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주인이 되었습니다.
산골짜기 우리 동네에는 작지만 예쁜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는 걸 느낄 때마다 아이가 크면 저 학교에 다니겠지 생각을 했다. 그래선지 지나갈 때마다 괜히 한 번 더 눈에 담게 되었었다. 한편으로는 전교생이 많아야 대여섯 명이라던데 폐교라도 되는 것은 아닌지 미리 걱정을 했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시골동네다 보니 오지학교로 분류가 되어 가산점을 받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선호한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었다. 어쨌든 아이들이 몇 명 안 되니 폐교될까 봐 인근 도시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출근길에 태우고 다닌 적도 있었다.
마을에 인간문화재급(!) 어르신이 계셨는데 재능기부로 학교 아이들에게 하나둘씩 단소며 해금 같은 전통악기를 틈나는 대로 가르쳐주셨다. 아이들은 생소한 악기를 무료로 재미있게 배워서 좋고 어르신은 귀여운 아이들과 무료했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니 서로 좋았다. 심심풀이로 가르치시는 거에 비해 완성도는 꽤 그럴싸했는지 외부행사에 초청 돼서 공연도 다녀왔다. 마을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출세했다고 농을 하며 내심 뿌듯해했다.
아이들이 적다 보니 수업하다가도 선생님이 "나갈까?" 한마디만 하면 전교생이(그래봐야 대여섯 명이지만!) 운동장에 나가서 놀고, 눈이 내리기 시작해도 우르르, 뭔가 이벤트가 있으면 또 우르르 나가서 노는 즐거운 학교였다.
20분 정도거리에 이 학교의 본교가 있었다.(사실 본교라고 해도 전교생이 4~50명이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주에 한 번인가 두 달에 한 번인가 본교에서 분교 학생까지 모여 조회를 했었다. 그러던 중 어른들이 보면 피식 웃을 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꽤나 중요했던 사건이 있었다. 본교생이랑 분교생이 싸움이 붙은 것이다. 싸움의 발단은 본교생이 분교생을 놀리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학교위치는 거기서 거기지만 나름 본교생 프라이드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분교생들이 보통 꼬마들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날 조회에 참석한 아이들이 죄다 펜션집 아이들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아이들이다.
"너네 저기 00리에 산다며? 거기 멧돼지도 집에 오고 그런다던데? 집 밖에 무서워서 어떻게 나가냐? 아이고 무서워라" 본교아이들이 낄낄거리며 자기들끼리 툭툭 치며 신나 했다.
분교아이들은 순간 조용해지며 제일 연장자였던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집 밖에 왜 나가? 집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스크린으로 영화 보고 보드게임하고 노는데. 수영 못할 때는 사륜바이크 타고 놀러 나가는데 뭐가 무섭니?"
본교아이들의 KO패였다.
아이들은 조회가 끝나고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해져서 학교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본교아이들이 분교아이들을 놀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 소리를 전해 듣고 어렸을 적 아이들 싸움에 등장하던 우리 집 차는 소나탄데 너네 집 차는 뭐냐, 우리 아빠는 부장인데 너네 아빤 뭐냐 하던 것이 생각났다.
어쨌든 아이가 7살 때 산골짜기 펜션을 팔고 도시로 나오게 되면서 결국 그 예쁜 학교는 다니지 못했다. 우리가 나오고 몇 년인가 지나서 결국 폐교가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가끔 한겨울에 함박눈이 내리면 작고 예쁜 학교 운동장에 전교생이 쏟아져 나와 눈싸움하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