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마당에는 키 큰 후박나무가 있다. 올해 3월에 나뭇가지를 전정하다 깜짝 놀랐다. 빈 둥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울창한 나뭇잎으로 가려진 곳에 둥근 둥지가 안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새소리는 늘 들렸지만 매일 쳐다보는 나무에 몰래 집을 지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여름 내내 숨어서 새끼들을 키웠을 어미새는 그것도 모르고 나무 아래서 꽃을 심고, 풀을 뽑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나를 내려다보며 혹시 들킬까봐 노심초사하진 않았을까?
마당 앞 후박나무 가지를 전정하다 지난 여름에 지은 둥지를 발견했다
그 일 이후 나뭇잎 사이를 더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번식기인 요즘 특정 부분의 나뭇잎만 ‘톡’ ‘톡’ 흔들리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새들이 나뭇잎 속에 숨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검은이마직박구리가 구애하는 소리가 나무에서 자주 들렸다. 혹시 둥지를 짓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벌써 새끼들이 자라고 있나? 하지만 아무리 올려봐도 빽빽한 나뭇잎 사이에서 둥지를 찾는 건 나의 노안으로는 어렵기만 하다.
7년 동안 마을 곶자왈을 쏘다니면서 탐조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팔색조 둥지를 발견한 건 딱 한 번뿐이다. 그것도 이미 떠난 텅 빈 둥지였다. 젠장. 다른 사람들은 쉽게 발견한다던데 도무지 발견하기 힘들다. 둥지에 대한 논문도 열심히 찾아 읽고 관련 책들도 살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키 큰 나무 꼭대기에서 짝을 찾는 소리가 숲을 울렸는데, 이제 조용한 걸 보니 한창 둥지를 짓고 알을 품고 있을지 모르겠다. 암튼 구애 소리가 멈췄다는 건 둥지를 들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테니까.
탐조 갈 준비를 마치고, 아침밥을 먹는 자리에서 딸이 묻는다.
“아빠, 오늘도 곶자왈에 가?”
“응. 올해는 팔색조 둥지를 꼭 찾고 싶어.”
“잘 숨어 사는 팔색조 집을 왜 굳이 찾으려고 해?”
나는 왜 팔색조의 둥지를 찾으려 애쓸까?
팔색조는 개체수가 자꾸 줄어들어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세계적인 보호조류다. 그런 팔색조가 매년 초여름에 마을 숲을 찾아와 짝을 찾으려 마구 울어댄다. 그렇다면 이곳 어디에선가 집을 짓고 살아가고 번식하고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우지 않으려면 해마다 수 천 km가 넘는 바다를 건너 이 숲에 다시 찾아와 구애를 할 이유는 없으니까.
팔색조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2급으로 보호받는 국제보호종 조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환경영향평가법에서는 새들의 구애 소리가 아무리 많이 들려도 그곳을 서식처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둥지가 발견되어야 한다. 둥지를 발견하지 못해(대게는 의도적으로 발견하지 않아) 서식처로 인정받지 못한 숲은 곧장 개발사업이 가능한 보호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 된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똑똑하신 관련 전공 대학교수님들은 환경영향평가위원회 책상머리에 앉아 ‘법정보호종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애써 모른 척 눈감으신다.
있어도 없는 존재.
둥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곶자왈에서 매년 여름을 보내는 팔색조와 긴꼬리딱새와 여름철새들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7년 전 우연히 발견한 그 텅 빈 둥지를 근거로 우리는 그곳에 녀석들이 살고 있다고 겨우 세상에 큰소리칠 수 있었고,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라고 핏대 높여 비판할 수 있었다. 새들에게 미안하지만 녀석들이 꽁꽁 숨겨 둔 둥지를 찾아 기록해 두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둥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서식처가 아니라는 개떡 같은 엉터리 논리가 언제까지 환경영향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하나? 울창하고 어둡고 습한 곶자왈 숲은 새들이 둥지를 꼭꼭 숨기고 새끼를 보호하는데 최적의 장소다. 반대로 말하면 그곳에서 둥지를 발견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곶자왈에 새들이 없다고 말해도 될까? 그곳은 새들의 서식처가 아니라고 말해도 될까? 하지만 행정과 법은 ‘숲이 너무 울창해 보호종 생물들의 둥지를 찾기 힘들다는 건, 그 숲에는 새들이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야.‘라고 규정한다. 해마다 바다를 건너와 곶자왈을 울리는 팔색조와 긴꼬리딱새의 구애 소리는 유령들의 메아리란 말인가?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겠다고 동복곶자왈을 보존가치가 낮은 개발이 가능한 곳으로 지정해 버렸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그곳에서 대규모 제주고사리삼 서식지를 발견해 큰 논란이 되었다. 제주고사리삼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에만 서식하는 식물로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으로 보호받는 종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담당 제주도 환경정책과 공무원들끼리 나눴던 대화가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는데, 그 내용이 참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갔던 길에서 5m만 벗어나도 고사리삼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아? 우리는 그 길 벗어나서 그럼 뱀 나오는데 어떻게 들어가, 그 험악진 데를…”
사적인 대화에서 엉겁결에 본심이 튀어나왔다. 맞다! 너무 울창해서 뱀이 나오고 험악진 곳이라 인간이 접근하기조차 힘든 곳이 바로 제주 곶자왈이다. 공무원들이 나눈 대화는 오히려 그래서 곶자왈이 보호되어야 하는 곳임을 알려준다.
숲이 너무 울창해서 제대로 조사를 하지 못했지만, ‘보호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억지를 쓰는 개발사업자들에게 법과 행정은 성심성의를 다한다. 또한 그 면죄부는 고스란히 공무원들의 업무 성과가 된다. 이것이 자본과 행정이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방식이다.
유독 제주에서 두 집단의 협잡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요즘도 하루가 멀다 하고 서식지를 파괴하는 개발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개발에서만큼은 도지사가 속한 정당의 색깔이 별로 의미가 없다. 빨간당은 ‘대놓고 노골적’이고, 파란당은 ‘모른 척 은근슬쩍’이라는 전략의 차이 정도가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