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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Jul 01. 2024

인생의 계절이 저물어 갈 때

엄마 사랑해 그리고 힘내라는 말

 마음에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화가 나거나 눈물이 흐를 때 그 감정의 근원을 타고 타고 가다보면 정리되지 않은 무의식의 무언가가 실타래처럼 엉켜있는걸 발견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고 고단한 작업이지만 하다보면 조금은 수월해지는 것 같다. 물론 순간 순간 초벌작업을 해두지 않은 채로 세월에 묵어버리거나 직면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주제일 경우는 별론으로 하고. 오늘 그 작업을 하다 몇자라 적고 싶어졌다.

 

 정말이지 눈을 감고 떴더니 한학기가 지나버렸다. 군대를 가 본적은 없지만, 매일 밤 보초를 서는 심정으로 잠들지 못했고 십오년만에 찾은 학교, 생전 살아본 적 없는 낯선 도시,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닌 학생이란 신분 이 모든 것들이 때론 아찔할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해야 할 공부는 더더더 많았고 공부만 할 수 있어 행복했고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었던가 한계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남편도 아이들도 없이 시간여행자처럼 버틴 사개월이 가늠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힘든 시간이었음을, 첫 휴가를 나온 지금에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질적으로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나를 통해 연결되어 있어서 부산역 문을 열고 나오면 2005년도 이대 앞에 서 있던 스무살의 내가 되는 기분. 그런데 몸도 정신도 저 세계의 현실도 마흔인 상태. 설명할 수 없이 애달프게 아이들이 보고 싶어 서울로 달려오면 여기에 쌓여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다시금 낯설게 느껴지는 아이러니.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 누구도 등떠밀지 않은 길, 제 발로 선택해 들어간 터널인 만큼. 누구의 탓도 할 수 없고 누구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고. 지금의 최선은 그저 내가 기회비용을 그나마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이 과정을 마쳐내는 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한학기를 살아낸 것 같다. 보다 정확히는 이 모든 상념에 깊이 빠질 여유도 없이 매일 눈을 뜨면 책상에 앉고 눈꺼풀이 내려올 때까지 열람실을 지키고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공부도, 타지생활도, 혼자 있는 일도 모든게 다 힘들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 인생의 한 계절이 저물고 있음을.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 노력 하지 않아도 그저 나를 바라고 원해주던 이 찬란한 존재들이 이제는 저마다의 세계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이전처럼 나와 마주보고 서있지 않고 등을 돌아 자신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때가 되었다. 그러니 내 직위도 변해야한다. 등 뒤에 서서 그들이 앞으로 뚜벅뚜벅 잘 나아가기를 힘차게 응원하고 격려해야 하는 역할이 지금부터 내게 주어진 임무다 .


우리의 로운 계절에 맞게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 서서

아이보다 앞서지 않고 한 발씩 뒤로 물러서 있어야 한다. 아이가 원하는것보다 넘치게 아이를 원하지 않고 아이가 부담스럽지 않을만큼만 관심과 시선을 둬야 하는 그 때가 도래하고 있다.


과정에서 아이가 겪는 혼란, 수시로 변하는 감정, 엄마가 좋기도 싫기도 한 모순된 마음, 선명해지는 확고한 취향. 이것들이 한데 엉켜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하고 있다. 어느집에나 찾아왔던 그 만고불면의 진리가 이제 우리 집에도 찾아온거구나 하면서도 머리로만 알았던 일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니, 때때로 슬퍼지긴 하더라. 비단 나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겪게 되는 감정이겠거니 하면서도.


 그 언제 그 누구를 이토록 오롯이 사랑했던 적 있던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아가고 있지만,


거듭 생각해도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보다 완전한건 다름아닌

유년시절 아이들이 부모에게 허락해 주는 사랑이다.


그 시절을 통해 비로소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선 나는 지난 계절이 저물어 가고 있음에 문득씩 슬픔을 느다.


 어떻게 두 아이를 키웠느냐 묻는 벗들에게, 일찍 육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 부럽다는 이들을 보며. 나는 마치 동네 할머니가 된 것 같은 눈빛으로 답다. 나야말로 너희의 그 가능성이 부럽다고.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 있는 상태. 아이의 유년을 누릴 수 있는 그 가능성 말이다.


 어제는 밑창이 닳아버린 아이들의 신발을 새로 사주었다. 새신발들을 신고 익숙한 동네어귀를 돌아 집에 돌아 온 밤풍경이 참 좋았다. 별다를 것 없는 스몰톡을 주고 받고 그러다 수시로 서로 기분이 상하고 그러다 다시 별 것 아닌 것에 폭소하면서 돌아오는 그런 일상.


 저녁 먹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큰 아이가 둘째에게 "뚜야. 그래도 아빠도 좀 떠 드려야지(백숙 먹는 중이었음) 현재 우리집의 가장이시잖아." 그러자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둘째가 농으로 받아쳤다.


"그렇지. 가장이지. 우리집의 가장자리" 누군가에겐 버릇 없이 느껴질지도 모르는 그 말들 나는 좋았다. 나 없는 지난 네달간 아이들은 아빠랑 여전히 친구처럼 잘 지내왔구나 싶었기에.


 피곤에 지쳐 둘째를 재우고 비몽사몽 잠에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조그맣게 읊조리 큰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사랑해. 그리고 힘내."

선잠에 든 중에도 그 말이 귀에 박혀 눈번쩍 떠졌다.


"뭐라고, 후야? 잘 못 들었어. 다시 한 번 더 말해 줄 수 있어?"


"음.... 있잖아. 엄마. 내가 사실 계속 엄마 사랑한다고. 엄마가 돌아와서 좋기도 안 좋기도 한데. 안 좋은건 게임하는 딱 그 순간 뿐이야. 그걸 뺀 모든 순간에 나는 엄마가 같이 있어서 좋고 엄마를 여전히 사랑해.


그리고 힘내. 잘 하고 있어, 엄마."

 엄마가 자기들과 떨어져 혼자 공부하는게 힘들어보여서, 그치만 자랑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로 힘을 주고 싶었다고.


 맞춤법을 묻는 동생에게

"뚜야, 그렇게 차근 차근 공부 열심히 하다보면 뚜도 엄마처럼 똑똑해지는거야" 라며 나를 믿어주는 아이. 엄마를 닮은 나도 변호사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법학 관련 책을 꺼내 읽고 엄마가 돌아오는 주말에 맞춰 질문할 페이지를 접어 두는 아이. 인사이드 아웃2가 자기 이야기 같아서 위로 받는 아이. 가족섬이 무너지고 있지만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고 그래도 저기 한구석에 잘 남아 있다고 농반진반을 건네주는 아이.


 아이가 내게 주는 그 말들에 다시금 위로 받는다.


 오늘 아침엔 마지막 유치가 덜렁거려 주말 내 고통 받은 큰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갔다. 막내는 사실 아프지도 않았는데 그저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서 치과 검진을 받다. 오분이라도 엄마 얼굴 더 보고 싶어서.


 기말고사를 마치고 돌아 온 첫 날, 작은 아이 손을 잡고 등교를 해주는데 학교 앞에서 아이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뚜야, 그냥 학교 째고 우리 둘이 놀러가자."


 흔들리는 동공. 그러다 뒤돌아서는 아이의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 오늘이 토요일이면 좋겠다. 그래도 나 학교는 가야하니까. 잘 갔다올게. 주말엔 우리 땡땡이 치자."

자다가도 엄마를 더듬어 자석처럼 따라온다. 그 몽글몽글함, 보드라운 살결, 아이들의 숨소리. 그렇게 충전되는 밤. 그래, 이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민법 제507조(혼동의 요건, 효과)

채권과 채무가 동일한 주체에 귀속한 때에는 채권은 소멸한다



 육아를 할 땐 반드시 행복을 언어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해야한다. 고통은 명시적인데 반해 행복은 묵시적이기 때문에.


 법학 사례 문제를 풀 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묵시적' 합의나 동의가 있었음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글자와 행간 속에 숨어있는 '사실'들을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려야만 문제를 제대로 풀어 나갈 수 있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육아를 목격하거나, 문자로만 육아를 배울 때는 육아로 인해 짊어지게 되는 채무만이 눈에 띈다. 그럴 수 밖에 없지. 그러나 사실 그 세계로 직접 뛰어들어 탐험하다보면 굉장한 보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채권과 채무가 동일주체에 귀속되어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비로소 채무는 채무가 아니게 되는 법이다. 것이 육아의 세계관이다.

 새롭게 접어든 계절은 언젠가는 또 저물것이고. 그 계절의 끝에서 나는 또 새로운 감각의 슬픔을 느끼게 될테지만. 이제껏 그래왔듯 지금의 기록이 그 시절 나에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동력이 되어줄거라 믿으며, 지난 계절의 끝과 새로운 계절의 시작 그 사이 어느 환절기 중 하루의 기록을 남겨둔다.


 엄마 사랑해 그리고 힘내란 말이 쏘아올린 작은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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