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축하하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
생일이 빨라서 학교에 일찍 입학해야 했다. 동네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할 때면, 달리기가 빠르다는 소리를 종종 듣던 때였다. 학교에 간다는 건 각자의 생일들이 운동회를 열어 달리기 경주라도 하는 건가라는 상상을 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지만, 같은 해에 입학한다는 이유로 윗집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당시에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허용되는 특례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처음 울었던 건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때였다. 100미터 달리기 경주에 3등으로 들어와서 울었다. 생일은 빠른데 달리기가 느린 게 분했다. 운동회를 마친 후 적어도 생일보다는 빨라야 되지 않겠냐며, 매일 아침 등교 전 동네를 전력질주로 한 바퀴 뛴 다음에 등교했다. 덕분에 고학년이 되어서는 늘 학급 계주를 맡게 되었으니, 모든 행위에는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생일에 두 번째로 울었다. 당시 친구들은 생일이 되면,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 파티를 열었다. 생일 케이크와 분식이 차려진 생일상은 내게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는 토요일이면 초대받은 친구들이 무리 지어 하교했고, 함께 생일을 축하했다. 문방구에서 천 원짜리 생일 선물을 사가는 것은 초대에 답하는 룰이었다. (무려) 천 원어치 선물을 한가득 받는 생일자가 부러웠다.
하지만 내 생일은 늘 겨울방학 가운데에 있었다. 생일 파티를 하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아들이 가여웠는지, 부모님이 기꺼이 첫 생일 파티를 열어주셨다. 동네 친구들만 모인 작은 생일 파티였지만,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그날 생애 첫 탕수육을 먹었다. 질척이고, 시큼하던 탕수육 소스의 식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울었다. 그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생일 파티였다. 탕수육을 돈 주고 사 먹은 것은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후였다. 파티가 없으니, 축하받을 일도 없었다. 울음의 대가는 혹독했다. 하지만 탕수육이 맛없는데 어쩌라고(?)
내 꿈은 365일 지인들의 생일로 채우는 거야
어떤 지인의 꿈은 독특했다. 처음 만난 사람의 생일을 묻고, 그 사람의 생일을 캘린더에 저장하는 게 낯 선 사람과의 첫인사였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의 생일이 성탄절이라든가 1월 1일인 경우에는 희귀한 생일을 모았다고 기뻐했다. 그는 생일이 되면 사람들에게 기프티콘을 보낸다고 했다. 매일 누군가를 탄생을 축하하고 싶다는 그의 포부가 흥미로웠다.
나는 생일이면 카카오톡으로 불쑥 찾아오는 기프티콘 세례가 싫었다. 받는 사람의 기호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무의미하게 날아오는 선물을 받는 게 불편했다. 먼저 기프티콘을 받아버리면 꼭 비슷하거나 그보다 큰 금액으로 보답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싫었다. 배송지 입력 기한을 놓쳐서 받지 못하는 선물이 늘어났고, 사용기한을 넘겨 환불을 받거나 취소되는 선물도 늘어갔다. 모든 게 낭비였다. 선물을 준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사람이 선물 수령을 거부했다는 메시지가 가는 모양이었다. 그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관계가 멀어지거나, 끊기게 됐다. 일방적인 선의에 대꾸하는 것이 피로했다.
올해 생일에는 카카오톡 생일 알람을 껐다. 모처럼 고요한 생일을 보냈다. 직원들의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도 없었고, 언제 먹을지 알 수 없는 케이크, 커피 기프티콘은 없었지만 오히려 풍족했다. 만나는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해줬고, 누군가는 정성껏 포장한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생일은 어떻게 보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업무용 다이어리를 처음 받자마자 나의 생일을 제일 처음 적었다는 사람에게서 들었던 물음이었다. 따뜻했다.
생일은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다정한 인사 세례를 받고, 잠들기 전 일기장에 적었던 문장이다. 늘 들여다보는 메신저 창에 우연히 내 생일이라는 알람이 떠서 축하를 당해버리는(?) 것보다 누군가의 탄생을 기억해 주는(!) 마음들이 더 따뜻했다. 왜 더 따뜻했을까? 기억력의 한계가 있는 현대인들이 누군가의 탄생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억은 지워버려야 하기 때문일까?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마음을 쓰는 행위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카카오톡 생일 알람을 꺼두는 게 정신 건강에는 더 이로웠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역시 적응을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겠지? 마치 생일처럼 빨라지기 위해 매일 아침 동네를 달렸던 것처럼.
이런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쓰면 카카오가 안 좋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