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만 4.3의 아픔을 품은 곳
첫 아이가 태어난 다음 해 2008년 난 육아휴직을 했다. 그리고 5개월 된 아이를 둘러업고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그때 처음 오른 곳이 다랑쉬오름이었다. 오름 여행이 일반화되지 않은 시기였지만, 다랑쉬오름은 당시에도 이미 유명했던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차가운 겨울 눈발과 바람을 맞으며 아기띠를 앞에 두른 채 오름을 올랐고, 그런 나를 아내는 반지원정대 같다고 놀렸다. 정상에게 올라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젠 제주도민이 되어 아내와 함께 이곳을 오른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다랑쉬오름은 산체가 크고 마치 한복 치마를 펼친 듯 단아하게 균형 잡힌 모습이라 ‘오름의 여왕’이라 불린다. 제주 동부의 대표 오름이라 할 만하다. 경사가 가파르고 비고가 높은 편이라 오르는 길은 마치 스위치백 철길처럼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한다. 초입에 삼나무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마치 고양이 방석 같은 귀여운 아끈다랑쉬오름과 저멀리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풍경을 친구 삼아 천천히 20여분을 오르다 보니 곧 분화구에 다다랐다.
분화구에 도착해 가쁜 숨을 돌릴 겸 설치되어 있는 넓은 나무데크에 앉아 풍경을 감상했다. 하늘은 맑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멀리있는 해변이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다. 준비해 온 빵과 차를 가방에서 꺼냈다. 겨울이라 따뜻한 보이차를 준비했는데 날씨도 따뜻하고 가파른 오름을 오르느라 땀이 나서 시원한 물을 준비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여행 온 다른 가족들도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방문한 가족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제주 설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르면서 한 줌씩 놓은 곳이 제주의 오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할망이 다랑쉬오름에 흙 한 줌을 놓고 보니 너무 도드라져 보여 손으로 탁 친 것이 파여서 지금의 분화구가 되었다고 한다. 깔때기 모양으로 움푹 파인 분화구는 한눈에 보기에도 가파르고 깊어 보인다. 분화구 안에는 억새들이 자라고 있는데 한번 데굴데굴 굴러가 보고 싶은 짓궂은 생각이 왜 든 건지 모르겠다. 분화구의 깊이는 115m로 한라산 백록담에 버금가는 정도란다.
어느 방향으로 분화구를 도는 게 좋을지 잠시 고민했다. 왼쪽 길을 택하면 완만하게 경사진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정상에 도착한 후 가파른 길로 내려오게 된다. 반대로 오른쪽으로 가면 곧바로 가파른 길을 올라 빨리 꼭대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후로는 쭉 편하게 내려오는 일이다. 인생도 비슷하다. 사람마다 선택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어떤 이는 처음에는 몹시 힘들지만 나중에 편안한 길을 택할 것이고, 어떤 이는 길지만 천천히 오르는 길을 택할 것이다. 어떤 길이 더 좋고 옳은 길은 없다. 결국 동일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같은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저 나에게 맞는 길을 택하면 된다. 난 왼쪽 길!!
왼쪽 길로 가면 곧바로 소사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소사나무는 수피가 근육 모양을 한 서어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이 작다. 겨울이라 잎은 다 떨어지고 몸통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모습이 발가벗은 듯 해 조금 안쓰럽다. 소사나무 군락을 지나가면 곧 주변이 트여 멋진 풍광을 볼 수 있게 된다. 중간쯤 걷다 보면 오름들 사이로 흰머리를 한 겨울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언제든지 감탄하게 되는 모습이다.
아름답고 빼어난 자태와는 달리 다랑쉬오름은 여러 상처를 품고 있다. 분화구에서 바라보면 오름 남서쪽에 길고 넓은 활주로 모양의 길이 보인다. 이곳은 제주도가 1990년대 대규모 온천과 호텔, 리조트를 개발하겠다는 명목으로 시민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개발을 강행한 흔적이다. 결국 자본력이 달려 개발은 실패로 돌아갔고 2012년에 이 사업은 공식적으로 취소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파괴의 책임은 지지 않았다. 자본의 욕심이 할퀴고 간 살풍경을 억새들만이 조용히 품어 주고 있을 뿐이다.
제주 역사의 아픔인 4.3 항쟁 역시 이곳을 비켜가지 않았다. 당시 다랑쉬오름 주변 마을에는 20여 가구의 주민들이 농사와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1948년 군경 토벌대의 소개령에 의해 마을이 초토화되었다. 주민들은 오름의 약 300m 남쪽에 있는 다랑쉬굴에서 피난 생활에 했었는데, 결국 토벌대에 의해 발각이 되었다. 토벌대는 동굴 입구 양쪽에 불을 피워 동굴에서 나오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는 주민들을 모두 질식사시켰다. 1992년 44년 만에 이들의 주검이 고스란히 발견되었지만 당시 독재정권은 급하게 화장을 하고 입구를 폐쇄시켰다. 발굴된 시신 11구는 9살 어린이부터 51세 아주머니를 포함한 민간인들이었다. 이 모든 아픔을 그저 묵묵히 지켜보았을 다랑쉬오름이다.
* 이름의 유래 :오름의 이름이 ‘다랑쉬’인 것은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는 설과, ‘높은 산봉우리’라는 의미를 지닌 고구려 계통의 단어 ‘달수리’에서 변화되어 ‘다랑쉬’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출처: 국토정보플랫폼한국지명유래집) 최근에는 월랑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 주소 :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2705 (주차장)
* 주차장 : 주차공간 넓음. 탐방안내소도 있음
* 탐방시간 : 약 1시간 30분 정도
* 정상 해발고도 : 382.4m
* 오름 아래에서의 높이 : 227m
* 오름의 모양 : 원뿔형
* 분화 형태 : 분석구(scoria cone/cinder cone)
* 참고자료
- 답사여행의길잡이11. 한려수도와 제주도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 돌베게
- 제주의소리 2015년 5월 27일 기사
http://www.jejusori.net/?re_page=1&mod=news&act=articleView&re_total=4&idxno=162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