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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25. 2022

나의 브랜드


나는 하늘색 물감을 팔레트에 묻히고 물을 섞는다.

종이가 마르기 전에 덧칠한 다른 색상이 섞이고 섞여서 하늘의 색이 변질한다.     


나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처럼,     


처음에 회사를 입사할 때는 선명했던 하늘색이 회사에 적응할수록 경계선이 흐릿해진다.

     

내가 무슨 색을 그린 건지 헷갈릴 때쯤,

주변 사람들이 나의 회사의 색에 집중한다.     


회사의 주식이 올랐다거나 내렸다거나,

뉴스에 나오는 회사의 소식을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물어본다.

나 또한, 그들의 의식에 맞장구치며 나의 존재를 물로 희석한다.     


회사에서 강요하는 진한 색이 덧칠해져서,

나의 색상은 점점 탁해진다.

그것이 내가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색인 것처럼,

그 색에 나 또한 동화된다.  

   

그렇게 스스로 색을 잃어버린 채, 색채의 농도는 점점 선명해진다.    

 

갑자기 회사의 사정에 떠밀려서 그만두게 되어버린 나의 선배들과의 대화 속에서,     

예전에 회사에 쏟았던 재미와 열정들은 흐릿해지고,

수십 년간 해오던 일이 너무 무료하다고 얘기한다.     


회사를 벗어난 선배는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잃어버린 색을 찾아,  

마른 붓을 가져가서 진한 색을 흡수시킨 다음 타올로 닦아 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선배는 이윽고 자신이 회사에서 배운 것들을 늘어놓으며,

배운 게 회사 일이지만 그 경험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져보고 싶다고 얘기한다.     


나 또한 회사에서 겪었던 경험을 모아 글을 쓰는 것처럼,

수많은 경험이 덧칠해질수록 그림의 윤곽이 잡힌다.     


그 세월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조금씩 덜어내서 나의 것으로 만들면 된다.     


물을 타서 여러 번 덧칠할수록 새파란 가을의 그림이 서서히 완성된다.

그 그림 속에서 꽃이 활짝 핀 채 흩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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