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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look Jun 08. 2021

배다리골 이야기 ②

<음악가의 음악> 촬영지

헌책의 시간

배다리헌책방거리


몇 년 전 서점에서 헌책을 한 권 샀다. 『청년에게 고함』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1880년 크로포트킨(Пётр Кропо́ткин)이 썼다. 사회의 모순과 편견, 불평등과 부조리가 낳는 인간의 고통, 그리고 불행과 비참함에 대한 절박한 외침이 담겨 있다.


헌책의 면지에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가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조카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책을 전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편지가 적힌 면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삼촌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헌책에는 손때가 묻어 있다. 헌책은 이리저리 주인을 옮겨 다니며 여러 사람의 시간을 켜켜이 쌓는다.


배다리골에는 헌책방거리가 있다. 배다리헌책방거리의 헌책 역사는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이 패전을 선언하고, 인천에 살던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무렵 고물상에 일본인들이 두고 간 책이 쏟아져 들어왔다. 당시 상인들은 일본 책을 찢어 포장지로 썼다고 한다. 배다리골의 헌책방 역사는 몰락한 제국의 찢어진 문장에서 시작된다.


박경리 소설가가 인천 금곡동에 살던 시절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경리 소설가, 남편 김행도 씨, 친정어머니, 그리고 치마를 입은 아이는 딸 김영주 씨. Ⓒ곽현숙


책이 넘쳐나는 도시에 이끌리듯 찾아온 사람이 있다. 소설가 박경리에게 배다리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1948년 인천으로 이사해 배다리 시장에 헌책방을 열었다. 그는 폐지로 쌓여 있는 책을 고물상에서 골라다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고 한다. 배다리 근방에는 책방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책방거리는 배다리 철교 아래부터 우각로를 따라 도원역까지 이어졌다. 시장을 오가는 학생들과 사람들로 거리는 활기를 띠었다.

   

사진 출처: Ohmy Photo Ⓒ최종규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헌책방들이 들어섰다. 한국전쟁 이후 피폐해진 나라에 새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젊고 가난한 지식인들이 배다리헌책방거리로 모여들었다. 헌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갔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헌책을 통해 서로의 시간을 공유했다.


1970년대까지 배다리헌책방거리에는 30~40개의 헌책방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을 이길 순 없었다. 현재 10개 남짓한 서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중 아벨서점, 삼성서림, 한미서점, 집현전, 대창서림 등 다섯 곳은 1950~1970년대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아직 헌책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아벨서점]
인천 동구 금곡로 5-1
032)766-9523

[삼성서림]
인천 동구 금곡로 9-1
032)762-1424

[한미서점]
인천 동구 금곡로 9
032)773-8448

[집현전]
인천 동구 금곡로 3-1
032)773-7526

[대창서림]
인천 동구 금곡로 3
032)779-8737


도시 공동체

스페이스 빔


1974년 전철이 개통되었다. 철도와 도로 공사가 계속되면서 길이 끊기고 상권이 잘려 나갔다. 2000년대에 들어 도시 재생을 구실로 굴착기들이 배다리골을 드나들었다. 1999년 9월 인천광역시는 4개 구간의 산업도로 건설을 발표하고 2001년 착공에 들어갔다. 도로 건설을 위해 지금까지 쏟은 돈만 1,616억 원이지만 단 한 개 구간만 개통됐다. 도시 재생 사업으로 시작된 도로 건설은 도리어 배다리골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가지 않는 배다리헌책방거리의 시계를 다시 돌리고자 많은 이가 발 벗고 나섰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스페이스 빔’이다.


스페이스 빔은 2007년 양조장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탄생한 공간이다. 이 건물은 1926년 황해도 출신인 최병두가 설립한 ‘인천문화양조장’이었다. 향토 막걸리인 소성주를 주조하던 곳이다. 70년 이상 양조장 사업을 이어왔지만, 1996년 사업을 중단했다. 이유는 막걸리 맛을 좌우하는 지하수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후 양조장은 주인을 잃은 채 앙상한 뼈대만 드러내고 있었다.



사진 출처: 스페이스 빔


사라질 뻔한 인천문화양조장이 되살아난 건 2007년 때였다. 인천에서 도시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던 스페이스 빔이 이 건물로 이주한 것이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친 뒤 현재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안전을 위해 많은 부분을 손봤지만, 양조장 시절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


양조장의 특색을 살려 각 공간의 이름도 ‘고두밥실’, ‘주모실’, ‘발효실’ 등으로 지었다. 가장 넓은 공간은 2층의 발효실인데, 이곳에서는 낭독회, 음악 공연, 소규모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열린다. 죽은 건물에 다시 사람이 드나들고 음악가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배다리헌책방의 시계가 다시 흐른다.

슬픔과 희망을 등에 진 사람들이 죽은 건물에 영혼을 불어넣고 있다.


[스페이스 빔]
인천 동구 서해대로513번길 15
032)422-8630

참고 문헌

곽현숙, 「배다리 헌책방거리」, 『황해문화』, 2013

조윤희, 「오래된 이야기를 사고파는 배다리 헌책방 거리」, 『월간 주민자치』, 2013

이희환, 「새로운 도시운동을 준비하는 인천 동구 배다리마을」, 『황해문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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