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꽤 리얼해서 더 재밌다, 하이퍼리얼리즘 남성도 임신가능한 사회!
한 살 터울인 사촌동생이 둘째를 가졌다. 출산을 앞두고 육지로 올라올 수 있는 마지막 비행이라며 오랜만에 얼굴을 보자고 했다. 나보다 일찍 결혼할 거라 어릴 때부터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동생이라 그런가보다 했지만 임신, 심지어 둘째 임신이라니! 이미 작고 귀여운 생명을 데리고 그리고 앞으로 나올 생명까지 안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뭐 흔해빠진 엄마는 위대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나 고생하는구나 싶어 괜시리 겁이 나기도 했다. 게다가 동생의 골반은 이미 첫째 출산 때 살짝 내려 앉았는데, 둘째가 만삭이 되니 더 심해져 앉았다 일어서는 거 조차 너무 힘들어했다. 진짜 사람 얼굴이 그렇게까지 구겨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종이 구겨지듯이 구겨지더라. 세상에. 그런 반면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는 나와 동갑인 제부가 왜 이리도 얄밉던지, 동생이 한참 연상 같이 느껴졌다. 서론이 길어졌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드라마는 별 잘못은 없지만 얄미워진 제부에게 소개하고 싶은 드라마! 바로 남성도 임신 가능한 세계관을 가진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이다.
기본적으로 임신은 여성이 많이 하지만 아주 낮은 확률로 남성도 임신이 가능하다는 설정이다. 꽤나 리얼한 것이 남성은 여성 생식기와 구조가 달라 자연분만은 못하고 무조건 제왕절개로 출산할 수 있다. 그래서 남성 임신의 경우 사산될 가능성도 높아 임신 자체가 학계에서만은 축복이고 귀한 케이스다.
주인공 히야마는 잘 나가는 광고대행사의 크리에이터다. 일 센스 있게 잘하고 승진으로 가는 탄탄대로를 달리는 그는 꽤나 성인지 감수성 높은 광고 또는 카피를 만들어내기도 해 당연 여성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밤에는 그렇게 자신의 인기에 올라타 여러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곤 하는데, 어느 날 몸이 너무나도 안 좋은 거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아니 그 남자는 결국 임신하고 말았다!
평소 육아는 공동으로 하는 게 당연하죠~ 요즘 그런 말씀 하시면 큰일나요~ 하며 허허 웃어대던 그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자신의 커리어에 금이 가게 될 걸 염려해 바로 중절수술을 받겠다고 한다.
그랬더니 의사 왈,
“…그럼 아이 어머니 되시는 분 동의 받아오셔야 해요.”
히야마는 좌절, 네? 누구 애인 줄 모르겠는걸요?
의사가 어허, 이런이런, 아마 이 날 정도에 수정됐을 거예요. 한 번 추적해보세요. 환장하겠다.
그렇게 그 날 밤을 함께 했던 아키(캐스팅은 무려 우에노 주리다)를 찾아간다.
그리고 부탁한다. 틱틱대면서도 간곡히.
빨리 사인해달라며, 부탁받는 아키, 매우 혼란스럽다. 남성 임신? 실화냐? 1차 충격.
뭐? 진짜 내 애 맞아? 2차 충격. 아키는 순간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싶다. 쓰레기 남자가 된 기분.
아키는 일 욕심이 많은 칼럼니스트다. 글쟁이에게 이런 희귀한 경험은 대찬성이다. 게다가 어머 내 몸에 생채기 하나 없이 내 주니어가 생긴다고? 완전 땡큐지 싶다. 그 후 변화하는 아키의 심정은 드라마로 확인해보시길!
히야마는 임신하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임신한 몸으로 회사에 다니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몸소 겪는다. 잠 오지, 수염 많이 나지, 스타일 구기지, 한 번은 회의 때 가슴팍 꼭지와 겨드랑이가 흥건하게 젖었고 상사의 말 한마디에 예민해져 울면서 뛰쳐나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히야마는 남성 임신과 관련된 상품이 비참할 정도로 형성되지 않은 걸 보고 임신남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는 30분짜리 8화로 짧은 구성인데도 사회 곳곳의 단면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지 꽤나 감탄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남녀 역전 소재는 꽤 흔하다. 하지만 이건 판타지를 리얼하게 녹여냈다. 소재는 판타지지만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
많은 남성들이 이 드라마를 봤으면 좋겠다. 나 역시 짝꿍에게 시도했었다. 짝꿍은 시종일관 미간을 찌푸렸고 결국 중도하차했다. 속이 불편하다나 뭐라나. 짝꿍은 왠지 모르게 불편했을 거다. 본인이 느끼지 않아도 될 고통을 괜히 낱낱히 들이미는 거 같아 싫었을 거다. 마치 우리가 재난 영화를 보면 불편하듯이 말이다. 그런 반면 여성들이 보면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출산 경험이 없어도 우리는 늘 간접경험을 하고 언젠가 겪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리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그래서 임신 앞에서 너무나도 허둥지둥 대고 당황스러워 하고 남일일 때는 온갖 쿨한 척 다하다가 막상 자기 일 되니 모든 게 달리 느껴지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니 뭔가 통쾌하다. 봐봐, 직접 겪어보니까 다르지? 쉽게 생각하지 말란 말야.
스포가 될 수 있지만 이 드라마는 사실 과정을 보는 게 중요하니 마지막화 내용을 하나 소개하겠다. 육아휴직 후 복귀한 히야마에게 여성 동료들이 묻는다.
동료 : 아니, 히야마군, 나는 복귀 안 할 줄 알았어. (자존심 생각하면) 그대로 그만둘 지 알았지 뭐야~
히야마 : 아니 왜요? 이런 거 다 챙겨 먹어야죠. 제가 왜 일을 관두겠어요~ 으쓱
여성 동료가 말한다.
남자들은 참 귀여워~ 저런 걸 뭐 자기만 아는 줄 안다니까~ 우린 이미 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렇다. 우리는 그런 모든 걸 감내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다시 시작하고 또는 어쩔 수 없이 쉬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공감을 원할 때 아니면 하이퍼리얼리즘 코믹드라마가 보고 싶을 때! 부담없이 정주행 30분 8화 총 4시간동안 즐겁게 <히야마 켄타로의 (우당탕탕) 임신>을 보자. 남성에겐 신선하고 신성한(!) 충격을 여성에겐 절절한 공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 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