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된 시간
행복이라는 이름의 '숨은 그림' 찾기
뚜렷이 각인되는 순간들이 있다.
때론 정신 없이 어느 땐 그저 그렇게 흘러가버리는 것만 같은 '시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해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각인할 때의 만족감이란.
한 주를 꽉 채운 가족여행의 후폭풍은 집중력 저하로 이어졌고, 다시 패턴을 잡기 위해 몸부림 친 며칠. 그 기세를 최대한 이어가고자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던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아들은 아침부터 해맑다.
'너와 나의 눈높이'를 반복 시전하며 동생을 약올리는 형과, 집에 있는 엄마를 좀 더 소유하고 싶어 온갖 재주를 시전하는 동생.
엄마 이것봐
엄마 나 좀 봐봐
엄마 피아노 연주 좀 들어봐
엄마 야코 노래 들어봐
엄마 우리가 게임하면서 진짜 어렵게 아이템 구했는데 그 이야기 좀 들어봐
엄마 나 다리 잘 찢는 것 좀 봐봐
엄마 엄마 엄마
서로 투닥이다
엄마의 시선을 강탈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피아노가 정말 많이 늘었다.
그림을 어쩜 이렇게 열심히 그릴까.
관찰력이 참 좋은 것 같아.
지난 번보다 의사표현을 훨씬 더 정확하게 하네, 멋지다.
잠시라도 다른 일에 집중할라치면
흥칫뿡이 쏟아지며
엄마가 마음 가득 나를 안 봐준 것 같아서 서운해.
그러다가도 다시금 눈을 맞추면
언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려 엄마를 녹이는 두 아이.
몇살이 될 때까지 이토록 예쁠까.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할머니가 엄마만 바라보는
그 시선을 생각하면
아마도 무기한이지 싶다.
아침에 강의 들으려던 일정을 잠시 미루고
조금 더 충분히 두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둘째, 그 옆에서 흘러나오는 큰 아이의 피아노 연주, 그러다 종목을 바꿔 엄마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는 두 아이.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마음에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둔다.
아이들의 기억도 어쩌면 내 기억도 희미해져갈 때
기록이 다시금 우리에게 그 시절을 각인시켜 줄 것이라 믿으며.
그러다 커피를 사러 마실을 나간 둘째와 나.
"엄마. 혹시 오늘 공부 어디서 할거야?"
"엄마가 집에서 하면 좋겠지만, 내가 엄마를 자꾸만 방해하고 싶어지거든. 그러니까 그냥 도서관 가서 해."
되돌아 오는 길, 비슷한 질문을 반복하는 뚜뚜.
"엄마,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갈거야?"
"집에 들려서 후야랑 뚜뚜랑 인사한 후에 마음의 준비 되면 도서관 갈게."
"아이 참.
엄마는 정말 정말 센스쟁이야.
그냥 가버릴 수도 있을텐데 한 번 더 나랑 같이 있다 가주니까."
그렇게 오늘도 보잘 것 없는 내 마음에 단비를 뿌려준다.
우리는 그러고선 집에 들어가 목적 없이 뒹굴거리다
잔나비가 부른 <슬픔이여 안녕>이란 곡을 함께 들었다.
답을 쫓아 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거야
돌아서던 길목이었어
집에 돌아가 누우면
나는 어떤 표정 지을까
슬픔은 손 흔들며
오는 건지 가는 건지
저 어디쯤에 서 있을 텐데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 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나는 나를 미워하고
그런 내가 또 좋아지고
살다보면 내 역량 밖의 어려움과 슬픔을 마주할 수 밖에 없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부서지기도 하는 법이다.
만약 내가 남들보다 이른 결혼을 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그 때 마쳤더라면 어땠을지 입시를 준비하며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겠지만
그랬더라면 이 소중한 이들은 단연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아마도 이 소중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
남들과 다른 시계열을 살아왔나보다 싶어
마음이 차오른다.
소중한 사람을 더욱 더 소중히 대하고
각인된 시간들을 더 더 아깝게 여기리라 다짐한다.
어떤 인생인들 아쉬움이 없으랴.
그러나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대로 두고
그것을 잃어버렸기에 비로소 얻을 수 있었것들을 주목하면서
잃어버려 본 슬픔을 아는 빛으로 피어나야지.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지금의 시간들을 포착해내는 열심. 그 열심으로 숨어 있는 '행복'들을 찾아내는 과정.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마음으로 글로 각인시켜 갈 수 있음에 감사 드린다.
시절이 하수상하다해
내 마음에 핀 한 줄기 빛 마저 잠식당할 수는 없을테지.
그렇게 오늘의 순간들을 각인해 낸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