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주인이 되었습니다.
펜션이 국내에 들어오며 펜션붐이 일어났었다. 몇 년 전 캠핑붐이 일어났던 것처럼 당시에는 너도나도 펜션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펜션 하는 친구 없냐고도 했던 때였다.
바로 우리가 펜션 하는 친구였다.
친구들이며 가족들이며 우리가 펜션을 한다니 다들 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 펜션은 인기가 많은 펜션이었다. 지인들이 오고 싶어 하는 날은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빨간 날이었다.
가족들은 몇 달 전에 일찌감치 구두(?)로 예약하고 왔고, 친구들은 우리 집 다락에서 자거나 조금 한가할 때 평일에 왔었다. 어쨌든, 우리 집에는 늘 지인이 와있어 북적거렸다.
대문자 I라 가끔은 지치기도 하고 조용히 있고 싶기도 했지만, 나가서 친구 한 번 만나기가 쉽지 않은 직업이다 보니 찾아오는 친구들이 반갑기도 했다.
한 친구부부는 객실이 꽉 찰 때면 텐트를 가지고 와서 공터에 치고 잤다. 한 여름에는 강아지들을 데리고 이동식 에어컨까지 가지고 와서 몇 날 며칠을 자기도 했다. 꽤나 신문물(?)을 좋아했던 그들은 신기한 기기들을 가지고 와서 우리 집에서 시험해보기도 했다.
무전기를 종류별로 가지고 와서 성능 테스트 겸 손님들이 도착할 때면 입구로 내려가서 무전기로 알려주기도 했고, 빔프로젝터를 알려줘서 카페에 설치해 큰 경기가 있을 때는 대형 스크린으로 손님들과 스포츠 경기를 보았고, 손님들에게 영화를 틀어주기도 했으며 손님들이 프러포즈를 하고 싶다고 연락했을 때 스크린을 통해 연인에게 감동적인 영상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아기 때부터 여러 차례 심장수술을 했던 딸을 가진 친구는 우리 집에 와서 엄마와 딸이 함께 치유의 시간을 가졌던 듯하다. 병원을 들락거려 걷는 것도 늦었던 아기가 첫걸음을 뗐던 것이 우리 집이었다. 한창 바쁠 때였지만 우리 집에 오면 행복해하는 아기를 보면 우리도 같이 행복해 지곤 했었다.
평일에 회사를 다니던 한 친구부부는 주말마다 우리 집에 왔었다. 꽤 피곤했을 텐데 주말마다 왔다가 일요일에 가는 것도 아쉬워 월요일 새벽에 바로 서울로 출근하기도 하더니 결국 회사를 관두고 인근에서 펜션을 임대해하게 되었었다.(주변에 우리 때문에 펜션을 하게 된 지인이 세 팀이었다!)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있던 친구 부부는 한국에 나오면 우리 집에 와서 며칠씩 묵었다. 한국에 들어온 후에는 친정대신(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우리 집에 왔다 가곤 했었다. 요리를 잘하는 그들 덕분에 며칠간은 식사준비는 물론, 이탈리아 미식을 접하고 배우곤 했었다.
그 외에도 아직 솔로였던 남편 친구나 동생들은 몇 달간 살다 가는 일도 허다했다. 북적거리다가 가고 나면 또 그것대로 조용해서 좋기도 했고, 또다시 북적이면 그것대로 또 반갑고 즐거웠었다.
언제나 바빴던 우리에게는 도움의 손길이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 집에 오면 손님이 아닌 주인의 마인드로 손님들에게 자연스럽게 서빙을 하고 안내를 하고 손님들에게 바비큐 불을 피워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손님들은 그들도 우리 펜션의 스텝으로 알곤 했었다.
어쩌면 우리가 있어 그들이 행복했던 것보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행복했던 게 더 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더 이상 가지 않는 그 공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만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