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70, 이탈리아 피렌체
단테, 미켈란젤로, 다빈치, 보티첼리, 라파엘로, 갈릴레이,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르네상스 천재들의 이름이자 동시에 피렌체의 위인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들이 동시대에 한 공간에서 우르르 튀어나왔다. 공간이 인간에게 깊이 영향 끼친다는 전제를 인정한다면, 거장들의 물질적 흔적을 좇는 일은 어떤 공간이 그들을 거장으로 빚어냈는지 탐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궁금했다. 작품보다는 그것을 만든 인간과 사회, 그 토대가.
폼페이에서 아시시를 지나 피렌체로 올라갔다. 이탈리아가 통일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라, 르네상스 시절만 해도 도시 하나하나가 모두 국가였다고 한다. 피렌체 또한 이탈리아 북부의 강한 도시국가였다. 주변엔 차로 얼마 안 걸리는 시에나, 피사, 베니스 같은 당대의 쟁쟁한 국가들이 지금도 도시로 남아 있다. 특히 시에나와 피렌체는 라이벌 국가라 전쟁도 많이 했지만, 동시에 서로 더 위대한 건축물과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했다고 한다. 가까운 도시를 유랑하는 상단원이 자신이 만난 천재의 작품들을 자랑하며 떠들 때, 옆에서 뾰로통한 표정으로 우리에겐 도나텔로가 있다고 큰소리쳤을 피렌체 시민들을 생각했다.
피렌체 구시가지는 도보로 모두 다닐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차는 숙소에 주차해두고 열심히 걸었다.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다리와 궁전, 산타크로체 성당, 두오모 등. 문득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같은 술집에 앉아 대둔근의 근섬유 모양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다른 도시와의 거리도, 도시 내부에서의 간격도 그리 멀지 않은 이곳에서 교류와 경쟁이 끊임없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틀 동안 곳곳을 다니며 한 가문의 문양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황금 방패에 박혀 있는 6개의 구. 메디치 가의 문장이다. 그들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약 300년 간 피렌체를 친족 지배하며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특히 그 자금으로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덕분에 피렌체의 예술가들은 밥 굶을 걱정 없이 여유롭게 창작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의 궁전이나 박물관엔 이름이 덜 알려진 예술가들의 작품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불안 없는 경쟁. 서로 간의 비교와 우열 다툼이 개인들을 생존의 늪으로 몰아넣지는 않는, 탁월한 천재든 그저 그런 범재든 각자 살아갈 자리는 있는 사회. 그런 곳에서 거장이 탄생하고 문화가 꽃피워 지금까지 남아있는 거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오늘의 우리에게 경쟁은 곧 불안과 같은 말이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었던 피렌체의 한 시절을 생각했다.
거장들이 걸었음직한 피렌체의 골목길을 천천히 산책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거리는 분홍빛으로 아름다웠다. 사람들의 표정엔 설렘과 편안함이 가득했다. 걸작을 완성하기 위한 천재의 영웅적 투쟁도 좋지만, 이날만은 왠지 숱한 실패에도 불안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을 그들의 편안한 미소를 그려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