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갈비 빠에야, 시루떡 티라미수

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 주인이 되었습니다.

by 소담

골짜기 펜션에 살다 보니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배달음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배달음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바쁘고 힘들 때면 손가락 몇 개만 움직여서 먹을 수 있는 간편함이 그리워졌었다. 하지만, 그게 안 되는 곳이 우리 집이었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간신히 만드는 김치찌개가 전부였던 내가 그곳에서는 TV를 보다가 짜장면이 나와서 먹고 싶으면 냉장고에 춘장이 남아있는지 기억하려 했고, 치킨이 당기는 날이면 닭을 사 와서 튀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주방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음식재료가 잔뜩 있게 되었다. 동남아 음식재료부터 일식, 중식, 이탈리안, 멕시칸 등 웬만한 것들은 직접 만들어 먹게 되었다.

물론 직접 만들어 먹는다고 했지 결과물의 완성도는 알 수 없다. 나도 먹어보지 못했던 것을 장금이처럼 머릿속에 맛을 그려가며 만들었으니!


그때는 필요한 모든 기구가 없으면 없는 대로 내 맘대로 만들었다. 빠에야를 먹고 싶은데 단골손님들과 함께 먹으려면 시중에 있는 빠에야팬으로는 택도 없으니 커다란 닭갈비팬을 돌려가며 만들었다. 닭갈비팬은 여러모로 유용해서 10인분 이상의 파스타를 할 때도 사용하곤 했다.


만화책을 보다가 오꼬노미야끼야끼우동이 먹고 싶으면 냉장고를 뒤져 만들어 먹었고, 팟타이, 태국카레, 깐풍기, 애플파이 등 무엇이든 겁 없이 만들었다. 누군가의 생일이면 마스카포네와 생크림을 팔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휘핑을 쳐서 시루떡 비주얼의 티라미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뭐니 뭐니 해도 하이라이트는 김장이었다. 저녁 바비큐를 판매를 하고 있었기도 했고, 펜션 손님들이 찾으면 인심 좋게 줄 수 있도록 1년 내내 사용할 김치를 담아야 했기 때문에 꽤 많은 양의 김장을 해야했다. 중요한 만큼 젓갈부터 홍시니 뭐니 좋다는 것을 이것저것 넣어보며 정성껏 만들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도와주러 오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양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김치는 겨우내 땅 속 항아리 속에서 맛있게 익어갔었다. 덕분에 가족들이며 지인들이며 단골손님들까지 우리 집에 오면 집에 돌아가는 양팔에 맛난 김치를 안겨 보낼 수 있었다.




그곳을 떠나와서 한동안은 배달음식외식에 빠져 살았다. 집 앞에 반찬가게가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맛있는 식당들이 즐비하고, 그것마저 귀찮으면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이면 집으로 음식이 오니 얼마나 신이 나던지!


펜션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몇 번을 해봐도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그 공간과 그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아서일까?


이제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지만, 산골짜기에서의 먹부림이 생각나는 음식을 볼 때면 아주 가끔 그때가 그리워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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