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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e Mar 02. 2018

C001

참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도, 돌아오는 것은 늘 짧고 건조한 대답 뿐이었다. 그래서 단골 손님들만큼은 어려워하지 않는 내게, 이 남자를 대하는 일은 퍽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받아들이게 되었고, 오히려 내 웃는 낯을 부담스러워할까봐 나도 그 사람을 따라 할 말만 하게 되었다. 


"뭐로 드릴까요?"

"모카 한잔이요."

"드시고 가세요 가져가세요?"

"여기서 마실 거예요."

"네.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서로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이 다섯마디가 여러 날 동안 반복되었다. 그리고 이 루틴이 익숙해질 때 즈음, 남자는 이 루틴을 깼다. 


늘 혼자 오던 남자는, 친구인지 연인인지 모를 여자와 함께 왔다. 여자는 카페가 처음인 것 같았다. 남자에게 뭐가 맛있냐고 묻더니 녹차라떼 한잔을 시켰다. 그리고는 내가 드시고 가시냐고 묻기도 전에 홀라당 소파 쪽에 가서 앉았다.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는 내게 남자는 웃어보이더니 "여기서 먹고 갈 거예요.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도 하나 주세요" 라며 카드를 내밀었다. 이 사람도 웃을 줄 아는구나, 놀랐지만 늘 그랬듯 덤덤하게 결제를 마치고 자리로 가져다드리겠다고 했다. 내게서 카드를 받아든 남자는 다시 웃더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여자를 따라 소파 쪽에 자리를 잡았다. 


세상에나. 두 번이나 웃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했다. 할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동안 안 한 거였다는 일종의 배신감에 앞서 함께 온 여자가 남자를 변화시킨 걸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완성된 음료와 샌드위치를 가져다주었을 때에도, 남자는 전에 없던 반응을 보였다. 처음으로 눈을 맞추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것은 물론, 녹차라떼 그림이 너무 예쁘게 그려졌다며 핸드폰을 꺼내 찍기 시작했다. 그런 남자의 반응이 고마우면서도, 이쯤되니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어 당황스럽기도 했다. 


과한 애정행각을 나누며 카페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들이 커플임을 드러내는 어떤 사람들과는 달리, 이 둘은 마치 친구인 것처럼 이야기만 나누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남자를 보며 알 수 있었다. 내게 보인 친절을 제외하고도, 늘 흐트러짐 없이 앉아서 공부만 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여자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워 편안하게 눈까지 감고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 확신이 들었다. 저 둘은 연인이겠구나. 


나갈 때에도, 남자는 그릇과 컵을 가져다 놓으며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여자도 환하게 웃으며 나갔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분명한 '사랑'을 목격했다. 그리고 일개 카페 종업원인 나도 알아차린 이런 변화를, 과연 본인도 알아차렸을까 궁금했다. 어쩌면 남자는 본인이 달라진 건 모르고, 세상이 달라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한순간의 환상처럼 지나가는 신기루일지 몰라도, 세상이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사랑 앞에서 모든 변화들은 당연해진다. 


나가는 둘에게, 오랜만에 나도 웃으면서 잘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부디 남자가 이 환상에 오래 머물러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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