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약속은 지켜지지 않으니까
"이번 신호만 바뀌면 헤어지는 거야."
그녀를 끌어안은 채 그는 속삭였다.
혹시라도 신호가 바뀌는 것을 그녀가 눈치챌까 그는 늘 신호등을 그녀의 등 뒤에 두었다.
"아직 빨간불이야."
"신호가 참 기네?"
헤어짐이 아쉬웠던 둘은 그렇게 몇 번이고 신호를 보내며 서로의 체온을 나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횡단보도 앞에서 서로를 꼭 안고 체온을 나누는 다른 연인을 바라보며,
그는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와 헤어지는 것은 늘 아쉬웠다.
그녀가 부재할 때 그녀의 존재감이 더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녀와 휴대전화를 붙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휴대전화의 온도는 그들이 나눴던 체온보다 더 뜨거웠다.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모르고 지냈어. 이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면,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밤에 너랑 손잡고 걷고 싶어."
"우리가 겨울이 아니라 봄이 되고 여름, 가을도 되면 좋겠어. 우리가 계절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손발이 차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녀를 달래던 그였다.
겨울이 지나면 함께 계절이 되기로 약속했다.
지키지 않을 약속은 하지 않겠다던 그녀는 겨울이 끝날 즈음 그를 떠났다.
언제나 그렇듯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영원한 건 영원이라는 단어뿐*이라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을 곱씹었다.
밤은 4월의 라일락 향을 더욱 진하게 했고, 그녀의 부재는 그녀의 존재감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떠나고서야, 그는 그녀의 존재를 더욱 깊게 느꼈다.
어쩌면 그녀에게도 라일락 같은 향이 났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답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입력했다.
'좋은 밤, 좋은 꿈, 안녕.'
그녀의 밤이 소란스럽지 않고, 편안하기만을 바라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오지은 -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 <사랑의 모양>은 영화 <Shape of water>를 관람한 후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의 모양이 궁금해서 시작한 사랑에 관한 아카이브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