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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8. 2022

우리의 신호

얼마 전 최신형 핸드폰을 샀다.

     

최신 유행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나는 계속 유선 이어폰을 썼었는데, 새로 산 핸드폰에 유선 이어폰을 꽂는 단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블루투스 헤드셋을 큰맘 먹고 구매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점점 선이 사라진다.

요즘은 무선 충전이 대세라서 버리지 못한 전자 제품 유선 충전기만 해도 서랍 한가 득을 채운다.

앞으로는 기술이 더 발전해서 충전기를 가져가지 않아도 무선 충전 공간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충전된다.

점점 눈에 보이는 선들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선들만 이리저리 연결된 느낌이다.


마치 현대인들의 인간관계처럼,     

휴대하기 편한 핸드폰의 편의성 때문에,

내가 사랑하던 이들을 언제나 연락할 수 있다는 간편성 때문에,

때가 되면 알려주는 어플 알람 때문에, 

보고 싶은 다르게 점점 연락을 안 하고 있다.     


이제는 생일을 외우지 않아도 친구의 생일 알림이 뜬다.

일 년 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생일 알림에 맞춰서 보내는 생일 선물들,

특별한 날 보낼 수 있는 모바일 카드들,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경조사비들,

만나지 않고 메신저로 생존 신고만 하는 사이버 친구들이 점점 늘어간다.


무선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관계성은 어디에 연결된 것일까?     


가끔은 상대방과 내가 연결된 것인지 나 혼자 연결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육안으로 보이지 않아서 한 해에 한 번씩 신호를 보내서 확인한다.

상대방이 그 신호에 회신하지 않으면 괜스레 나 혼자 연결되었다고 착각한 것 같아서 머쓱해진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 보내는 자잘한 신호라도 상대방에게 닿으면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삶의 단위가 달라진 친구들과 얘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내가 겪지 못한 다양한 삶의 감각을 듣는 건 즐겁다.     


우선 개인적인 근황을 주고받은 후,

아주 먼 과거에 있었던 재미났던 일들을 떠올리며 웃는다.     


유치하게 찬란했던 그 시절을 함께 견디어준 그들이라서,

그때로 돌아가서 부끄럼 없이 스스로 내려놓고 맞장구를 친다.     


물론 신호가 가다가 손실되거나 잘못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 잃어버린 우리의 감각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나는 신호를 보낸다.     


이번에는 부디, 내 신호가 상대방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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