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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6. 2023

다이어리

회사 위 책상마다 모두의 개성이 담겨 있다.     

크게 비교한다면 책상 위에 아무것도 놓지 않고 노트북만 놓여 있는 사람과 책상 위에 영역표시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내 책상 위는 서류 뭉치들이 꽂힌 책장과 달력과 포스트잇, 계산기, 스템플러, 테이프, 연필깎이 그리고 물컵과 핸드크림도 있다. 각티슈와 물티슈도 쌍으로 가지고 있다.     


손만 뻗으면 모든 것을 집을 수 있는 개성이 있는 자리라고, 내 물건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그러나 포화 상태가 책상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물함에 서류들이 한 두 개씩 삐져나오고 있다.     


몇 달 전, 내가 속한 팀 이동하는 날, 

나는 4개의 상자가 필요했다.     

다른 동료들이 나의 많은 짐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그중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건 다이어리였다. 

입사 때 쓰던 다이어리들을 한 개도 버리지 않은 채, 

몇십 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서 사물함을 폭파하기 직전이었다.

그 옆에 호기롭게 시작한 영어와 중국어 회화책들과 프린트물이 한가득하다.     

다시 찾아서 보는 것도 아닌 것들을 수북하게 쌓여 있다.     


마치 정리되지 못한 것들처럼,     


회의 때마다 한마디도 놓치기 싫어 빼곡히 적어 둔 다이어리들, 

점심시간마다 외국어 공부하던 흔적, 

아이템별로 정리해 둔 노트들,     

지금은 숙지하기도 했고 업무의 영역이 달라져서 보지 않지만, 

예전에 품었던 열정이 가득한 한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십 년 전 그때를 보내고,

치기 어린 열정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     


나를 명명 짓던 수많은 다이어리와 명함들을 버리고 새로운 자리로 이사를 한다.     


그곳에서 새로 시작할 첫 페이지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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