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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x May 10. 2020

네 번째 산티아고 - 에이든

누군가 함께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돕는 일이 될 수도 있다

5월 18일, Boadilla del camino.


'저길 넘어야 한다고?!' 라고 말한 후 3일 뒤에야 그 곳에 도착했다. 마치 신기루 같았다. 그만큼 엄청난 평야가 이어졌다.(라고 기억한다)


지루한 길. 평지가 계속 이어지던 구간. 

일전에 코스를 검색하면서 읽었던 글 중에서

'완만한 평지가 계속되므로, 지루함을 못참으신다면 버스를 타도 괜찮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구간이 여기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게 하는 길이었다.



그런 지루하고 단순한 길을 깨주는 순례자 한 명이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의 발바닥에 발 모양의 그림이 있다. 거의 저 모양만큼 물집이 잡혔던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Aiden. 아일랜드에서 온 40대 남자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하기 전에 쉬려고 걷는 중이었다.(쉬려고 걷다니 참 순례길이란!)

그는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아버지였는데, 

아이들이 보고싶어하지 않냐고, 

아내분께서 전화 안하냐고 물어봤더니 

핸드폰을 볼에서 서서히 떨어뜨리면서 "지금 시골이라 잘 안들리니 나중에 전화하자”라고 한단다. 

아, 이 아재 매력적이다.


약 20일간 순례길을 걸으면서 많은 외국인과

하찮은 영어로 대화를 했지만, 

에이든처럼 편하게 대화를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말하다가도 표현이 잘 안되는 순간이 오면 항상 “Ok, Max.” 라고 말해주며 이해해주었고, 

그의 말이 빨라서 잘 못알아 들을 때가 많았을때도, 항상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였다.

그는 사진이 고맙다며 나에게 맥주 한 잔을 샀고, 나는 신발에 그의 싸인을 받았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 다음 마을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식사하기전에 받았어야 했는데, 냄새때문에 속이 불편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미안해요.

 



다음날, 우리가 걸었던 길은 약 25km정도 됐는데, 

그 중 10km 정도는 그늘없는 평지였다. 

그 어떤 산도 보이지 않고 지평선 끝으로 쭉 뻗은 길을 거의 4시간 이상 걸었다. 

레스토랑도, 그늘도 없어서 꽤 힘들었던 길 중 손에 꼽힐 정도였다.


아주 긴 길 끝에 알베르게에 다다랐다. 

도착해보니 순례길 일정 중 처음만난, 수영장이 있는 알베르게였다. 

우리는 한동안 수영장있는 알베르게을 찾아 헤맸었는데, 사립 알베르게가 아니고선 그럴 일이 별로 없었고,

우리가 머무는 지역에도 수영장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만날줄이야. 

기본적인 샤워 후 수영장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는데 온도가 한국의 아주 찬 계곡의 수준이었다.

조금 물에 담갔다 추워서 나온 친구들은 유유자적 수영하는 내 모습을 보고

다시 들어왔으나 결국 추위를 못버티고 다시 나갔다. 녀석들, 지방을 입고 오라고!


 에이든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일찍 출발해서 먼저 도착하는 얼리스타터였다). 나는 그의 맞은편 침대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가 양말을 벗을 때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이 보였다. 뭐 다들 알베르게에서는 공통적으로 한숨과 함께 신음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경중을 따질때는 신음소리의 크기보다는 양말을 벗는 속도를 보는 것이 정확한데(나같은 놈들은 아주 작은 물집에도 하루 1000km 걸은 놈 마냥 리액션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양말을 벗고 있었다.


왕진중인 Dr.윤. 발이 아파도 가슴부터 절개한다는 그의 의술(?) 때문에 다들 숨죽이며 걸었다는 후문이.

 

 그의 발을 보니 상태가 심각했다(사진 왼쪽에 보면 발바닥 중간부터 발가락 쪽으로 물집이 아주 엄청 크게 잡혀있는게 보인다). 오른발에도 크게 잡혀있었다. 하지만 다른 치료없이 그냥 발에 붕대만 덧댄채 계속 걷고 있었다. 그에게 '발 괜찮아?! 심각해보여" 라고 물어보니 그는 웃으면서 "댓츠 오케이 맥스. 초큼 아프지만 어쩔 수 없어 HAHAHA" 라고 웃으며 말했다(잠깐 한국어가 보이는 건 기분탓이다). 하지만 그의 웃음에 비해 그의 발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발이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가운데 발가락만 핀 채로 움직이지 않았을것이다. 


 나는 발을 보자마자 함께 걷고있는 가족들 중 의사인 성실형에게 에이든의 발을 좀 치료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고, 형은 그의 발 상태를 체크해주었다. 형은 걷지 않는게 좋을 것이라고 권했고, 에이든은 순례길을 걸을 일정이 정해져 있던 터라 걷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마치 '더 걸을 수 있씁니돠!' 라고 말하는 이등병같이).

형은 물집 철거시술(바늘과 실로 물을 빼는)을 해주었고,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알려주면서 연고로 잘 마무리 해주었다. 알고보니 외국인들은 신발을 벗지않고 생활하기 때문에 발에 신경쓰는게 익숙치 않아서, 저렇게 방치되었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순례길에서는 보통 걷기 시작한 몇 일이 지나면 자신이 얼마를 걸어야 되고, 언제 출발하고 언제 도착할지 등등을 알게되고, 거기에 맞춰서 걷게된다. 알베르게에서 몇 번 마주쳤다면 (중간에서 다른 도시로 나가거나 하루를 쉬지 않는이상)계속 만나게 되는데, 에이든이 그런 케이스였다. 그리고 성실형은 볼 때마다 그의 발을 체크해주었고, 치료해주었다. 그 덕분에 에이든은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무사히 산티아고에 도착했고, 산티아고에서 더 걸어 묵시아까지 걸었으며, 복귀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에이든과 그의 주치의(?)와의 행복한 저녁식사.


 출발했을 때 에이든과 성실형 둘 다 모르는 사람이었고, 성실형과 함께 걷게 되었으며,  나는 에이든 사진을 찍게 되었고, 그의 발 상태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나는 에이든의 발을 치료해줄 수 없었고, 나는 함께 걷는 가족이 있었으며, 가족 중 의사가 있었고, 그를 형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형은 그를 치료해주었으며, 에이든은 일정에 맞춰 순례길을 끝까지 걸었다. 


 나 혼자면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했기 때문에,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했다. 혼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기쁨과 감사함이었다. 이는 순례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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