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을 채우는 두 가지 방법
"진도를 나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상담에 대한 피드백 받기 위해 교수님을 찾았다. (경험이 많은 선배 상담사에게 검토 받는 과정을 수퍼비전이라고 한다.) 교수님께서 나의 상담 축어록을 찬찬히 살펴보시더니, 이 날 들었던 상담사의 마음이 궁금하다고 여쭤보셨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이라 순간 멈춰 깊은 고민을 했다.
그러게. 나는 그 순간 내담자에게 왜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까.
잠깐의 침묵 끝에 떠오른 대답은 진도를 나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상담을 들어갈 때마다 지난 상담 내용을 검토하며 '이번 상담에서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와야지' 라는 결심을 하고 갔다. 그러다가도 내담자 분이 나눠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곤 했었는데, 그 날은 그 흐름이 답답했던 것 같다. 뭐라도 얻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힘을 주게 됐다.
교수님은 나의 대답을 들으시더니 "상담에 진도가 있나요?"라고 되물으셨다. 조심스럽게 얹어주신 물음인데 그 속에 나를 말리고 싶으신 마음이 느껴졌다. "진도가 없나요?" 라고 되려 놀라 되묻는 나에게 교수님께서 Being 과 Doing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상담자에게도 내담자에게도 '머무르기'가 필요해보인다는 말씀과 함께.
Doing은 뭔가 해내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하고 달성하는 것이다. 반면 Being은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 감정, 감각 등을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받아들인다. 이 두 가지 개념을 구분하고 내 삶을 들여다보니 또렷한 한 가지가 보였다.
나는 Being의 순간이 부재하고, Doing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었다.
상담에 들어가기 전 오늘은 무엇을 해결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던 것도 마찬가지다. 나른한 주말 아침에도 게으름을 허용하기가 어려웠다. 혹시 조금이라도 뇌가 멈추는 것 같으면 수도쿠를 찾았다. 심지어 상담이 왜 좋냐는 질문에는 수도쿠를 푸는 것 같은 희열이 있다는 대답도 서슴치 않았는데.. 나의 그런 마음이 흘러넘쳐 내담자를 끌고가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Being 모드는 아무 생각 없이 커피 향을 느끼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음 할 말을 걱정하지 않는 편안한 시간들이 포함된다. 말 그대로 현재를 감각하고 누리는 것이다. 아무리 소파에 누워있더라도 미래에 대한 계획과 걱정으로 가득하면 Doing 모드를 가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반면, 무언가를 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이루어지고 있다면 Being 모드로 살고 있는 것이다.
삶을 살면서 오는 공허함을 나는 Doing을 채워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바쁜 현대 사회에선 나처럼 생산성의 부담을 어깨에 잔뜩 진 사람들이 상담에 온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건 무언가를 더 하는 게 아니다. '머무르기'다. 해결에 신경을 끄고 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에 귀 기울여주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창문을 열어두고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쉬었다. 잠깐이었지만 새로운 공기가 내 안에 들어와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지금 그대로 나는 충분하다고 나에게 이야기해줬다. 생각도, 걱정도, 할 일 리스트도 방해할 수 없는 Being의 시간. 현재에 머무르며 숨을 쉬는 시간. 바쁨에 속아 또 달리게 되더라도 종종 멈춰 마음을 살펴봐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