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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02. 2024

2.누구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입장해야 하는가?

토요일 오후, 서울 시내는 차로 붐빈다. 다리 위에 갇힌 준호의 자동차 너머에는 출렁이는 한강물이 붉은 해를 삼키고 있다. 그는 계속 초조한 듯 시계를 보고 있다. 나는 뻔히 아는 시나리오지만 짐짓 모른 척 묻는다.

-오빠, 오늘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어! 그게 비밀이야. 그냥 오빠만 믿고 따라와~

한참을 가다 서다 반복하다가 세시간만에 외곽으로 빠졌다. 이내, 강변을 타고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내달린다. 그가 창문을 내리자 찬바람이 안으로 들어온다. 

-오늘 집에 안 들어가도 되지?

수줍은 듯 속삭이며 말한다.

-예.

나는 서둘러 어머니에게 ‘오늘 못감’이라는 문자를 남긴다. 강을 넘고 산비탈을 넘어 도착한 푸른 초원 위에 세워진 펜션, 그림에서 본 듯한 하얀 울타리에 파란지붕, 마치 여기가 현실인지 아니면 꿈 인지 나의 감각을 흔든다. 입구부터 펜션 안까지 바닥에 깔린 초가 길을 비춘다.

-다행히 시간을 맞췄네. 들어가자.

펜션 앞마당은 산등성 사이로 굽이진 개울가가 보인다. 주위에 건물은 오로지 이 펜션 뿐, 초록빛 대지와 맞닿은 별들이 하늘 위를 수놓고 있다. 

그가 재촉한다.

-들어와 춥다~

그가 안내한 펜션 안은 붉은 장미 꽃잎이 레드카펫처럼 깔려 있자, 나는 장미 꽃잎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거실 중앙에는 붉은 꽃잎이 하트를 그린다. 나는 놀란 눈으로 준호를 찾는다. 준호는 등 뒤에다가 무언가를 숨기며 다가온다.

-처음에 만났을 때,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나는 이미 지쳐있었어. 너를 만나며 알았어,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 다는 희망, 짧았던 시간이었지만 넌 나에게 새로운 나를 선물해 주었고 이젠 여생을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나랑 결혼 해줄래? 

그가 무릎을 꿇고 준비한 반지를 내게 내민다. 내 입가는 행복에 겨워 활짝 웃고 있으나 내 안에 깊은 어둠은 서글펐던 기억들을 상기시킨다. 지긋지긋한 가난, 무능력한 부모님, 태어날 때부터 몸에 새긴 인을 숨기려고 잠자는 시간도 없이 이를 악물며 살았던 과거, 여전히 난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가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어 준다.

-오빠 고마워요.

-평생 이 반지 끼고 있어야 해, 절대 빼면 안 돼~

-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준호는 일어나서 나를 안는다. 준호의 심장이 내 심장과 맞닿아 뛴다.

그는 정말 내게 이상적인 배우자 감이다. 그의 향수, 그의 말투, 야릇한 밤에 단둘이 나누는 대화까지도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옆에 준호가 없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상태로 이불로 돌돌 내 몸을 감싼 뒤 준호를 찾으려는 찰나 준호가 식탁을 들고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아침이야. 내가 평생 너 아침 챙겨줄게

준호가 사랑스럽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 행복이 깨지질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목, 준호가 운전하는 하얀색 자동차는 길 한가운데에 주차되어 있다. 준호는 라디오의 볼륨을 크게 높인다.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하죠? 딸의 이상형은 아버지 같은 남자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보면 딸은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는 거 같아요.’

머리가 뒤틀리는지 차멀미를 하는 것 같다. 남들은 하루에도 몇 번 내뱉는 일상의 소리가 나에게는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라는 소리, 너 같은 애는 사랑 받을 자격도 없다며 인이 박힌 자리를 후비는 듯싶다. 준호는 라디오 DJ말을 경청하다가 한마디 내 뱉는다.

-우리 아버님 언제 보지? 

-어? 오빠네 부모님이요?

-아니, 너희 부모님 말이야. 먼저 여자 쪽 부모님을 보고 결혼 승낙 받는 거 아니야?

-네, 맞아요.

나는 난감한 상황에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마땅한 변명, 시간을 끌어야 함에도 머릿속은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응 뭔데? 아버님이 어디 편찮으셔?

-아니요.

-그럼, 저번에 아버님이 사업하신다고 하셨지? 어디 지방이라도 가신 거야?

-지방 출장 가셨어요.

-아 그렇구나. 언제 오시는데

-한번 여쭤볼게요.


나는 과거의 기억을 리플레이 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출근길 모습, 아버지가 어머니와 싸우시는 장면, 나는 아버지에게 화냈던 장면, 아버지가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막노동하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서 숨었던 장면에서 멈춘다. 


-어~ 지방에서 건축일 하신다고 하셨지?

-네.

-바쁘시면 우리가 내려가도 되니깐, 일정 문의드려봐.

-네. 여쭤보고 말씀드릴게요.

어디에 살아 계신지도 모르는 아버지라는 존재 때문에 그를 놓치면 어떡하나 싶어서 초조 해진다. 어제 저녁에 받은 청혼반지를 만지작거린다. 그는 정말 내게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과분한 사람이다.


작년 봄 늦은 밤, 회사 근처 일본식 선술집에서 우연히 친해진 전략팀 최대리와 사케를 먹었다. 유부녀 최대리는 솔로인 나를 걱정해주었고 의도치 않게 전략팀 김대리를 전화로 불렀다. 김대리는 야근하다 말고 합류한 선술집에서 나를 보았다. 최대리는 눈치껏 집안에 급한 일이 있다며 생면부지 둘을 선술집에 두고 집으로 갔다. 

-저 얼마 전에 남자친구한테 차였어요.

-왜요?

-카톡으로 헤어지자고 와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었는데, 답을 안 해 주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깐 같이 일하는 여자동료랑 양다리였더라고요.

-연애에 대한 예의도 모르고 나쁜 사람이네요.

-그것도 모르고 매일 밤 울고불고 했죠. 결혼하자는 말만 믿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못한 제가 미련해요.

술을 홀짝 삼키면서 어지러운 척한다. 슬쩍 그의 반응을 본다. 그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본다.

-힘내세요.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어요.

-이젠 남자를 못 믿겠어요. 앞에서는 잘해주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다른 여자를 만나잖아요. 전 그가 결혼하자고 해서 아기도 낳고 행복한 가정 이룰 생각에 들떴었는데, 전 이제 사랑 같은 건 안 믿을래요.


나는 마지막으로 눈물 한 방울을 흘린 뒤 술을 마시며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그는 나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휘청거리는 나를 업고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는 내내 그는 내게 집의 주소를 물었고 나는 그의 무릎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그렇게 그가 그의 집까지 무사히 바래다주면서 인연이 시작했다.


물론 연인이 되는 건 수많은 우연이 겹쳐서 인연이 되는 것이지만, 내가 약간의 각본을 만들어 실행에 옮긴 부분은 있었다. 


최대리가 김대리의 사수로 김대리와 최대리가 각별하기에, 최대리와 친해지기 위해 나와 상관없는 다른 사업부의 전략팀 업무를 일부러 밤새워 도와주었고 그녀가 미안해서 나에게 밥을 사도록 만들었다. 최대리가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었을 땐, 부끄런 기색 없이 김대리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와 단둘이 남았을 땐, 폭탄주 세병에도 끄떡없던 내가 사케 반병에 취했다. 그와 함께 탄 택시 안에서 그에게 기대어 귀여운 척 애교를 부렸고, 그가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안 들리는 척 잠을 청했다. 그의 집에 들어가서 그가 쇼파에서 잠을 청하자 나는 화장실 갔다가 침대를 잘 못 찾아서 쇼파에 누워있는 그의 품에 안겼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그를 붙잡는 데는 이유가 있다. 훤칠한 외모, 1등으로 입사한 인재, 특진으로 승진한 그는 회사에서 유명 인사였다. 거기다가 입과 입으로 전해진 얘기는 그가 대기업인, 이 회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그와의 결혼은 여자의 인생 기로에서 맞벌이하고 육아에 찌든 삶에서 가정부가 해주는 브런치를 먹는 것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그의 눈총을 받고 싶은 여자직원이 바글바글한 그곳에서 일만하는 그는 싱글이 되었다고 해도 다가가기도 넘어오기도 어려운 존재다. 애달파하는 여자직원들은 그에게 음식을 사다주거나 호의를 베풀며 시시콜콜 그를 넘보았고 난 멀찍이 서서 그의 정보를 수집했다. 


그가 얼마 전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와 헤어졌다는 정보, 여자는 박전무님 따님으로 여자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폈다는 정보, 지금은 결혼을 위해 준비한 50평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는 얘기까지 수집했다. 그의 취향인 향수와 의상, 화장품을 구입하는 등 발품을 팔면서 그를 꼬시는 방법을 연구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3개월 동안 알콩달콩 사랑을 이어 왔다. 드디어 프로포즈까지 달성했다.


집 앞에 데려다 준 그에게 어젯밤 못 다한 애교와 함께 볼에 뽀뽀를 한다. 그는 나의 애교에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그의 자동차를 보내고 나는 입을 닦으며 집안으로 들어간다. 거실에는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다. 

-어서와~ 아침밥은 먹었고?

어머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방안으로 들어간다.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지영에게 전화를 건다. 지영이가 한참 뒤에 전화를 받는다.

-몰디브는 잘 도착했어?

-당연하지, 여기 좋다~ 너도 신혼여행으로 놀려와~ 그런데 무슨 일이야?

-오빠의 압박이 심해졌어, 아버지 빨리 보고 싶데.

-어떡하냐, 큰일이네.

-너네, 어머니 재혼소개해준 곳이 어디랬지?

-어! 잠깐만, 지금 남편 나온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어~ 

서둘러 전화 끊는다. 방 안 공허해진 울림, 아버지라는 존재에 발목 잡힐까 두렵다. 아버지가 10년 전에 가출하셨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준호에게 얘기한다면 어떤 반응일까? 아버지가 예전에는 일용직 근로자이고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의 부모님이 집안 형편이 기운다며 나를 반대하겠지? 나는 그의 부모님에게 천만 원짜리 수표와 물세례를 받을 것이고 애정만 남은 우리 둘은 결국 남남이 될 것이다. 아무리 계산해도 나오지 않는 답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텔레비전을 보는 어머니가 화장실 가는 틈을 타서 거실을 재빠르게 지나 어머니 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방에서 서랍과 장롱 속을 뒤져가며 아버지에 대한 단서가 있는지 찾는다. 수첩 안 전화번호부에 적힌 아버지 이름을 찾아보는 동안, 아버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성은 같은 홍씨가 있는지 한참을 뒤적거리는 도중, 인기척이 들려서 서둘러 방안을 정리하고 옷 속에 수첩을 숨긴다. 어머니가 방안으로 들어오신다.

-여기서 뭐해?

-아, 아니야, 그냥, 엄마 물건들 잘 있나 봤어. 뭐 필요한 거 없는지.

-우리 딸 아직도 엄마 걱정해? 엄마 이제 괜찮아. 우울증도 많이 나았고 요즘은 밥도 잘 먹고 하루에 한 시간씩 산책하면서 햇볕도 쐬고 그래.

-다행이네, 늘 몸 건강 우선인건 알지?

-그럼, 우리 딸이 사다 준 비타민도 매일 하나씩 꼬박꼬박 먹어.

-응 혹시 몸 안 좋은데 있으면 얘기하고, 쉬어~

나는 슬금슬금 뒷짐을 진 채 방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는다.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수첩을 살펴본다. 홍씨로 추정되는 인물 세 명을 적고 보니 돌림자다. 홍이수, 홍삼수, 홍사수 왠지 세 분이 형제인 것 같은 이름, 아버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와 점심을 먹은 후, 인터넷으로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 본다. 아버지 이름 란에 기재된 이름은 홍일수였다. 예전에 친척들이 우리 집에 와서 제사를 지냈던 일, 아버지가 맏이라는 얘기를 얼핏 듣기는 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10년이라는 세월이 아버지를 지웠을지도 모른다. 다시 수첩을 보자 맨 마지막 장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고, 그 위에 줄이 그어져 있고, 또 다른 전화번호가 적혀 있고 동그라미 줄이 그어져 있다. 어머니와 30년 세월을 같이해온 직감으로 이것이 아버지 전화번호일지도 모른다. 마치 미로처럼 써놓은 글씨를 통해 어머니가 나 몰래 아버지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과 아버지에게 도달했는지 모를 전화번호를 찾으신 것이다. 나는 핸드폰으로 받아 적고는 끝내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거실의 살짝 머리를 내밀고 주위를 살피다가 어머니가 잠시 화장실 간 틈을 타서 수첩을 되돌려 놓는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 통화를 할 수 없는 번호를 본다. 막상 전화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그동안 나를 버리고 잘 살았냐며 화를 내야 하는지, 내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며 욕을 해야 하는지, 그냥 아무것도 묻지 않고 상견례 때문에 전화했다며 몇 월 몇 시에 어디로 나오라고 말하면 되는 건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문뜩 나의 스무 살은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부모님이 남겨놓은 빚으로 낮에는 대학생활, 오후에는 과외, 밤샘 편의점 알바와 새벽에 주유소 알바를 전전하던 어느 날, 깜빡 졸은 사이에 영수증과 카드를 건네는 창틀에 끼여서 손가락에 상처가 났었다. 깊게 찔린 상처에 알바 자리 잘릴까 봐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돈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주유소 화장실에 주저앉아 숨죽이고 울었던 일, 9년이 지난 지금도 손가락 마디마다 남은 흉터가 손끝에 만져진다. 그때 아팠던 건 상처보단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서러움, 당장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 한강이 보일 때마다 빠져 들고 싶었고 수면제를 먹고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 들고 싶었다. 그렇게 딸이 잠식되어 갔을 때, 아버지는 내 곁에 없었다. 


핸드폰이 울리자 깊숙이 숨겨놓은 상처가 다시 숨바꼭질 한다. 액정에는 준호의 이름이 뜬다. 

-여보세요.

-어, 여보~ 잘 들어갔어?

-오빠가 집 앞까지 바래다줬으면서요~

-나, 어머니한테 너 얘기했어. 결혼하고 싶은 사람 생겼다고.

어머니라는 단어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어머님은 어떤 반응이세요?

-어머니야 좋아하시지, 보고 싶으시데.

-아~ 다행이다.

-사실 내가 부담 줄까봐 말 안 한 게 있는데, 아버지가 이번 년도 말에 정년 퇴직이셔, 그 전에 결혼식을 올렸으면 하셔, 한 5개월 남았잖아. 빠른 시일 내에 아버님 뵐 수 있을까?

-어! 네~

-전화는 해봤어?

-네, 3개월 뒤에 보자고 하셨어요.

-아버님께 내 이야기했어? 뭐라셔?

-좋아하셨어요, 보고 싶어 하셨고요.

-다행이네, 그럼 3개월 뒤에 아버님 보고 바로 상견례하고 결혼하면 되겠네.

-예.

-나 너랑 결혼하게 돼서 꿈만 같다. 우리 정말 잘 살자

-예.

-그럼 피곤 할 텐데 푹 쉬고 잘자~

-오빠도 잘자요.

준호의 전화가 끊어지자 내 머릿속은 혼미해진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따져가며 섭섭한 감정을 따질 처지가 아니다. 3개월 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짜든 가짜든 아버지를 여기로 모셔야한다. 나는 서둘러 아버지라고 추정되는 전화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이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 울린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보세요?

뜻밖에 여자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나는 말문을 잃고 서둘러 핸드폰을 닫았다. 나는 예상치 못한 답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최근 어머니의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를 버리고 어이없게도 아버지는 재가해서 행복하게 사시는 걸까? 나는 배다른 동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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