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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 Mar 13. 2020

수영



수영을 다닌 지 육 개월이 되었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서부터 2학년 때까지 이 년정도 수영을 했다. 별로 즐거운 기억은 아니었다. 수영을 매일 오후 4시에 갔는데, 딱 그 시간에 투니버스에서 카드캡터체리 ost가 흘러나왔다. 만화가 시작하는 건지 끝나는 건지는 기억이 안 난다. (검색해보고 왔는데 카드캡터체리는 오프닝 곡과 엔딩곡이 동일하다고 함) 어쨌든 그 노래는 나한테 수영 시간을 알리는 노래였고,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 우울했다. 성인이 되었지만 그 노래만 들으면 여전히 기분이 다운된다. 수영 실력이 뒤쳐져서는 아니었다. 수영은 보통 잘하는 순서대로 줄을 선다. 그리고 난 늘 두 번째에 섰다. 첫 번째는 4학년 언니였다. 그리고 수영 선생님은 내가 수영하는 걸 구경온 엄마를 따로 불러 수영을 본격적으로 시켜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수영을 그만두는 게 소원이었다. 커다란 수영장이 싫었고 장 내를 크게 울리는 소리가 무서웠다. 수영을 하면서 난 그 나이에 고독이 뭔지를 느꼈다. 혼자인 게 아주 실감이 났다. 자유형으로 25m를 가는 동안은 세상에 나 혼자뿐인 기분이 들었다. 고독함의 하이라이트는 수업이 끝나고 나서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커다란 샤워실에서 씻고 나오면 밖은 어두웠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가던 기억이 난다. 누가 강제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그렇게 괴로워하다 삼 학년 즈음에 수영을 그만둔 것 같다. 나는 너무 기뻤다.





그 후로 십오 년이 넘도록 한 번도 수영장에 간 적이 없었다. 가끔 물이 그리웠지만, 난 한국에서 ‘여학생‘으로 살면서 내 몸을 아주 많이 미워했다. 내 몸은 죄였고, 수영복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걸 입을 바에 죽고 말지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수영을 다시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 막연히 ‘날씬해진 다음’이라는 언제 올 지 모르는 기약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맨몸에 닿는 시원한 물의 감촉을 상상만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5월. 운동을 하나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고, 줌바로 맘을 굳혀갈 때쯤 갑자기 수영이 너무너무 하고 싶어졌다. 인과는 모르겠으나 물에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수영을 참 잘하는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우리 엄마 아빠 빼고는 없었다. 그게 뭔가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인터넷 이곳저곳에다가 수영을 검색했다. ‘수영 배우고 싶은데, 뚱뚱한 사람도 가도 괜찮을까요?‘, ‘수영 다니고 싶은데 수영복을 못 입겠어요.’ 와 같은 부류의 글이 많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글들의 댓글창엔 ‘수영장 가면 아무도 님 신경 안 씀’, ‘나 ㅁㅁkg인데 걍 다녀요.’ 와 같은 댓글들이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낼 수 없었던 용기가 났다. 나는 더 이상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싶어 하던 십 대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수영복을 검색했고, 수영장에 등록을 하고 모든 준비물을 구비하는 데까지 일사천리였다. 그리고 수영장의 주의사항을 꼼꼼히 복기했다. 그렇지만 수영 강습 날짜가 다가올수록 괴로웠다. 다 무르고 싶었다. 입으면 장골까지 드러나는 수영복을 환불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는 그대로였다. 테니스 스커트가 민소매 크롭탑으로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나 몸을 죄처럼 느꼈다.





당일 아침, 나는 어디 못 갈 데 끌려가는 사람처럼 수영장에 갔다. 다리가 무거웠고 배도 조금 아픈 것 같았다. 죽상을 하고 몸을 씻고 수영복을 입었다. 소심하게 준비운동을 했다. 그리고 물에 들어갔다. 머리까지 푹 담갔다. 시원했다. 그리고 앞선 나의 모든 번뇌가 다 씻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렇지. 이거지! 싶었다. 머리는 잊었어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영법을 기억해내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오랜만에 맛보는 성취감이었다. 근래의 나는 내 자신이 잘하는 것 하나 없고 쓸모없다 느끼기가 부지기수였는데 수영 시간은 나의 자아존중감을 직빵으로 충전시켜줬다. 이외에도 아침 수영은 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가능케 했고, 매일 같이 운동을 즐기는 현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50m 레인을 가로지르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나를 뒤덮고 있는 무수한 불안들을 씻어내주기도 했다. 아무튼 여러모로 활력을 줬단 소리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영을 시작하고 내 몸을 몸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다른 장점들은 다른 모든 운동에서도 해당되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다른 운동보다는 수영에서 월등하게 두드러지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수영을 하려면 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수영복을 꼭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이 손바닥만 한 티를 입기 위한 옷걸이가 아니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의 몸에는 튼살이 있고 털이 있고 착색이 있고 흉터도 있다. 그리고 몸은 앞의 것들을 전시하기 위함이 아닌 기능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제 나는 몸을 볼 때 다른 것 말고 그 몸의 기능을 따진다. 팔을 볼 때면 걸을 때 앞뒤로 흔들리는 팔의 움직임을 보지 거기에 있는 털이나 흉터는 보지 않는다. 그건 말 그대로 사람의 몸 위에 있는 털이나 흉터일 뿐이다. 몸을 몸으로 본다는 말이 나한테만 와 닿는 말일 수도 있으나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수영을 시작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것 같다. 사실 이번 주 내내 수영을 가지 못했다. 시험기간이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변명을 해본다. 내일은 꼭 가야지. 플립턴을 반드시 성공시키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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