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업무와 개인 프로젝트를 병행한 지 햇수로 4년째, 한 가지 확고한 원칙이 생겼다. 회사 일이건 개인 프로젝트건 자부심으로 일하면, 결과도 좋고 과정도 즐겁다는 걸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회사를 위해서도 아니오, 개인을 위해서도 아니오, 오로지 자부심으로 일하는 태도만이 나와 상대방을 원하는 결과로 이끌어준다고 믿는다.
15년간 한 회사를 다니는 동안 일에 관한 태도가 여러 번 바뀌었다. 오로지 회사만을 위해 기능적으로 일하다가 어떤 특이점을 겪으면서 '회사 거 말고 내 것'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안착했다. 그 무렵 배틀그라운드 신화를 다룬 책 <크래프톤 웨이>에서 "회사만 성장하면 안 되고 회사와 개인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구절을 발견하고는 공동 성장이라는 명제에 천착했던 것 같다.
지금은 둘 다 아니다. 회사 것이니 개인 것이니 가름하기보다는, 회사와 개인이 균일한 밀도로 성장하고 있는지 수시로 눈금을 체크하는 식으로 밀당하기보다는, 일의 본질을 향해서 앞으로 묵직하게 달려나가되 자부심으로 일하고 싶다. 그 자부심이란 대충 후딱 처리해버리고 마는 마음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나의 일이 그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고 영구히 각인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마음일 것이다.
내가 자부심으로 일하려면 나와 일하는 상대방도 본인만의 자부심으로 일해주어야 좋다. 그래서 수시로 고민을 하게 된다. 예컨대 이런 질문들: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상대방도 이 일에 몰두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상대방도 즐겁게 일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프로젝트가 그 사람에게도 성장 포트폴리오로 남을 수 있을까.
경험칙상 자부심을 끌어내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사람이 아주 조금이라도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약간의 넛지를 가하는 것이다. 업무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에게 내가 직접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를 건넨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넛지를 가하면 상대방은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또 다른 방법은 명확하고 투명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결코 뭉개고 있지 않는다. 결코 누군가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방향으로 눈속임을 하지 않는다. 정밀타격하듯 정확하게 피드백을 전달한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건 태도일 것이다. 상대방이 타인(나)에게 존중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감각할 수 있도록 예의를 갖추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대하기, 언어적 메시지만으로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때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활용하여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최근 생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리고 오래 봐서 익숙하지만 나의 생각을 전하지는 않았던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나의 관점과 생각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반짝반짝해졌던 날이 있었다. 그날을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덧, 자부심으로 사람을 이끄는 방식은 내가 원조가 아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역대 세 번째 CEO 사티아 나델라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