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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히 Sep 24. 2023

2. 진짜 짱 아픈 손가락 ‘선베드서비스’

내가 진짜 아끼는 거 알지?



정전을 만들고 나서 솔직히 좀 오만해졌다. 항상 내가 음악을 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던 엄마가 신나서 주변의 모든 지인들에게 내 노래를 다 뿌렸기 때문에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전해 들었다. 엄마의 눈치를 본 건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지인분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게도 음악이 참 좋다고 말해주셨다. 솔직히 내 또래 세대에게 받는 칭찬보다 음악에 별로 관심 없고 나와 세대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들이 내 음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게 엄청난 자극이 됐다.


대중성이 뭔가. 20대 애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이 대중성인가. 아니 그건 가짜 대중성이다. 진짜 대중성은 음악과 거의 담쌓다시피 살아온 어른들의 귀가 바로 진짜 대중성 바로미터다. 그들의 귀를 감화시킨다면 세상에 웬만한 귀는 다 저격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운빨 노가다빨로 어찌저찌 만든 내 첫 번째 노래가 그 대중성을 정확하게 찔렀다는 얘기다. 어떻게 오만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사람들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어깨 뽕이 세차게 올라갔었다. (사실 인간관계 박살 나서 티 낼 사람도 없었다.)


난 바로 다음 곡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때 바로 내 첫 곡이 초심자의 행운이 몰빵된 거였다는 걸 알게 됐다. 노래 만드는 게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맘에 드는 코드는 나오지 않았고, 진행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어찌저찌 코드를 뽑긴 했는데 뭔가 노래가 진전이 없고 부실하고 툭 건들면 쓰러질 것 같았다. 내 노래실력도 어쩌면 그렇게 처참한지 성량이 부족해서 소리 자체가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곡을 만들었는데, 만들자마자 알았다. 이건 분해각이다. 며칠 동안 골머리를 앓아가며 만들었던 노래를 눈물을 머금고 창고 폴더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폴더의 이름을 분해 예정이라고 고쳤다. 그때 조금 우울해졌다. 뭐 음악작업이 잘 안 될 수도 있지 뭘 그런 거 가지고 우울해지냐 하겠지만, 올라갔던 오만함의 뽕이 빠져나가면서 낙차가 큰 만큼 타격이 컸다. 하지만 난 당연히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 예상했다. 기대와 예상이 다른 게 언제 하루 이틀인가? 노래 만드는 게 그렇게 쉬우면 개나 소나 다 하겠지.


일단 기타 연습을 하면서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8월의 어느 주말이었을 것이다. 그때 한창 야마시타 타츠로의 음악을 듣고 있었던 때다. 무더운 여름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의 노래들은 듣기만 해도 푸르른 바다의 청량함이 떠오른다. 나도 이렇게 청량하고 즐거운 노래가 만들고 싶었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바닷소리 같은 그런 노래.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스트로크나 진행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차였다.


그의 노래에서 유난히 내 귀에 꽂히는 코드가 있었다. 그 코드가 어디쯤에서 어떤 소리로 나는지 생각하며 계속 기타 지판을 짚어봤다. 그러다 그 소리를 딱 찾아냈다. 그리고 그 느낌 그대로 스트로크를 하며 대충 보이는 음계들을 마구잡이로 짚어봤다. 더 맑고 더 신나는 리듬을 생각하며 기타를 마구 치다가 어느새 가슴이 꽝꽝거리는 리프를 발견했다. 와우! 타츠로 선생님에 비하면 그렇게 신나진 않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리프였다. 그 리프를 기준 삼아서 살을 붙여보았다. 그리고 이 코드에 붙을 가사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딱 좋은 가사가 있었다.


내가 미리 써둔 가사들 중에서 가장 신나고 밝은 톤을 지닌 가사가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선베드서비스였다. 이 가사처럼 밝고 명랑한 밴드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가사를 써 내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의 내뇌망상 밴드의 이름을 선베드서비스라고 지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가사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의 모든 정체성과 방향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작업의 물꼬를 튼 노래가 바로 내 음악의 정체성, 밴드의 이름이자 얼굴이 될 노래인 것이다. 엄청 중요하고 의미가 깊은 작업이 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꼭 잘 만들고 싶었다. 사실 안 그런 노래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때는 이 노래가 정말 잘 뽑히길 바랐다. 밴드의 이름을 건 노래이기도 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사이기도 했다. 내가 쓰고 내가 가끔 위로를 받는다. 좀 부끄럽고 웃긴 일이지만 그렇다. 그 가사처럼 내 삶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멀리 보이는 이 모든 아름다움을 눈에 담으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 말이 내게 큰 위로인 동시에 다짐이어서 다른 것보다 더 애착이 컸다.


작업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찌저찌 만지다 보니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 아리나 후반부를 먼저 만들게 됐다. 후반부는 내 나름의 비장 무기? 필살기 같은 거였는데 갑자기 분위기를 쫀득하게 바꿔서 리듬을 조지는 것이었다. 내 나름의 분위기 반전인 데다가 언젠가 이렇게 같은 말을 무한반복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서니데이서비스의 크리스마스처럼 크리스마스만 주구장창 반복하는 그런 음악 말이다! (내 밴드 이름도 일본 락밴드 서니데이 서비스에서 이름을 참고한 것이기도 하다.ㅎㅎ)


솔직히 후반부 작업이 끝나고 개좋아서 미쳐버렸다. 주구장창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점점 빌드업이 되면서 그 끝에 싸악 하면서 다시 원래의 코드로 돌아오는 그 느낌은 정말 내가 만들었지만 계속 웃음이 나는 그런 진행이었다. 진짜 생각해 보면 이 노래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던 게 맞는 것 같다. 무슨 후반부를 곡 하나 작업하듯이 집중하면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나중에 큰 실수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지.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같은 작업이 일주일이 넘어가고 밤새는 날도 많아졌다. 그래도 내 이름이 될 노래가 완성되어 가는 것이 너무 좋았다. 전반부도 순조롭게 차근차근 만들어나갔다. 마치 동남아 해변이 연상되는 간드러지는 기타 솔로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이때 트랙 개수가 엄청 많아져서 프로그램이 계속 버벅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런데 문제는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 데에 있었다. 사실상 같은 곡에 있었지 다른 노래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결을 시키긴 했는데, 후반부만 들었을 때의 전율이 전반부를 붙이니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엥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지. 분명 엄청 좋았는데, 앞에 뭘 놓느냐에 따라서 그 감흥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지금은 그런 경우를 몇 번 경험해 봐서 이해가 가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멘땅에 헤딩하면서 만들던 그때엔 너무 당황스러웠다.


제일 곤혹스러웠던 것은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그렇게 엄청나게 공을 들였고 엄청나게 애착이 생긴 후반부에 대수술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후반부를 전부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할 수도 있었다. 난 이 소리가 너무 좋고 이 느낌 이 리듬이 너무  좋은데 이걸 살릴 방법이 없었다. 그걸 살리려면 전반부를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다시 만든다고 이게 또 연결이 될까 싶었다.


그때 엄청 풀이 죽었다. 정말 잘 만들고 싶어서 엄청 공 들였는데, 완성을 코앞에 두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그래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자. 살을 파내는 심정으로 후반부를 절반 가까이 도려내고 전반부에 맞게 구성을 바꾸었다. 처음에 느꼈던 전율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연결이 매끄럽게 된 것 같아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속 다듬으면서 마지막 완성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때 살을 내주고 뼈를 내주는 전략이 매우 성숙한 뮤지션의 모습 같아서 어깨가 으쓱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대망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근데 사람들이래 봤자 엄마랑 친구 한 두 명이 전부다… 내가 이렇게 산다. 난 내 밴드의 이름을 건 최후의 역작, 어쩌면 앨범의 타이틀이 될 수도 있는 이 녀석을 엄마와 친구에게 보냈다. 엄청난 기대와 자신감을 가지고 속으로 우쭐해 가면서 말이다. 그때 딱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하핫! 올 것이 왔구만! 빨리 칭찬을 쏟아내라고~ 크흣.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엄마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귀가 아프고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난 믹싱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어물쩡거렸다. 그러더니 엄마가 네가 노래도 너무 못하고 음도 하나도 안 올라가고 음악이 그냥 그렇다고 했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좀… 풀이 파악 죽어버렸다. 그냥 모든 게 다 짜증 났다. 모든 일이 내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에게 그런 평을 듣고 나니 난 사실 아무것도 몰랐던 게 탄로났다. 난 모든 일이 기대대로 될 줄 알았던 거다. 내가 뭔가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고, 언젠가 내가 엄청난 밴드맨이 될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정말 실현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게 다가오는 현실은 내 기대와는 정반대일 때도 있다. 그렇다면 노래를 좀 더 좋게 고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솔직히 여기서 어떻게 고쳐야 더 좋은 음악이 되는지 난 더는 잘 모르겠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뭘 해야 좋게 들릴지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가늠도 못하겠다. 무엇보다 선베드서비스 너한테 실망했어. 그 근처에는 다신 가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고 짜증이 났다. 잔뜩 어깨가 올라가서 이 노래가 사람들을 다 뒤집어 놓겠지 하며 키득거렸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 노래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고치지 못했다. 방법을 모르는데 어떡하냐!


그리고 그 이후에 몇 곡을 더 만들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선베드서비스만 내놓은 자식처럼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다른 노래는 다 좋아요 눌러주고 노래 좋다고 말해주는데, 오직 선베드서비스 이 녀석만 사람들에게서 외면받고 소외받는다. 정말 속상해서 죽겠다. 내가 가장 아끼는 너인데. 내 이름이 될 노래인데. 진짜 제일 많이 공들이고 제일 많이 좋아하는데. 왜 아무도 널 좋아하지 않는 걸까.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만든 곡이 5곡이고 스케치가 끝난 게 2개 정도 더 있는데, 어떤 노래도 선베드서비스의 톤이랑 어울리지 않는다. 하아… 그래서 강제로 이 노래는 아웃트로로 가장 끝에 배치될 예정이다. 미안해. 내가 능력이 딸려서 그랬어.


그래도 걱정마… 나중에 정말 나아아아중에 나보다 더 훌륭한 제작자나 프로듀서를 만나면 너부터 제일 먼저 수술시켜 줄게… 꼭 멋진 노래가 되게 해 줄게. 지금의 치욕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야.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노래는 내 이름이 될 거고. 사람들이 이 노래를 좋아하진 않더라도 꼭 한 번은 듣게 만들 거니까. 다 괜찮아! 나의 제일 제일 제일 아픈 손가락. 언젠가 다시 수술대에서 보자고. 멋드러지게 만들어줄게.



https://on.soundcloud.com/T4vnqc36DbmmEzbK9 ​

사클에서 이 아픈 손가락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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