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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운 Oct 12. 2021

민주주의라는 착각에 대해

왜 우리는 선거에서 분노를 느끼나

모 정치인이 거대당의 대권후보로 선출이 되었다 해서, 혹은 누군가 선출되지 않았다 하여 분노에 휩싸인 몇몇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 또한 내가 원하는 정치인보다, 원하지 않던 정치인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에 이들의 심정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때는 그 누구보다 분노하고 좌절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분노했고, 결국 세상살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포자기했다. 그런데 상황이 이쯤되니 좌절을 넘어서 문득 내 안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고개를 처들기 시작했다. 대체 왜, 무슨 근거로, 나는 분노하고 슬퍼했던 것인가 ?


누군가에게 실망할 때는, 큰 기대를 걸었던 나의 선택이 배신당했을 때 아닌가? 대표적으로 애인에게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기대를 키우다가, 그게 거품이라는 게 탄로날 때쯤 이별한다. 분노와 실망은 대개 그렇게 기대가 배신당할 때 온다. 애인으로부터 상처가 크게 남는 이유는, 그가 내 자의로 선택한 상대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도, “내”가 “뽑을” 정치인이 “나의” 기대를 “충족”해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잔악함이 숨어있다.


정치란 내가 선택하는 자리가 아니다. 나를 지배할 자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정해지는 자리다. 우리가 동네 강아지마냥 불러대는 정치인 한 명 한명은, 따지고보면 나 따위는 이 사회에서 매장시켜버릴 수 있는 권력자다. 당들끼라 경선을 거쳐 최종후보를 내놓으면, 당신은 그중 하나를 고를 뿐. 즉, 알고보면 지배자는 내가 아닌 힘의 논리에 의해 정해진다. 우리의 표가 갔다는 말은, 그자가 이미 강자라는 말이다. 우리의 한 표는 한 표일 뿐이다. 설령 내가 소신있게 투표한들, 매스미디어가 설정한 이미지에 따라 대다수의 사람들은 따라서 투표한다. 고로 우리의 한 표는 절대 소중하지 않다. 애초에 누굴 선택한 적도, 누굴 선택할 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배자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정치적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상밖의 결과가 나오면, 모두가 자신의 선택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분노한다. 그러나 우리는 애초에 누굴 선택한 적도, 누굴 선택할 힘도 없었기에, 분노할 이유도 사실 없다. 노예가 주인이 바뀌었다고 분노하는 건 매우 우스운 일이다. 어차피 그의 권한이 아니었기에. 나는 현실적으로 지배당하는 자가 지배자를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힘의 불균형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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