐서 완전한 것을 깨려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이 곡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궁금해요.

예수가 죽기 전 마지막 일주일을 상상하며 작업했어요. 예수는 계속 말해요. 자기가 죽을 거라고 말이에요. 사람들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죠. 성자에 대한 관념에도 도전하고 싶었어요. 성자는 기독교 역사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성자라고 불릴 뿐이지 실제로는 다를 수 있어요. 모든 생애가 성스러울 수는 없는 거니까요. 분명 실수나 잘못도 했을 거예요. 이 곡은 제가 이해한 기독교 세계관과 상징적인 개념을 나름대로 해석한 거예요. 제 안에 있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붕괴시키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죠. 제 곡 중에 「Crossroads」도 비슷한 맥락에서 작곡했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 「Saint!」를 듣고 많이 놀란 부분이 있어요. 「BIMY」나, 「사자를 보러 가자」에서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음색을 보여주셨는데 이 곡에서는 유독 거친 목소리로 노래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Saint!」는 저에게 여러모로 도전적인 작업이었어요. 성악을 공부했고 보컬리스트로 살았던 저는 “목소리가 좋네요.”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그런 칭찬이 감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목소리 말고 음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어요.

공연 때 이 곡을 부르면 정말 힘들거든요. 다음 곡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요. 아무런 걱정 없이 소리를 내지르며 부르려면 「Saint!」를 가장 마지막 순서에 넣어야 하지만 보통 공연 중반에 넣어요. 클라이맥스를 알리기 위해서요. 이 곡을 부르면 목이 조금 망가지는데 목 상태가 좋지 않을 때만 나오는 에너지는 또 다른 것이에요. 다음 노래를 부를 때 좀 더 긴장감이 생기기도 하죠.

여전히 노래 부를 때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공연도 많이 하지 않았거든요. 공연의 에너지와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고 있어요.     


☑ 「Saint!」를 비롯해 이제까지 발표한 음원마다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장르, 창법, 구성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느낌도 들고요. 음원을 발표할 때마다 장르적 색채를 뚜렷하게 내려는 노력도 엿보여요.

장르를 탐구하는 걸 좋아해요.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며 장르에 대해 연구하는 법을 배웠어요. 저는 장르가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클래식의 소나티네나 교향곡도 하나의 장르잖아요. 그 안에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죠. 장르는 이전 음악가들이 만들어 놓은 형식이에요. 그 위에서 다양한 음악적 세계를 펼치며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거죠.     


장르를 넘어서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그것은 장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난 뒤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 장르에 관해 생각이 많은 거 같아요. 음악가 조희원이 생각하는 장르는 어떤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장르란 음악적 형식이에요. 요새는 문화적 형식을 장르로 구분하기도 하더라고요. ‘인디 음악’이라는 장르가 대표적이죠. 특정한 음악적 형식을 장르라고 한다면 인디 음악은 장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인디 음악으로 분류된 곡들을 들어 보면 제각기 다른 음악적 형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TRACK 5

더 블루스

           

☑ 2020년 10월에 발표한 앨범 「더 블루스」의 타이틀 곡 도입 부분은 굉장히 강렬해서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듣고 싶게 해요. 공연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작업을 했나요?

모든 음악을 작업할 때 공연을 염두하고 해요. 「더 블루스」를 만들고 음원을 완성하기 전에 무대에서 이 곡을 부른 적이 있어요. 단조로운 전주로 되어 있었는데 함께 공연한 세션들이 첫 부분을 강렬하게 바꿔 연주했죠. 그 순간 관객들이 곡에 몰입하는 표정이 보였어요. 그때 음원에도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뒤로 공연할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연주했어요.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려고요.

「더 블루스」는 관객의 반응을 보고 작업에 변화를 준 첫 번째 곡이에요. 전보다 많은 관객이 공연장에 찾아와 주니 작업 방식도 달라진 거죠. 이전에는 혼자서 곡을 완성했다면 이제는 리스너와 함께 곡을 완성해 나가는 거예요.

고민되는 부분도 있어요. 리스너가 좋아하는 것과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니까요. 어려운 일이에요. 확실한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없게 되면 저는 음악을 그만둘 거예요.


☑ 「더 블루스」에는 “Sweet Dream”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요.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강렬한데 ‘달콤한 꿈’이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와요.

중학교 시절에 메탈 음악을 들으며 잠에 들었어요. 강렬한 음악을 들으며 잠이 들던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이 담긴 곡이죠. 작년에 힘든 일을 겪던 시기가 있었는데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았어요. 새벽에 하염없이 골목을 걸었던 날도 있었죠. 「더 블루스」는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잘 자.” 하고 말해주는 자장가예요.


☑ 보컬이 다른 음원들과 다르게 약간 울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효과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요.

슬랩 딜레이(slap delay)라는 효과를 넣었어요. 쉽게 말하면 에코와 비슷한 개념인데요. 에코 음의 잔향이 보컬에 딱 달라붙어서 나와요. 최대한 옛날 블루스 음악의 느낌을 내고 싶어서 사용했어요. 초기 블루스 앨범들을 들으면 에코가 보컬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녹음 기기가 좋지 않아 발생하는 딜레이 현상이었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 앨범 「더 블루스」의 두 번째 트랙 「Crossroads(Demo)」가 눈에 띄었어요. 데모가 앨범에 실린 거요.

이 곡은 블루스의 전설 로버트 존슨에게 영감을 받아 쓴 곡이에요. 첫 번째 가사 “이른 아침 네가 문 두드릴 때”하는 부분은 로버트 존슨의 「Me and The Devil Blues」의 도입(“Early this morning/When you knocked upon my door”)을 그대로 따온 거예요. 그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음악을 잘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했다는 이야기죠. 「Me and The Devil Blues」의 시작은 악마가 음악가의 집 문을 두드리는 데서 시작하죠.

이 곡을 데모 버전으로 발표한 건 가장 날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마이크를 하나 두고 연습도 안 한 채로 녹음했어요. 원테이크로요. 일종의 고백이죠. “제 실력이 딱 이 정도입니다.” 하는.

 

☑ 만약 악마가 찾아와 거래를 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 같아요?

저는 로버트 존슨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삶의 태도는 배우고 싶지 않죠. 그의 음악에는 가정 폭력의 장면이 묘사되기도 해요. 롤링 스톤즈나 섹스 피스톨즈 같은 음악가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지만 사생활까지 닮고 싶지는 않아요.

새로운 록스타의 상이 필요해요. 과거의 악습을 마치 밴드 문화인 양 답습하는 음악가들도 있어요. 저는 문화가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통 같은 것도요. 음악적 뿌리를 유지하되 그 외적인 것은 바뀌어야 하죠.

권위에 도전하는 당당함과 좋지 않은 사생활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리 시대의 밴드 문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당당함을 표현할 길을 모색해야 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 초기 블루스 음악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본인을 블루스와 로큰롤 기반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라고 소개하기도 하잖아요. 블루스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냥 블루스 음악이 좋아요. 그래서 더 설명하기 어려워요. 블루스라는 장르가 유행했던 시대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당시의 패션이나 거리의 풍경 등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블루스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니에요.
그냥 좋아요.
정말 그게 다예요.


LAST TRACK

필승

   

「세기말 클럽」은 팬데믹 직전에 쓴 곡이에요. 이 곡의 가사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요.


차가 지나지 않는 도로에 신호는 켜 있고
누구의 재주인지 엔진은 여전히 돌아가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는데 누군가는 아직 일하고 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팬데믹 상황에도 누군가 일하기 때문에 돌아가고 있잖아요.


정규 앨범의 배경은 세기말 어느 호텔 방이 될 것 같아요. 세상이 망하는 순간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 같이 쉬자는 의미를 담으려고요. 하지만 쉬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노동력이 필요하죠. 「Welcome」이라는 곡에는 호텔에서 사람들이 쉬기 위해 누군가 엔진을 돌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보이지 않은 곳에 있는 노동에 의해 비로소 우리는 쉴 수 있는 거죠.


엔진은 산업화 시대를 상징해요. ‘문명’이라는 게임에서 산업화가 되면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와요. 엔진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동시에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드는 거예요. 「모던 타임즈」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어요. 기계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기계를 돌리는 것도 사람이니까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Limbo」는 단테의 『신곡』에서 따온 제목이에요. ‘림보’는 기독교 세계관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예요. 찾아보니 지옥에 간 사람들이 구원받는 장면이 딱 한 번 등장하더라고요. 그 후에 구원받았다는 얘기는 없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아직 그곳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남아 있겠구나.’ 하고요. 「Limbo」는 “아직 이곳에 사람이 살아 있다.” 하고 외치는 곡이에요. 종말을 앞둔 황폐한 지구에 여전히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고요. 작업 중인 정규 앨범은 단지 어둡고 비관적인 디스토피아를 노래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하고 노동을 하고 끝끝내 살아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국에는 중간 지대가 없는 거 같아요. 가까운 일본을 살펴보면 지역 밴드 문화가 잘되어 있어요. 꼭 대도시에 나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인지도가 생기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해요. 지역마다 공연장이 잘되어 있기도 하고요. 자연스레 지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도 많죠. 그런데 우리는 일단 도시로 올라와야 하잖아요. 서울로요. 일본과 음악 시장의 규모가 워낙 차이가 나서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중간 지대가 없는 건 아쉬워요. 유명해지거나 음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거나 둘 중 하나죠.

  

제 삶에서 음악을 하는 것만큼 자극적이고 흥분되는 일은 없어요. 작업을 할 때 너무 행복해요. 오아시스의 멤버 노엘 갤러거가 “공연이냐, 작업이냐”를 묻는 이에게 “작업하는 것”이라고 답했는데요. 그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음악가라는 정체성을 느끼는 순간도 작업을 마친 후예요.


내년에는 메탈 앨범을 내보고 싶어요. 메탈은 현대 음악의 기술이 총집합한 장르 같아요. 공연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실력을 요구하죠. 언젠가 올림픽 개막식이나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같은 스케일이 큰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어요.


ⓒ unlook / Photograph 기우


「필승」은 리스너들을 위한 노래가 아니에요. 동료 뮤지션들을 향한 노래죠. 요즘 들어 내 음악을 한다는 게 정말 어렵다고 느껴요. 유명해진다고 해결되는 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자기 색을 지키는 것과 리스너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의 경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건 정말 힘든 일 같아요. 이 곡은 저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이기도 해요. “조희원, 고생 많았다.” 하고요.



출처: 조희원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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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look,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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