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맨 May 25. 2023

국가는 머리땋기 수업을 법정의무교육으로 지정하라

매일 아침 딸을 등원시키며 전쟁을 치르는 아빠들을 위해

연필아, 안녕?


네가 이 편지를 읽고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놀랍게도 이 편지를 쓰는 지금은 세상에 전쟁이라는 게 일어나고 있어.

국가와 국가가 서로를 향해 미사일을 겨누고 영토를 침범하고 있지.

이미 전쟁으로 국토가 절반으로 나뉜 나라에 사는 국민으로서는 남일 같지 않아 마음이 쓰여.


사실 우리 집에도 매일 아침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

(영토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침범하고,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울음만 들리기는 하지만)

여름에 가까워지면서 날씨가 제법 더워지고 있고, 네 머리도 자라고 있기 때문이야.

아빠를 닮은 탓인지 유독 활동량이 많고, 집에서는 우다다하며 뛰어다니는 너는 늘 머리가 젖어 있어.

엄마는 새벽 너의 머리를 꼭 묶어주라는 미션을 내리고 출근을 한단다.


6시 30분이 되면 네가 부스럭 거리며 잠에서 깨 거실로 나와.

네가 주스를 마시고 기상 기념 유튜브 시청을 하기 시작하면 아빠는 너의 머리를 땋기 시작한단다.

머리를 길러보지 않은 아빠는 어떻게 해야 네 머리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묶을 수 있을지 고민해.

나름 많은 미용실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는데, 아빠 머리 손질보다 네 머리 땋는 게 더 어렵고 고되구나.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결국은 잘하게 된다는 말이 있어.

일주일 정도 고생을 머리 땋기로 전쟁을 치르고 나니 이제 아빠도 훈련이 된 것 같아.

이제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아버님이 땋으신 거냐"라고 묻고 놀라셔.

아빠가 머리를 만지면 칭얼거리던 너도 이제는 적응을 한 모양이야.

얌전히 앉아 한 편의 클립을 보기도 전에 아빠는 네 머리를 땋을 수 있게 됐단다.


이 정도면 아빠들 중에서는 상위 1% 아닐까?


법정의무교육으로 모든 아빠들에게 머리땋기 수업을 열었으면 좋겠어.

학교에서 하는 게 힘들다면 직장이나 동사무소에서 하면 어떨까?

동네 미용실에서 커트하는 아빠들을 위해 머리 땋는 법을 알려주면 어떨까 상상했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많은 연습이 필요하거든, 너에게도 인내가 필요할 테고.


너의 기상부터 등원을 준비하는 아침의 3시간 남짓은 매일이 전쟁 같아.

하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과는 달리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종전된다면, 아빠는 조금 슬퍼질 거야.

어설프게 너의 머리를 땋던 오늘을 부디 그리워하지 않게 되면 좋겠어.

너만 괜찮다면 꽤 오랫동안 너의 머리를 땋아주고 싶다.


너의 마음을 훔칠 수 있게 열심히 머리 땋기 연습을 할게.

그러니까 국가가 발 벗고 나서서 아빠들을 위한 머리땋기 수업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꼭 일찍 집에 들어갈게, 이따 보자. 사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와의 첫 소풍을 위해 도시락을 싼 30개월차 인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