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가 끝나고 결혼은 급물쌀을 탄다. 예단비를 여사님께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고 예물은 여사님의 운전기사가 집에 배달하는 걸로 종결지었다. 신혼여행을 예약하고, 웨딩드레스를 맞추고, 준호네 집 인테리어도 바꾸고, 청첩장 디자인과 문구도 선별한다. 청첩장을 전하기 위해 지인들과 약속을 잡는다.
가로수 길에 즐비한 카페들 중,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에 오른 유명한 카페로 들어간다. 2층 테라스가 있는 테이블 중에 가장자리에 지영과 내가 마주보며 앉는다. 날씨가 화창한 탓에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하던 지영이에게 청첩장을 내밀자 지영이 반가워한다.
-드디어 네가 결혼을 하긴 하는 구나.
-그렇네.
-남자친구에게는 아버지 얘기했어?
-아니, 아직
-평생하지마.
-왜?
-안 하는게 좋겠더라고
-너 무슨 일 있구나?
-부모님이 싸우시고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어, 원래 부부는 싸우면서 정이 들잖아. 우연히 남편이 내가 아버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안 정도지 뭐.
-뭐라 해?
-뭐라 하긴 우리 아버지가 친자식이 아닌 나에게 집 해준 거잖아. 남편 입장으로써는 왜 말 안했냐며 황당해할 수는 있겠지. 친자식이 아니면 유산 상속을 못 받으니깐, 언젠가 알려줘야 하는 건 맞는데, 조금 이른 것뿐이야.
-그렇구나.
지영은 가방 속에서 아기 초음파 사진을 내민다.
-얼마 전에 산부인과 갔는데, 아이가 많이 컸더라고 심장 소리 듣는데 감동이었어.
지영은 천천히 아랫배를 문지르면서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벅찬 소녀가 엄마가 되어 새 생명에 벅찬 감동을 느끼는 모습, 나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싶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결혼식은 3일도 남지 않았다. 20년간 살았던 방안에서 나는 짐을 정리한다. 트렁크에 옷을 넣고 있을 때, 어머니가 기타를 들고 다가와서 묻는다.
-이거 가져 갈 거야?
나는 기타를 본다. 치는 법도 모르는 기타는 내게 짐 덩어리라 거절하려는 찰나, 옆에서 책들을 정리해주던 준호가 기타에 반색한다.
-기타네요.
-아버지가 연주에게 준 선물이라서 기타에 연주 이름이 적혀 있어.
-아버님한테 받은 거라면 가져가야죠.
포장이 완료된 상자를 준호의 차에 옮긴 후, 마지막으로 기타를 뒷좌석에 태운다. 나는 떠나가기 전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엄마, 그동안 고마워.
-너 혼자 아빠 노릇, 남편 노릇 하느라 고생 많았어. 우리 딸 곱게 키웠어야 했는데, 고생만 시키고, 시집가서는 사랑받고 살아
-응, 알았어.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거 가져가.
엄마가 내민 건 뜻밖에도 아버지의 발매도 못한 앨범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 모두 힘들었지만, 너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지.
엄마의 손에서 건네받은 앨범을 품안으로 숨긴 채, 서둘러 보조석에 타며 손을 흔든다. 이제 정든 집, 골목길,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친 소녀도 이젠 안녕이다.
이른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청담동 미용실에서 신부화장에서 머리 손질을 끝낸 후, 숨조차 쉴 수 없게 가슴팍을 조이면서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고급 세단을 타고 호텔로 이동하는 내내 길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본다. 오늘 나는 누군가가 겪었고 누군가는 겪을 예정인 결혼, 유부녀 대열에 합류한다.
호텔 웨딩홀 안, 유명한 건설 업체와 아버지가 졸업할 일 없는 명문대학교 건축학과 동문회에서 보낸 화한 10개가 줄지어 들어온다. 아버지의 회사 동료나 직장 선후배, 대학교 동창, 거래처 사람들로 대행서비스를 신청한 인력이 내가 미리 입금한 돈 봉투를 들고 내 명의 앞에서 돈을 지불한다. 외삼촌과 외숙모로 신청한 대행 인력은 내가 대기하고 있던 신부 대기실까지 들어와서 내 손을 붙잡고 눈빛을 교환한다.
준호를 보고 호들갑 떠는 동창, 부럽다고 말하는 노처녀 과장님, 예쁘다고 칭찬하는 회사 동료들, 심지어 어머니의 친구인 건축가 양반까지 신부대기실을 드나든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곧 식에 들어가야 할 시간인데도 지영이가 보이지 않는다. 지영이 결혼식에서 본 소영이가 대기실로 들어온다.
-예쁘네.
-고마워.
내 옆에 앉은 소영이와 다소곳하게 사진을 찍으면서 묻는다.
-결혼식을 앞둔 너한테 할 소리는 아닌데, 너 소식 들었어? 지영이 이혼한데~
-어! 말도 안돼~
-네가 지영이랑 별로 안 친해서 모르는 구나. 며칠 전에 지영이랑 같이 너 결혼식 가자고 연락했는데, 이혼했다고 못 가겠다고 하더라. 부조만 해달라고 해서 돈 받아서 왔지.
-그럴 리가.
-뭐, 딱하게 됐지. 뱃속에 임신도 했는데. 들어보니깐 사기 결혼 같던데?
-뭐? 사기 결혼?
-IT사장이라는 지영이 신랑이 알고 보니깐…, 아니다, 결혼식 앞둔 너에게 할 말은 아닌 거 같네. 자세한 얘기는 너 신혼여행 다녀오면 얘기해줄게, 하여간 지영이 딱하게 됐어.
소영이가 신부대기실에서 떠나자 오만가지 추측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사기결혼이라니, 지영이가 너무 걱정된다. 며칠 전 전화통화 할 때 힘없어 보이더니, 그때 눈치를 채야 했었다. 내 행복에 겨워 지영이를 돌보지 못했다. 천장에서 결혼식 시작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울린다. 아버지가 신부 대기실로 들어오신다. 나는 미리 준비한 돈 봉투를 아버지 가슴팍 주머니 속에 넣자 아버지가 빼내려고 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결혼도 하네요.
-사례 안 해도 돼~ 내가 이 돈은 엄마에게 맡겨 두마. 그동안 아버지 원망 많이 했지, 아버지는 말이다. 욕심을 내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 이게 인생이라고 받아들이고 악기점이나 운영하고 살았더라면 너와 엄마에게 아픔을 주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구나. 제발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렴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자, 나는 아버지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아버지, 아버지 기타 치실 때 가장 멋져요. 그러니깐 포기하지 말고 다시 기타 치세요.
나는 아버지의 왼손을 잡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웨딩홀 내부, 웅장하고 화려하다. 준호는 이미 저 앞 단상 위에 서서 대기하고 있다. 가운데 깔린 꽃길 앞으로 나와 아버지가 나란히 선다. 결혼행진곡이 울리고 나는 아버지의 팔짱을 낀 채 한발자국씩 뗀다. 아버지의 팔을 휘감은 채 걷는 이 길, 내가 아버지 손을 잡고 걷던 그때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악기점, 아버지는 출근하실 때마다 나와 손을 잡고 걸으셨다. 학교 앞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던 아버지, 나는 아버지와 걷던 학교 앞 도로가 생각난다.
아버지 손에 있던 내 손이 준호에게 넘겨진다. 아버지께서는 준호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는 어머니의 옆 자리로 돌아가신다. 주례, 혼인서약, 성혼선언문, 반지 교환, 준호가 큰절한 양가 인사까지 긴 시간을 통과하자, 결혼식의 끝에 도달한다. 이제 다시 꽃 길을 되돌아가는 순서만 남은 상태, 사회자가 예정 없는 말을 한다.
-오늘 축가를 요청하신 분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신부 홍연주님의 아버지 홍일수씨!
기타를 든 아버지가 무대 위에 나와서 인사를 한다. 아버지가 의자에 앉은 후, 손을 바꿔서 오른손으로 줄을 잡고 왼손으로 줄을 내리치며 노래를 부른다.
[가뭄으로 말라터진 논바닥 같은 / 가슴이라면 너는 알겠니 / 비바람 몰아치는 텅빈 벌판에 / 홀로선 솔나무 같은 마음이구나. / 그래 그래 그래 너무 예쁘다 / 새하얀 드레스에 내 딸 모습이 /잘 살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 애비소원은 그것뿐이다. / 아장 아장 걸음마가 엊그제 같은데 / 어느새 자라 내 곁을 떠난다니 /강처럼 흘러버린 그 세월들이 / 이 애비 가슴속엔 남아 있구나 / 그래 그래 그래 울지 마라 / 고운드레스 얼룩이 질라 /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 애비 부탁은 그것뿐이다 -최백호 '애비']
노래가 끝나고, 아버지는 일어선 다음 고개를 숙어서 인사를 하자, 관객석 안, 누군가의 부모는 눈시울을 붉히고, 누군가의 자식들은 미안함에 고개를 떨군다. 어머니는 옷고름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준호는 아버님께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며 내 귀에 속삭인다. 사장님도 여사님은 박수를 치신다.
모든 예식이 끝나고, 친구와 회사 동료들, 지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버지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묻는다.
-아버지 어디 가셨어?
-급한 일 있다고 먼저 가셨어.
웨딩카 리무진을 탄다. 리무진 창 밖 너머에 양복을 벗어버린 아버지가 커다란 가방을 멘 채, 기타를 들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의 허름한 모습이 들킬까 걱정되어 서둘러 준호의 시선을 빼앗으면서도 나는 아버지를 계속 바라본다. 리무진 차가 좌회전을 하고 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하염없이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