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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Dec 13. 2023

프랑스 파리 시청에서 혼밥이라니?!

나의 상처를 치료해 준 건 외국이었다. 그래서 나는 외국에서 살고 싶어졌다. 사실은 내 과거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처음부터 다시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른 살에 떠났던 첫 해외 여행지인 프랑스 파리, 혼자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는 것이 부끄러워 5일간 변변한 레스토랑 하나 가지 못했다. 처음 보는 해외 풍경의 황홀경에 빠져도 앞으로 멘 가방을 꾹 움켜쥔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이곳저곳 살펴보는 중이었다. 


어느 날은 너무 배가 고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Quick이라는 프랜차이즈에서 햄버거를 포장해 파리 시청 앞 분수대 구석에서 몸을 숨긴 채 눈치를 보며 먹는데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거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서 혼밥을 했다. “아, 내가 밥을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되는구나!” 

(2014년,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혼밥 문화는 흔치 않았고, 밖에서 늦게까지 있어야 할 때는 난 늘 굶는 쪽을 택했다.) 무언가 모를 해방감을 얻은 거 같았다.          


인생은 나쁜 일로 인해 굴레에 갇혀 괴로워도, 너무 별거 아닌 쉬운 일로 그 족쇄가 풀리기도 한다.

그게 바로 프랑스 파리에서의 첫 혼밥이었다.                                                                                                                                                                                          

                        

8~9년 전인데도 수줍고 지금보다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 건 이때까지만 해도 화장도 거의 안 하고 다녔다.     

그 뒤로는 시간이 될 때마다 해외를 떠돌았다. 하지만 ‘용기’는 며칠의 여행만을 허락할 뿐 다시 한국에 와서 꾸역꾸역 삶을 살아냈다. 그러다 마흔이 오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2021년 11월, 인생 최초로 5개월간 외국살이를 시작했다.           


5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 일정 때문에 프랑스 파리에서 일주일을 체류했다.       

이번이 3번째 방문이었다. 확실히 나는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부끄러워 ‘Bonjour’ 한마디 건네지 못했는데 내가 먼저 당당하게 인사하고 말을 거니 ‘차갑고 시크하게만 느껴졌던 파리 사람’들이 너무 따뜻하고 밝은 사람들인 거다.     


아 문제의 원인은 나였구나. 내가 우울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려 한다. 오랜 시간 나를 옥죄여 왔던 어린 시절의 ‘고통’을 지울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제 그 고통은 마음 한쪽 구석진 방에 넣고 문을 꽉 잠가버릴 거다. 남은 공간에는 ‘할 수 있다’는 ‘나는 해낸다’는 기억들만 저장하고 꽉 채울 거다. 행복의 마음이 미어터져서. 그 방의 

문이 절대 열릴 수 없게     


* 유방암 확진을 받기 전,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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