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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공원 Oct 21. 2023

지금 여기

고양이의 큰 그림


우리 집 고양이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너무 안 울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보통의 고양이라면 싫어할 법한 부위, 앞치마를 한 것처럼 축 처진 배라던가 발바닥의 말랑말랑한 젤리를 만져도 울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혹시 이 안에 솜이 들어있는 건 아닌지, 인형일지도 모른다고 농담할 정도다. 하지만 내가 마감으로 바쁜 시기에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울어댄다. 평소보다 눈길을 덜 주기 때문일 거다. 


“지금은 바빠.” “나중에, 나중에.”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무시하며 모니터 화면만 보다가 결국 성화에 못 이겨 쓰다듬어 주었다. 바쁠 때 놀아달라고 우는 것이 귀찮은 한편 안쓰럽기도 해 고양이를 쓰다듬어주다 보니 초조한 내 마음도 진정되었다. 저만큼 앞서가던 마음이 지금 여기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앞만 보고 가다가 넘어지곤 하는 인간을 위한 고양이의 큰 그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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