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주인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펜션이란 게 힘든 일은 하나 없고 즐겁기만 한 일인가 싶은 순수한 궁금증이 생길 것도 같다.
물론, 그럴리는 없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아침부터 밤까지 힘든 일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고,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일이 재미있기도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며 시스템이 정착되면서부터는 처음보다 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태풍이나 홍수, 폭설 등의 자연재해와 개인적인 일로 슬프거나 속상할 때, 웃는 얼굴로 손님을 응대하는 일은 힘들었다.
펜션을 오픈하고 다음 해에 있었던 기록적인 장마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창문을 두드리던 빗줄기 소리에 밤새 잠을 설치고 떨리는 손으로 기사를 검색했었다. 길이 물에 잠겨 들어올 손님도 못 오고 나갈 손님도 못 나가게 되니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하는 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남편은 불어난 강물을 확인하러 갔다 온다면서 한참을 오지 않았었다.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지인과의 식사자리에서 그는 불어난 강물에서 낚시를 했었다고 실토했다. 어이없어하는 눈길을 느끼며 남편은 당당하게 말했다.
"천재지변인데 걱정하면 뭐 해!"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손님들도 길이 끊겼다고 하니 수긍을 했으니. 그래도 나는 노심초사 피가 마르는데 남편이란 사람은 그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약이 올랐었다.
겨울이 되면 산골짜기 펜션은 비탈진 길이 얼어서 손님들 차가 기어서 오곤 했다. 후륜구동차를 가지고 온 손님들은 SOS를 쳐서 남편이 내려가서 데려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느 폭설이 내린 추운 겨울날 남편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남편은 연락을 받고 새벽에 바로 장례식장으로 출발했고, 나는 픽업손님이 있어서 아침시간이 끝나고 버스를 타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고 출발을 할 생각이었다.
수없이 손님들을 태우고 다녔던 길이라 별생각 없이 할아버지와 백일이 갓 지난 아기와 엄마를 태우고 산골짜기를 내려가던 중, 가장 비탈진 곳에서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놀라서 차를 겨우 세우고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 근처 동네 아저씨한테 연락을 해서 손님들을 모셔다 드렸다.
손님들을 다른 차로 옮긴 후 차를 보니 조금만 더 미끄러졌으면 길 옆 벼랑으로 차가 굴러 떨어졌겠다 싶었다. 그제야 몸이 덜덜 떨리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비나 눈이 오면 핸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자연재해도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나무로 만든 펜션의 관리도 애를 먹였다. 나무로 만든 집들은 시각적인 효과 외에도 방충, 방수, 발수 등을 위해 정기적으로 오일스테인을 발라서 보호해 줘야 한다. 우리 집은 특히 나무데크가 큰 면적을 덮고 있었기 때문에 관리가 쉽지 않았다.
하나에서 열까지 돈이 드는 일이라 예약을 막아놓고 4일간 맘먹고 둘이서 직접 오일스테인을 사다가 칠을 하였다. 결과는 몸살이 심하게 났고 며칠을 앓아누웠었다. 이때의 교훈으로 다음 해부터는 사람을 사서 하루 만에 칠을 했다.(칠은 전문가에게 맡기자!)
물리적인 일들 외에도 시골마을 옆에 있다 보니 이래저래 시끄러운 일들이 꽤 있었다. 그때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기도 했고, 바쁜 와중에 남편이 계속 불려 가기도 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트러블이 간혹 생기기도 했다.
이 일들 외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마음 졸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펜션을 하겠냐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말할 것 같다.
어떤 일을 했어도 이 일처럼 나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펜션도 결국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이 된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손님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지 손님들도 느끼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지니까 말이다. 결국 모든 일은 뻔하지만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