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도토리의 부엌

라이킷 4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도토리 Mar 12. 2019

스콘 만들기

따뜻한 홍차와 어울리는 영국식 빵

제주에는 벌써 봄이 왔다. 겨우내 플라스틱 화초처럼 텃밭에서 눈비를 맞았던 배추는 대를 올려 노란 꽃을 피웠고, 죽은 듯했던 옆집 교수님 댁 매화도 꽃망울을 터트렸다. 뒷마당에 사는 까치들은 분주히 나뭇가지를 물어다 측백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고 있고, 밤마다 수컷 고양이들의 애절한 구애 소리가 길을 건너 들려온다. 봄은 참 힘이 세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움츠렸던 마음과 몸을 기어이 움직이게 만든다.

7개월을 쉬었다. 나에게도 봄이 왔는지 이제 좀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제주도교육청 홈페이지에서 다문화 학생들을 지도할 강사를 뽑는다는 공고문을 발견했다. 박봉 시간 강사를 뽑는데 교원자격증, 경력증명서, 졸업증명서, 자기소개서, 활동계획서 등 내라는 서류가 많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다문화 학생들을 지도하는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반나절만 일해도 된다는 생각에 아내와 함께 지원했다.

1차 서류전형 통과 후 면접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내게 물었다.

“자긴 살면서 면접은 몇 번 정도 봤어?”

“음… 생각해보니 딱 1번밖에 없는 것 같아. 20년 전에”

“나는 기간제 교사로 오랫동안 일해서 10번도 넘게 본 것 같아. 자긴 아마 우리 같은 사람 마음을 잘 모를 거야”

면접을 한 번 밖에 안 본 것이 죄는 아니지만 괜히 아내에게 미안해졌고, 그런 감정이 드는 게 약간 억울하기도 했다. 사실 난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잘 숙이지 못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따박따박 따지고 드는 성격이다. 아내는 그런 성격으로 면접을 봤다간 합격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놀리듯 핀잔을 줬다. 아무리 그래도 제주까지 내려와서 말도 안되는 취급을 받으며 이상한 인간들과 일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면접관들을 면접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면접장소로 차를 몰았다.

면접실에는 무려 2시간 30분을 기다려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이때부터 짜증이 좀 났다. 이럴 거면 시간을 나누어서 부르던지 할 것이지 이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드는 행정편의주의적 구태라니!! 면접실에 들어가니 교육청 장학사로 보이는 3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마을 운동 시절에나 나올 듯한 첫 번째 질문을 듣고, 면접관에게 ‘그런 표현은 너무 올드하다’라고 핀잔을 주듯 대답을 해버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배꼽 잡고 웃는다. 자기도 똑같은 질문을 받고 속으로는 ‘뭔 개떡같은 소리야’라고 생각은 했지만, 겉으로는 멋진 말을 해줬단다. 그리고 아마 자기는 합격하고 나는 100% 떨어질 거라고 놀린다.

집에 도착해 전날 구워 놓은 스콘과 따뜻한 차로 씁쓸하고 허탈한 마음을 달랬다. 스콘(scone)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빵이라고 하는데, 베이킹파우더(화학 팽창제)가 개발되면서 만들기가 더 쉬워져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북미와 남미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스콘이 만들어지는데, 본고장인 영국에선 딸기잼과 크림을 함께 발라서 홍차와 함께 자주 마신다고 한다. 우리집엔 딸기잼이 없어 지난겨울 만들어 둔 감귤잼을 발라먹었다. 달콤하고 상큼한 감귤잼이 퍽퍽한 스콘을 조금 더 고소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도록 도와줬다. 팍팍한 내 일상도 요로코롬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