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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철 Jul 20. 2024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 '나기의 휴식'

분위기는 읽는 게 아니고 타는 거야~ 진짜 힐링은 나에 대해 알아보는 것

 일본에서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걸 ’공기를 읽는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넌씨눈과 같은 눈치 없는 사람에게는 공기를 읽지 않는다는 글자의 앞글자를 따서 KY부르며 수군대기까지 한다. 


 공기를 읽는다 : 空気(KOUKI)を読む(YOMU)

: 분위기를 파악하다, 눈치를 살핀다, '공기 좀 읽어'= 분위기 파악 좀 해



 나기의 휴식은 전형적인 일드지만 짜임새가 꽤나 꼼꼼하고 전개가 빠르다. 주인공이 고구마 백 개 먹은 것처럼 답답할 때도 있지만 채널을 돌리기 전에 사이다를 촤악 입 안에 뿌려주는 느낌이다. 


 나기는 악성(!) 천연곱슬머리를 가진 아주아주 소심한 20대 회사원인데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싫어서 아침마다 1시간에 걸쳐 머리를 고데기로 곱게 펴서 출근하는 사람이다. 늘 사람들의 귀찮은 일을 도맡아서 하고 어쩔 때는 그저 가만히 있다가 남의 잘못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나 아닌데요? 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타인의 시선에 맞춘 나기(쿠로키 하루)의 모습과 그의 연인 신지(다카하시 잇세이)

 그런 나기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 회사에서 아주 잘 나가고 소위 눈치 빠르고 말발 날리는(일본에서는 공기를 잘 읽는) 신지와 비밀 사내연애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지와 얼른 결혼해서 이 답답하고 숨막히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런 스스로를 소름끼친다고 생각하면서도 본인이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는 신지의 바지가랑이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지가 본인을 그저 속궁합이 잘 맞아서 만난다는 식으로 비하해서 말하는 걸 듣게 됐고 과호흡으로 쓰러지게 된다. 그러자 나기는 고구마 백 개를 꾸역꾸역 잘 먹은 내공이 있어서인지 단숨에 회사를 관두고 편안한 옷과 본연의 악성곱슬머리인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 아주아주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일본 냄새 풀풀 나는 전개, 하지만 나기를 응원하는 내 마음을 멈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나기는 에어컨도 없는 그 저렴한 아파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옆집에 귀여운 초딩 우라라와 그의 엄마, 지팡이로 매일 떨어진 동전을 줍고 다니는 할머니, 매번 좁은 아파트에서 파티를 여는 파뤼피플 곤(실제로 클럽디제이를 하고 있음). 


 나기는 어딘가 착한 아이로 지내야만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스스로를 돌아보고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나서부터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를 늘 생각하고 진짜 내 생각에 맞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나기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만난 아파트 사람들,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

 나기와 헤어진 신지는 사실 나기를 정말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 또한 남의 시선에 얽매여 멋진 아들, 멋진 직원을 연기하고 있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기와 자신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고 나기가 아침마다 고데기로 머리를 곱게 피는 모습을 보고 남몰래 숨죽여 우는 그런 한심한 남자이기도 했다. 

 

 그 묘한 한심함을 다카하시 잇세이(아역부터 탄탄하게 연기력을 다져온 배우, 백성현보다 훨씬 원숙하고 경력이 끊이지 않은 느낌? 그리고 백성현같은 외모라기보다는 좀 더 개성파 배우)가 아주 잘 표현한다. 나기와 신지는 양가의 부모님에게 한심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서로 결혼할 사이라고 소개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고 노력하는데 결국에는 사면초가인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 때 나기가 신지에게 우리는 여기서 빠져나가 우리의 삶을 살자는 식으로 제안하며 어버버하는 신지의 손을 잡고 나간다. 

 

 그리고 둘은 원래 여린 마음의 소유자들이라 공원에서 가족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원하는대로 효자, 효녀로 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서로 등을 돌린 채 엉엉 운다. 


 우리는 어느 날 문득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남 눈치만 살피고 내 마음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끙끙 앓는 모습을 보면 공기가 부족해 숨쉬기가 곤란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은 오롯이 나 뿐인데 우리는 나를 잘 돌보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다 가족을 포함한 타인을 돌보고 타인의 감정을 신경쓰는데 여념이 없다. 그런 모순된 모습을 나기가 잘 보여주고 그걸 또 아주 잘 극복해낸다. 잘 못하면 어때, 그럼 또 배울테고 다시 잘할텐데! 이런 태도로 나아간다. 


 실제로 극중에서 나기는 친구와 사업을 하기로 약속했고 계약하는 날짜가 다가왔는데 저 멀리 홋카이도에 사는 엄마가 오래된 집의 리모델링 견적서를 내민다. 나기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결국 그 자금을 엄마에게 입금하고 터덜터덜 도쿄로 돌아온다. 인생이 끝날 것만 같고 나는 절대 변할 수 없는 저주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친구와의 관계도 나빠지지 않았고 사업은 물건너 갔지만 그 사업을 진짜 잘해보기 위해 관련 기업에 재취업하게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 그러니까 결과만 본다. 사실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실패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남이 실패했을 때 현재의 내 모습에 안심 또는 안주해버리고 내가 실패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듯 하고 순간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다는 망상에 휩싸이기도 한다. 실패는 우리 인생과 늘 동반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약 지금 내가 정체되어 있는 것 같다면 또는 정체된 내가 너무나도 불안하다면, 그리고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면 나기가 휴식을 통해 크게 한 발 전진하는 모습을 보자. 힐링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덧. 사실 나기의 휴식에는 연애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그 묘한 삼각관계도 굉장히 볼거리이니 참고 바람!)

3명의 요절복통 삼각관계는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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