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1, 터키 아나톨리아
카뮈와 카잔차키스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다, 지중해. 터키의 휴양지에서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했다. 고대 사람들도 그 아름다움을 알았는지, 이곳에서 그리스·로마의 신들이 휴양을 즐긴다고 믿었다고 한다. 해상무역의 이점까지 더해져 이 인근에서 고대도시들이 융성했다. 그만큼 유적들도 많았다.
아나톨리아 지방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대도시들을 차로 여행했다. 시데(Side), 아스펜도스(Aspendos), 페르게(Perge), 파셀리스(Phaselis). 누군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을 보고 싶다면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아니라 터키로 가라 그랬는데, 참말이다. 버려지고 잊힌 도시들의 모습은 원형은 원형대로, 세월의 풍파를 맞아 스러진 모습은 그것대로 울림을 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시데였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아폴로 신전과 고대도시, 그 안에서 2천 년 전과 같이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밤늦게 도착해 숙소를 찾느라 길을 헤매는 와중에도 마음만은 계속 두근거렸다. 내일 아침 해가 비추는 이 도시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면서.
졸린 눈을 비비며 만난 시데의 아침은 찬란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나'는 한 남자에게 총을 쏜다. '나'는 그 이유를 '태양이 눈이 부셔서'라고 말한다. 어두컴컴한 군대 독서실에서 책을 읽던 나는 그 대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태양을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시데의 태양을 보며 나는 그때야 그 문장을 이해했다.
한낮의 태양은 시야를 압도한다. 태양 쪽에 있는 다른 것들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나'는 그 남자가 총을 꺼내는지 아닌지 알 수 없어 두려웠을 테다. 그래서 먼저 쐈던 게 아니었을까. 운전을 하다가도 태양이 있는 동쪽이나 남쪽으로 향하는 날이면 가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아찔할 때가 있었다. 너무 빛나는 무언가는 빛나서 두려울 수도 있다는 것. 이런 거였구나. 책 속의 문장을 직접 만나 온전히 이해하는 일. 여행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를 획득한다.
저녁엔 해변의 돌무더기 위에 앉아서 신전 뒤편의 바다로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운이 좋게도 하늘이 새파래서, 저녁놀은 따뜻하게 붉었다. 가끔 이런 날은 그냥 행복하단 말이지. 저녁상에 오를 물고기를 노리는 낚시꾼과 옆에서 얼쩡대는 갈매기들,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 장사를 마치고 가족들에게 돌아갈 채비를 하는 상인들. 아무런 수식어 없이도 행복한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