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티처 잡생각3
낭만(浪漫)의 사전적 정의는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고 낭만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정작 나 스스로는 이성적이고 차갑고 완벽주의적 성향이라 낭만이 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낭만이 이런 거라면 내가 낭만적인 게 맞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올해부터 닉네임을 ‘낭만 티처’로 바꾸기로 했다.
소제목
오늘은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던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극 중 ‘낭만닥터’ 김사부(한석규)가 젊은 의사 도인범(양세종)에게 이런 대사를 던진다.
"난 말이야. 두루뭉술한 돌보다는 모난 돌을 더 선호하는 편이야. 모가 났다는 거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거고 자기만의 생각이 있다는 거니까. 그런 게 세상이랑 부딪히면서 점점 자기 모양새를 찾아가는 걸 좋아하지. 그냥 세상 두루뭉술 재미없게 말고, 에지 있게, 자기의 철학이나 신념이란 걸 담아서 자기의 모양대로!"
20년 넘게 교사로 살아온 지금, 이제 와서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내가 모난 돌로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모난 돌이었기에 세상과 부딪혔고, 그래서 많이 아팠고 힘들었고 외로웠고 고통스러웠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 내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시간으로 인해 나만의 철학, 나만의 신념, 나만의 소신도 생겼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을 깨닫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을 보는 내 눈도 많이 달라졌다. 학교라는 공간과 수업이라는 시간 속에는 교사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행동하고 앉아있는 아이들이 있다. 처음엔 그 녀석들 때문에 수업할 맛이 났다. 하지만 요즘은 나와 자꾸 맞부딪치는 아이들, 학교라는 틀에 맞지 않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간다.
저 녀석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있을까? 왜 저렇게 독기를 품고 있을까? 언제쯤 저 지랄이 끝날까? 지랄 총량을 채우기까지 기다려주면 저 녀석도 ‘엣지 있게’ 성장할 수 있을까?
물론 이건 잠시의 기대일 뿐, 녀석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산전수전 공중전 다 치르며 마음에 온갖 생채기를 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경험상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 순간만큼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내달라는 낭만적인 기도를 해본다.
소명과 책임감
프레드릭 뷰크너는 소명을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늘 ‘교사가 내 소명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고군분투했다.
"글쎄요. 여태까지 고생한 게 아까워서 못 그만둔 것도 있고, 이걸 그만둔다고 딱히 다른 걸 잘할 용기도 없었고."
"그게 단가요? 뭐 의사로서의 신념이나 사명 그런 거요?"
"그런 걸 알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입으로 떠드는 거랑 진짜 아는 거랑은 다른 거니까."
10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20년이 지나도 어려운 것이 교사로서의 소명 찾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명이란 단어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명은 하나의 직업처럼 고정되고, 무엇을 이루기까지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부르심의 자리에서 맡겨진 현실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내는 것이다. 현재 내가 교사로 살고 있다면 나의 소명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마주하며 힘든 갈등 속에서 고민하며 그 자리를 회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맞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이다.
뷰크너가 말한 ‘나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고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날마다의 삶 속에서 나는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되고 그 순간에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그런 소명에 응답하며 살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의 내 모습으로 현재의 소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이 경험들이 모여 미래에 새로운 소명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의사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야. 환자를 통해서. 오로지 그거 하나뿐이다. 살고 죽는 거까지 네가 책임지려고 하지 말아. 넌 그냥, 네가 배운 대로 최선을 다하면 돼. 거기에만 집중해”
“그래 봤자 의사지만. 그래도 의사라고. 잊지 말고 살라고.”
교사로서의 삶이 갈수록 힘이 든다. 사회가 그렇게 변하고 있으니 교사로 살아가는, 아니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교사만의 어려움이 있다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미래를 책임지려는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건 양심일 수도 있고 욕심일 수도 있다. 지금 논하고 싶은 것은 양심인가 욕심인가가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과도한 책임감이다. 그래 봤자 교사인데 그래도 교사라고 한 아이의 인생을 생각하며 울고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게 교사로 살아가는 나의 발목을 붙잡고 늘 나를 힘들게 했다.
양심이든 욕심이든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으려 한다. 그냥 나는 올해 만난 아이의 인생 가운데 한 해를 함께하는 동반자일 뿐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를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 나는 인간이고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자. 내가 못하는 부분은 옆 반 선생님에게 넘기고 옆 반 선생님이 힘들어하는 것 중에 내가 잘하는 부분을 내가 감당해보자.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려 하지 말고 각자가 잘하는 부분을 나누어서 짐을 조금 가볍게 해 보자.
이를 위해 내가 업무에서는 무엇을 잘하고 힘들어하는지, 수업에서는 어떤 점을 잘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아이들과 관계 맺는 것에서는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알아차려 보는 게 필요하다.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엣지 있고 즐겁게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그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고 나의 부족한 부분은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아보자.
어른이 된다는 것과 낭만
“이유나 좀 알자. 대체 왜 이러고 사는 거야. 너 같은 실력으로 이런 변방에서 심지어 돈도 안 되는 외상센터라니.”
(중략)
“그것을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고 그러지. 아, 조금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고 그러고.”
“낭만? 허허허 낭만... 과연 그 개소리에 동조하는 의사가 몇 명이나 될까? 당장 몸만 고되고 돈도 안 되는 이런 병원에 남아있는 의사가 몇 명이나 되겠냐고?”
“난 그렇게 믿고 있어. 아직은 의사 사장님이 되고 싶은 애들보다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은 애들이 훨씬 더 많다고 말이야.”
내 꿈은 착한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으면 언젠가 사회는 좋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을 보면 수시로 절망이 찾아오고 과도한 책임감으로 숨이 막혀온다. 도대체 나는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자기가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과 가치를 올바르다 믿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교육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나 또한 그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어떤 현실 속에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한 듯하다. 그들이 낭만과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고 일한 대가로 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회구조가 되지 못한 현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아직 다듬어지지 않고 모나서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원석인지 모르는 아이들이 단순한 소모품으로 취급되지 않고, 다듬어지고 제대로 깎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어른, 그리고 실패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기를 기다려주는 어른, 낭만 닥터 김사부 같이 삶으로 보여주는 어른이 필요하지 않을까?
“살아간다는 건, 매일매일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것.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 매 순간 정답을 찾을 순 없지만 그래도 김사부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나는 거다. 알았니?’라고 말이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