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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Oct 20. 2020

꺼내있는 육아일기 : 아들의 수갑

20151208의 기록

쓰레기 버리러 나가려는데 후가 소품 하나를 챙기더니 후다닥 아빠가 누워있는 침대 안으로 튀어 들어간다. 뭐하나 빼꼼 쳐다보니.... 아빠 손목에 뭘 걸어뒀다.  
 
"후야. 저거 뭐야?"
"응. 내가 아빠 '어디 가지 마세요.'하고 묶어뒀어."
푸하하하. 우리가 쓰레기 버리는 동안 혹시라도 도망갈까봐?ㅋㅋㅋ 나름 쇠사슬보다 강력한 끈으로 그를 묶어 두었다는....... 
 
.

 
"내가 좀 있다 버릴게~"
라고 말해놓고 지쳐 쓰러져버린 J를 등지고 주섬주섬 옷을 입은 나. 그는 이미 잠들고, 후야 옷을 입히며 설명했다. "엄마가 쓰레기 들어야 해서 잡아줄 수 없는데. 갈 수 있겠어?" 
 
재활용에 음식물, 종량제 봉투까지 가득 안고 내려가는 동안 다행히 후도 다치지 않고 씩씩하게 1층으로 하강.  
 
트렁크에서 뭐 좀 꺼낸다고 잠시 짐을 내려 놨더니 종종 걸음으로 다가가 재활용 봉투를 잡아끈다. 어쭈! 
 
그대로 두고 보니 질질질 열심히도 끌고 가는 정후. 
아빠 대신 한 몫 하는 아들과 함께 겨울 밤 쓰레기를 버리러 나선다.  
 
두고 두고 보고 싶을것 같아 짤막한 영상도 남겨두었다. 
 
쓰레기 버리는 모습 찍으려 하니 팬심 고려해 브이도 취해 주는 후야. 이왕 그렇게 된 김에 제대로 된 사진 건져보려도 좀 더 자세 취하라 했건만 잘은 안나왔구먼 ㅎㅎ 
 
음식물까지 버리고 돌아오는데 후가 그림자놀이를 한다. 발을 슬며시 들었다 내려놨다 뗐다 붙였다 하고 있다.  
 
"후. 뭐행?" 물으니. "응. 그림자 떨어지게 하려고." 자꾸만 따라오는 녀석을 점프로 물리치는 정후. 땅에 발이 닿자마자 도루묵이지만. 같이 깔깔대며 돌아오는데 삐그덕 어떤 집 창문이 열린다. 혹시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나 싶어 같이 막 움츠렸다.ㅎㅎㅎ 
 
교통 안전턱 위 행단보도 비슷한 무늬 위에서 "나는 흰색만 밟을게 엄마는 노란색만 밟으라고." 미션을 주는 아들 덕에 흠뻑 동심에 빠져들어 보았다.  
 
후랑 다시 그림자 잡기 놀이 하며 집에 오는데 피터팬 이야기가 떠오른다. 웬디와 그림자, 바느질, 피터팬.... 언제까지 이런 소소한 놀이에 기뻐할 지 모르겠지만. 여튼 요즘은 가장 예쁜 세살을 즐기고 있다.  
 
제대 날이 까마득해 보이던 출산 당시.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황홀하고 벅차면서도 너무나도 지루하고 답답해 이제나 저제나 자유롭게 일할 날을 기다리곤 했는데... 
 
요즘은 후야를 공동육아에 맡기고 오면서도 서운 할 때가 있다. 둘째가 생기기 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 주고 싶기도 하고.  
 
조잘 조잘 쉼없이 말 걸어 오는 아이가, 과묵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카시트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았는 아이가, 내 손 잡고 걸어 주는 아이가.. 
 
참 기쁘고 예쁘다.  
 
장염 걸려 (변 냄새가 고약해졌기에) 자기 코 막고 똥 싼다 앉았는 모습도 아깝고,
신발장 어귀에서 "엄마. 윽. 웬 똥냄새가 나지?"하며 샅샅이 뒤져 아빠 신발에 묻은 은행까지 찾아내는 탐정 같은 아이 모습이 어른 어른.  
 
.

 
며칠 전엔 유자차를 따르고서 무의식 중에 이렇게 권하고 말았다. 
"저기. 여기. 유모차 좀 드세요.(헉!)" 
 
말 한 나도 듣는 상대도 뜨헉 했다는 이야기.  
 
물론 부모 노릇에 졸업은 없지만서도
품 안의 자식을 곧 졸업할까봐, 제대할까봐
가끔은 아쉽고 서운하기도 한 요즘이다.  
 
사치스러운 ^^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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