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운 Oct 18. 2021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나의 항해는 새벽녘 끌어올린 바닷물에 머리를 감는 것으로 시작한다

닻을 올린 이후 매일 아침 맛보는 바닷물에는 어제나 오늘이나 분명히 짠맛이 난다

나의 지도에는 행선지가 없다 

그저 선미(船尾)에 거품으로 부서진 물결이 따라오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따금 거센 파도와 함께 폭풍이 찾아오고는 했다 

그러나 나는 벌벌 떨며 뱃머리를 돌리지도, 두 손 모아 하늘에 기도하지도 않았다 

줄을 고쳐매고 조타기를 꽉 움켜쥔 두 손으로 다가오는 파도를 웃어넘겼다 

오직 파도를 웃어넘기는 자만이 더 큰 파도를 기다릴 수 있다 

파도를 견뎌낸 배의 꼬리에는 더 선명한 물결이 따라붙는다 


내 항해의 행선지는 저 앞 바닷바람 너머로 다가오는 폭풍이다 

그러니 어느날 그대가 둥글게 한껏 부풀어 거센 폭풍우 앞의 바다를 건너가는 돛을 본다면

손을 들어 인사해라

쏟아지는 바닷물에 나는 머리를 감고 있겠다

작가의 이전글 민주주의라는 착각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