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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x Apr 08. 2020

첫 번째 산티아고 - 마르티나

나에게만 주어지는 은혜를 입었다.



5월 3일, 생장 피에 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 0km 구간



바욘역에서 우측 열차를 타고 생장으로 약 1시간정도 이동한다. 저 앞에도 누가 낙서해놨네.


바욘역에서 성진 씨와 재성 씨를 보낸 바욘 역에서, 4명의 순례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온 로즈, 미국에서 온 마이클, 한국에서 온 홍빈, 슬로베니아에서 온 마르티나. 처음엔 다국적 가족인 줄 알 정도로 친해 보였다. 이 네 분은 바욘 역에서 사람 인원수만큼 티켓팅을 하면 할인되는 프로모션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손가락 그려진 할인 프로모션 포스터. 우연찮게 마르티나도 같이 찍혔다.

 프로모션 때문에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생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들었는데, 그걸 모르기 전까지는 굉장히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나도 끼고 싶어서 옆에서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알짱댔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 덕에 '언제 치고 들어가지' 고민하던 찰나에 내 앞에 앉아있던 홍빈이와 대화를 하게 되었고, 결국엔 그들과 생장에서 함께 보내게 되었다.(고맙습니다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만들어준 홍빈에게도 망소의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나와 홍빈은 순례자 사무실에서 크레덴셜을 발급받는 동안 다른 분들은 알베르게를 먼저 등록하셨다. 내 기억엔 다른 분들은 크레덴셜을 발급받기 전이었는데, 예약하면 크레덴셜 없이 체크인은 가능한 것 같았다. 크레덴셜을 발급받은 후 알베르게를 찾아다녔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편이라 공립 알베르게는 가득 찼고, 사립 알베르게를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크레덴셜과 알베르게 등록을 마치고 다음날 준비를 위해 순례자 사무실에서 준 지도를 의지해서  마트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다들 지도에 표시된 마트 거리를 보고 포기했다. 너무 멀었다(라고 하기엔 앞으로 몇백 km를 걸을 사람들이 할 얘기가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마을에서 식사를 하고, 마을의 작은 마트에서 다음날 먹을 간식들과 조금의 치즈, 각자 필요한 것들을 구비했다.


프랑스 길을 걷는 순례자라면 반드시 걷게될 길. 이 길을 따라 알베르게와 식당들이 이어져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마르티나의 손자 이름이 내 영어 이름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내 영어 이름은 Max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은 나와 나이가 같았으며, 2살 정도 되는 아이라고 했다. 그래서 거기 모였던 5명이 "우리는 가족이야!"라는 말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단체사진은 어디로 갔나ㅠ)


 참고로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생장에서 반드시 충분한 간식과 점심을 싸서 가야 한다. 다음 숙소인 론세스바예스까지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하나도 없다. 내 기억으로는 중간에 간이매점 차량이 있는데, 그곳에서 파는 음식으로는 끼니를 때우기에 부족해 보였다. 전 날 먼저 출발한 열우, 미희, 만 섭은 중간에 레스토랑이 있는 줄 알고 준비 없이 출발했다가 그렇게 하늘 위로 갈 뻔했다. 특히나 만섭이는 탈진에 과호흡증이 한 번에 와서 정말 위험했다고. 그렇게 친구들이 알려준 덕에 나는 여분의 간식과 식량을 준비할 수 있었다.

 각자의 장보기를 마친 우리들은 서로의 출발과 목적지가 다 달랐기 때문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길 위에서 만나길 고대하며 헤어졌다.


알베르게에서 함께 잤던 댕댕이. 단 한 번도 짖지 않았다. 순댕이.



 

 마르티나를 만난 건 다음날이었다. 이 전 글의 알바로와 함께 걷다가 다리 통증 때문에 그는 천천히 걸었고, 내 속도대로 걷다가 앞에 있던 마르티나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반가워하며 어제 만났던 사람들의 소식을 서로 물었다. 홍빈은 다음날 출발하고, 마이클은 마을 초입에서 보았으나 그 뒤로는 보지 못했다고. 로즈는 생장과 론세스바예스 중간의 숙소에서 머무르기 때문에 이젠 길 위에서 만나기는 힘들 거라고.


 그녀와 걸으면서 얼마 안 되지만 순례길에서의 이야기를 나누다 아침의 추위를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태양의 나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아주 더운 나라인 줄 알았다(응 사실 준비 제대로 안 했다). 6,7월 순례길은 더워서 걷기 힘들다고 했기 때문에 5월도 매일 더울 줄 알았지. 그래서 반팔에 아주 얇은 바람막이와 경량 패딩조끼만 챙겼는데, 정말 저체온증이 염려될 만큼 날씨가 추웠다. 순례길은 시골이라 도시보다 더 춥지 않은가. 게다가 새벽에 출발하기 때문에 더더 더욱 추운데 사람은 더더더더더더더더욱이 없으니 위험하다고!


 그 이야기를 듣던 마르티나가 갑자기 자신이 입고 있던 검은색 상의를 나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연거푸 거절했다.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옷은 지금 당장 필요하잖아? 게다가 여분의 옷도 아니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인 데다, 앞으로도 입어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난 정말 받을 수 없었다! 한국인의 미덕을 실현하기에 이르렀다. '아니에요, 에이 아니에요 마음만 받을게요!' 이건 진짜 받기에 너무 부담스러운 정도의 선물이라고!


그녀가 준 옷을 입고, 마르티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마르티나의 말을 듣고 나서는 그 옷을 바로 받았다. 이 옷은 마르티나의 아들이 입던 옷인데, 아들이 2년 전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래서 너를 보니 내 아들이 생각나서, 이 옷을 나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옷을 받을 수밖에. 뭐랄까, 이 선물은 내가 거절할 수 있는 따위가 아니었다. 은혜였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했지만, 내가 받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정말 나만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옷 때문에 모든 일정을 추위에 떨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물론 중간의 큰 도시에서 옷을 구매했을지도 모르나, 그 옷을 샀다고 해서 이만큼 영혼까지 따뜻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게 마르티나에게 옷을 받고, 사흘 뒤 숙소에서 만난 뒤로는 길 위에서 그녀를 더 이상 만날 수는 없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정말 아쉽다.


괜한 한국인 마인드로 받지 않는걸 미덕처럼 여기는 습관이 굳건했다면, 난 정말 순례길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타인의 호의에 의심하고 받지 않고, 길 위에서 누군가를 돕는 것에 용감함이 없다면 힘든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버린 세상에서, 그 길 위에서 만큼은 그 어떤 것도 의심하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정말 엄마가 주는 사랑처럼(물론 아빠도 준다).


이렇게 따뜻한 시간이 있을 건데도, 안 걸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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