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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달 Oct 30. 2022

태양이 너무 밝아서

D+151, 터키 아나톨리아

    카뮈와 카잔차키스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다, 지중해. 터키의 휴양지에서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했다. 고대 사람들도 그 아름다움을 알았는지, 이곳에서 그리스·로마의 신들이 휴양을 즐긴다고 믿었다고 한다. 해상무역의 이점까지 더해져 이 인근에서 고대도시들이 융성했다. 그만큼 유적들도 많았다.


    아나톨리아 지방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대도시들을 차로 여행했다. 시데(Side), 아스펜도스(Aspendos), 페르게(Perge), 파셀리스(Phaselis). 누군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을 보고 싶다면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아니라 터키로 가라 그랬는데, 참말이다. 버려지고 잊힌 도시들의 모습은 원형은 원형대로, 세월의 풍파를 맞아 스러진 모습은 그것대로 울림을 품고 있었다.


페르게의 고대도시에서 만난 고양이.

    그중에서도 압권은 시데였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아폴로 신전과 고대도시, 그 안에서 2천 년 전과 같이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밤늦게 도착해 숙소를 찾느라 길을 헤매는 와중에도 마음만은 계속 두근거렸다. 내일 아침 해가 비추는 이 도시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면서.


    졸린 눈을 비비며 만난 시데의 아침은 찬란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나'는 한 남자에게 총을 쏜다. '나'는 그 이유를 '태양이 눈이 부셔서'라고 말한다. 어두컴컴한 군대 독서실에서 책을 읽던 나는 그 대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태양을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시데의 태양을 보며 나는 그때야 그 문장을 이해했다.


    한낮의 태양은 시야를 압도한다. 태양 쪽에 있는 다른 것들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나'는 그 남자가 총을 꺼내는지 아닌지 알 수 없어 두려웠을 테다. 그래서 먼저 쐈던 게 아니었을까. 운전을 하다가도 태양이 있는 동쪽이나 남쪽으로 향하는 날이면 가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아찔할 때가 있었다. 너무 빛나는 무언가는 빛나서 두려울 수도 있다는 것. 이런 거였구나. 책 속의 문장을 직접 만나 온전히 이해하는 일. 여행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를 획득한다.



    저녁엔 해변의 돌무더기 위에 앉아서 신전 뒤편의 바다로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운이 좋게도 하늘이 새파래서, 저녁놀은 따뜻하게 붉었다. 가끔 이런 날은 그냥 행복하단 말이지. 저녁상에 오를 물고기를 노리는 낚시꾼과 옆에서 얼쩡대는 갈매기들,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 장사를 마치고 가족들에게 돌아갈 채비를 하는 상인들. 아무런 수식어 없이도 행복한 날들이었다.


시데의 저녁 노을




본 여행기는 지난 2019년 6월 30일부터, 2020년 1월 22일까지 떠났던 여행의 기록입니다.

동해항에서 배에 차를 싣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그곳에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를 횡단했고, 북유럽과 동유럽, 중부 유럽과 발칸 반도를 거쳐 남유럽까지 여행했습니다.

그러곤 터키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서유럽의 해안도로를 따라 포르투갈 호카곶에서 여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이스라엘과 이집트, 터키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총 여행일수: 207일

총 주행거리: 34,888km

여행 국가: 러시아 등 22개국

여행 루트: 러시아 → 핀란드 → 노르웨이 → 스웨덴 → 덴마크 → 독일 → 폴란드 → 리투아니아 → 헝가리 → 크로아티아 → 몬테네그로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세르비아 → 불가리아 → 그리스 → 터키 → 이탈리아 → 프랑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이스라엘 → 이집트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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