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바텀(Rock Bottom=가장 밑바닥)에 사는 남자
락바텀(Rock Bottom);
(음악) 힙합아티스 고 아이언의 첫번째 정규 앨범 타이틀곡, 락바텀; 부모님이 금지하는 건 모두 나쁘다는 평면적인 도덕관,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좇고 보는 맹목적인 추종주의를 비판한다. 병든 사회에 가하는 일갈이자, 낭만을 되찾고자 하는 공격적인 도발; (가사) “싹 다 데려와 이 밑으로"
(사전) ‘엄청’이라는 부사로 종종 활용되는 영단어 ‘rock’ + 밑바닥을 뜻하는 ‘bottom’의 합성어
(의미) 어떤 고매함도 없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저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바닥 중의 바닥, 바로 Rock Bottom
락바텀 (1) - 락바텀에 사는 남자
간절히 염원한 대로 대학에 온 이후로, 나에게 특정한 목적 의식은 사라졌으며, 훗날을 도모할 만한 열정이나 집념도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그렇게 꿈꾸던 명문대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이상하리만치 타인들과 괴리된 나의 상태 때문이다. 동기들과 함께 군대를 다녀오고 그들이 차츰차츰 자신들의 인생길에 대해 계획을 세워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란 인간은 도무지 그것이 나에게 다가올 현실로서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학생, 스스로에게는 밑바닥(Bottom)이었다.
오로지 군대에 있을 때만 나에게 명확한 목표의식이 주어졌는데,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온 시기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도 문제 없을 것이다. 전역이라는 최종점을 향해서 하나씩 나의 일상을 계획하는 일은 나에게 필수적인 덕목이 되었으며,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잡아 남들이 그저 시간을 흘려 보내는 와중에도 표독스럽게 혼자만의 도약을 갈구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전역과 함께 나에게는 다시 목적 의식이 결여된 상태가 찾아왔으며, 이는 어느때보다도 더욱 심하게 결여된 상태로 찾아왔다. 전역한 지 몇 주도 안 되어, 나는 살아있는 송장이나 다름 없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깊은 밑바닥, 락바텀(Rock Bottom)으로 내려갔다.
당시의 일상을 돌아 보자면, 아침 시간은 대부분 잠으로 메웠으며, 점심 때가 되어 겨우 일어난 이후에는 꼴에 살아있는 몸이랍시고 발기가 되어 (그것도 아주 미적지근하게) 그나마 기상 직후에 존재하는 맑은 정신을 욕구를 해소하는 행위로 소진시키곤 했다. 담배 찌꺼기가 꾸역꾸역 들어찬 내 혈관을 어렵사리 뚫은 핏줄기들은 그들의 미약한 생명력을 알아 달라는 듯이, 축 늘어진 내 물건을 반 정도 세우는 데 아침마다 (아직까지는) 성공했었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살고 싶어하는 녀석들의 시도가 가상하여 나는 홀대하지 않고 녀석을 정성껏 만져주었다.
그렇게 수면, 성 욕구가 해소되고 난 다음엔 누가 한 마리의 짐승이 아니냐고 묻기도 전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식욕이 찾아왔다. 활력 없는 자위로 기력을 소진한 뒤에는, 모자와 외투를 대충 걸치고 오피스텔 앞 버거킹으로 향한다. 퀘퀘한 홀애비냄새와 땀냄새, 머리 냄새가 뒤섞여 엘이베이터를 가득 채우면 후각에 둔감한 내게도 합당한 반응을 선사했다. 그럴 때면 나는 누가 중간에 탈까 봐 코로나 대비용으로 마련된 손 세정제를 꾹꾹 눌러 짜 엘리베이터를 알콜 냄새로 물들이기 위해 분주한다. 하지만 햄버거를 먹기 전에 담배를 피는 일은 웬만해서는 없었다. 이미 망가진 대로 망가진 내 위 건강이 공복에는 담배연기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거킹 5천원 할인 세트가 배에 꽉 들어찬 뒤에야, 비로소 헛구역질을 참아가며 담배를 필 수 있었다.
그렇게 송장이나 다름 없는 삶을 사는 나였지만, 희한하게도 시체 상태로 있는 일은 간간히 구원의 시도들에 의해 무마되었다. 도저히 스스로를 견디지 못할 때가 되면, 귀신같이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여성이었다), 이들은 나를 락바텀(Rock Bottom)으로부터 끌어내고자 노력을 다했다. 동시에 락바텀에 사는 나를 사랑했다. 그래서 락바텀은 인구가 계속 늘어났다. 그래서 락바텀은 끝을 모르고 계속 존재했다.
(랜덤채팅)
비록 평소에는 비합리적인 위생상태를 자랑하는 나였지만, 그래도 샤워를 하고 차려 입으면 꽤나 멀끔한 상태가 되었다. 빈도가 점점 줄어가기는 했다지만, 그래도 그간 알고 지낸 이들의 연락을 받고 몇 번 술자리를 나가면, 누군가와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럴 때는 내 육체도 정신도 오래 학습된 독단에서 벗어나, 누군가와의 공존을 시도하려 했다. 오래된 빨래더미들을 치우고, 와인을 꺼낸다. 라이터로 캔들 한 번, 나의 입에 담뱃불 한 번, 돼지우리가 꽃정원이 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의 실상을 알 리가 없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어울리기 나쁘지 않은 공간이다. 와인 몇 잔이면 알코올인지 아니면 내가 표상하는 그 이미지에 취한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취할’ 수 있었다. 이미지가 주는 효과는 하룻밤 정도는 나의 열정과 그의 환상을 지속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매번 그런 공존의 기회가 찾아올 때면, 나는 더없이 벌레스러운 과거의 삶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강한 퇴보적 욕망을 마주했다. 그저 벌레처럼, 미래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에 몰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날이 되면 그들을 속히 집으로 귀환시키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 전날 밤에 했던 일을 거꾸로 되돌리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이는 꽤나 아이러니했다.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뉘었다. 절제된 원망을 표출하며 나가는 부류, 그리고 그저 덤덤하게 나가는 부류. 굳이 억지로 체류하는 쪽은 없었다, 한 번을 제외하고는. 어느 쪽이든 간에, 나는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다시 마약 침대에 누워 시간을 낭비하는 일에 몰두했다.
가장 황당한 경우는 중간고사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새벽 3시 경 중간고사 공부를 한다는 명목 하에,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그때 카카오톡에서 모르는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나는 친구의 장난으로 이해하고 생각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모르는 여자였다. 용량 문제로 카톡 대화방을 정리하던 와중에 내가 2년 전 어느 미팅 주선 사이트에 남긴 랜덤채팅링크를 발견하여 신기한 마음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체육을 전공한 23살 대학생. 거주지는 노원구. 이름은 만나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틀 동안 밤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뒤에, 그녀는 내 집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는데, 무슨 담력에서인지 나는 대뜸 승낙했다. 행여나 신분도 모르는 남자의 집에 늦은 밤에 온다는 게 무슨 뜻인지 말해 무엇하리. 난 나의 오피스텔로 온 그녀를 위해 까르보나라를 대접했다. 그런 내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녀는 꽤나 오래 머무르고자 했다.
다음 날이 되어서 늦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그녀는 더러운 내 집 구석을 청소하고 있었다. 화장실 때를 벗기고, 세제를 사와서 바닥에 뿌렸다. 어차피 하루 안에 초기화 된다고 설득했지만, 그녀는 기어이 화장실에 묻은 내 흔적덩어리들을 모조리 철거하고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원망을 하며 나의 집을 나서는 그녀들의 경우, 대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는데, 아마 내가 이런 끔찍한 독단에 사로잡혀 산다는 걸 눈치 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자신이 나에게 조금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일종의 무기력함 또한 원망 형성에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확실한 건, 그녀는 분명 나의 삶 안으로 들어오고자 했고, 나는 그것을 맹렬히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락바텀(Rock Bottom)에 살고자 했고, 그녀들은 나를 바닥에서부터 끄집어내는 데에 번번히 실패했다.
이 이야기는 나의 구원을 빚진 여성들과 있었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