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9반 박예지에게

by 꿀벌 김화숙

사랑하는 박예지에게.

행복한 사람,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게 바로 우리 예지란다!

궂은일 도맡아 하면서 예쁘게 웃던 보배 예지야~

중학생이 되어서도 이렇게 예쁜 모습은 변치 말기!

-초등학교 졸업할 때 예지가 쓴 글 '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예지야!


초등학교 졸업할 때 네가 쓴 글로 네 이름을 부른다. 너를 기억할 때마다 떠오르는 한 문장이,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박예지’였어! 벌써 5년 전 일이구나. 내가 너의 약전을 처음 읽은 그날, 내 가슴에 네가 훅 들어온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그날 이후 내 가슴에 지지않는 별이 되어 빛나고 있단다.


누가 청소년을 어리다고 했다니 예지야.


중년이 돼서야 나는 '자기 사랑'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어. 십 대에, 아니 십대가 되기 이전부터 네가 이미 알고 있던 중요한 진리를 말이야. 네 글이 나를 세게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어. 젊은 날 나는 자기 사랑을 모르고 살았거든. 놀라기 없기다 예지야? 어떻게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고? 넌 믿기 힘들지도 몰라. 난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 위해 살아야 한다고 배우고, 그런 삶을 추구했단다. 뒤늦게 삶에 눈을 다시 뜬 거야. 내가 가장 알고자 하고 사랑할 대상은 나 자신이더구나. 가장 중요한 관계도, 결국 나 자신과의 관계더구나.


"행복한 사람.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너무 멋지다 예지야! 네 글에, 그리고 너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온 마음으로 너를 안아주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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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울 예睿, 지혜로울 지智, 예지.


네 이름의 뜻 참 아름답지? 사람이 어떻게 항상 슬기롭고 지혜로울 수 있겠냐며, 너는 비틀어 생각할 줄 알더구나. 더구나 슬기와 지혜란 말이 주는 묘한 부담을 너는 간파했던 것 같지? 사려 깊고 지혜로우라니, 남들의 눈에 좋은 삶을 살란 뜻이 되기도 쉽잖아. 과연 예지는 예지였어. 세상에,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것보다 더한 슬기와 지혜가 또 있겠어? 넌 '무지막지 밝은 성격대로',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지. 가족생활도, 친구들과 노는 것도, 넌 자신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즐거움으로 채우더구나!


살다 보면 삶이 꽃길 만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지. 불안하지 않은 청춘이 있으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니. 오늘 하루 즐겁게 살지 못할 이유는 늘 생기기 마련이지. 더구나 자기 사랑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만심, 허영심, 나르시시즘처럼 부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또 좀 많아야 말이지. 그래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예지가 생각할수록 멋지구나. 싸부님으로 부르고 싶을 정도야.


예지야! 자기 사랑의 의미를 책으로 좀 더 확인해 봤어.

<나는 나부터 사랑하기로 했다>(크리스틴 얼라이로, 미호, 2016)는 이렇게 정의하는구나.


"자기 사랑은 나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존중이다. 이는 아주 깊고 단단해서 어떤 상황이나 인간관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ㅡ<나는 나부터 사랑하기로 했다> 54-55쪽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니. 남을 사랑하려고 애쓰기 전에 우린 우선 나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거였어. 어떤 상황이나 인간관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해야 하는 게 자기 사랑이니까.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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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예지야!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거였어. 너는 중학교 입학 후 혼자 있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친구하더구나. 그렇게 만든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지, 넌 가상의 대가족을 만들어 가족놀이를 하며 놀았어. 날마다 시트콤처럼 재미난 이야기였어. 식구가 얼마나 많은지, 넌 막냇사위로 현주랑 부부가 됐지. 너희들은 현실에서 본 대로 흉내냈겠지. 막냇사위는 너무나 가부장적인 남편이라는 게 얼마나 웃기던지!


어디 가상의 가족 이야기만이겠니. 넌 현실의 가족생활도 정말 재미나게 하더구나. 아무리 싸워도 엄마랑은 10분을 못 넘기고 친구 사이로 돌아갔어. 캬! 스물한 살 젊은 엄마가 너를 낳고, 뭘 몰라서 널 험하게 키웠다는 우스개가 난 재미있더라. 농담 속에 뼈 때리는 진리가 있었어. 영화 <에놀라> 속 엄마와 딸이 난 떠올랐지. 딸을 두고 엄마가 집을 나가는 험한 상황에서 오히려 딸도 엄마도 시대를 앞서가는 걸출한 인생을 살게 되거든.


예지야! 너는 삶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노래를 무지 좋아하고 노래를 참 잘하더구나.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랬지? 학원 가는 길에 노래방 들러서 노래 좀 하고 갈 정도로 넌 노래를 좋아했어. 우와~~ 오죽하면 친구들이 오디션 한 번 받아보라 했겠니. 네가 참 좋아하는 투애니원의 박봄 노래를 듣는데 예지야, <You and I>를 부르는 네 모습이 겹쳐 보이는구나. 정말 예지랑 박봄 너무너무 닮은 거 아냐?


You 내가 쓰러질 때 절대 흔들림 없이

강한 눈빛으로 몇 번이고 날 일으켜 줘.

And You 나 힘에 겨울 때

슬픔을 벼랑 끝까지 또 어김없이 찾아와

두 손 잡은 그대에게

난 해준 게 없는데 초라한 나지만

오늘 그대 위해 이 노래 불러요

ㅡ박봄의 노래, <You and I>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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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야!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너는 멋진 어른이 됐을 게 틀림없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거든. 넌 가까운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주변을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았을 거야. 그뿐이겠니. 넌 네가 속한 이 사회도 사랑하는 시민으로 살았을 거야.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시민 말이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속에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예지 이야기가 있다는 걸 넌 알까? 자, 무슨 말인지 한번 들어 볼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불의에 분노할 줄 알고 저항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탐구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도를 찾고

뜻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합니다.

사람을 모으고 설득하고 조직하고 권력과 싸우고 권력을 잡고

그리고 정책을 실행하고 그렇게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ㅡ노무현 대통령 강연, 2007년 6월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21세기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 중


어떠니 예지야?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예지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정리를 난 찾을 수 없었어. 자신을 사랑하는 예지는, 세상을 사랑하는 시민으로 살아갈 거야.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을 알고자 했을 테고, 무엇을 바꾸면 더 좋은 세상이 될지 고민하는 어른이 됐을 거야. 불의에는 분노하고, 적절히 행동하고, 저항하고, 사람들과 손잡고 함께 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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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예지야!


네가 2014년 1월에 쓴 글을 옮겨 적으며 이 편지를 마무리할게. 고등학생이 되면서 너는 좋아하는 노래는 취미로 남기기로 하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더구나. 2학년 앞두고, 꿈을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하며 구체적인 학교와 학과도 정했지. 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 꿈을 소중히 키우며 이뤄갔을 거야. 예지야, 그 절실한 네 꿈을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너를 꼬옥 안아주고 싶구나.


열심히 공부해서 한양대 ERICA 캠퍼스 컴퓨터학과

들어가서 꼭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완전 절실하다!

꼭 열심히 해서 성적 올릴 것이다.

ㅡ2014년 1월 예지가 쓴 글


너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냈을 게 틀림없어. 네가 꿈꾸는 삶을 위해 얼마나 열정적으로 공부했을지, 얼마나 자기 관리를 했을지 그려지는구나. 예지야! 너를 그리는 엄마 마음을 담은 편지 알지? 네가 하늘나라로 유학 떠난 것이라 생각하신다는 대목에서 내 가슴이 저리구나. 엄만 너를 험하게 키우신 분이니까, 이 험한 시간도 엄마답게 견뎌내실 거야. 다시 만날 그날까지, 예지 몫까지 더 열심히 사시도록 나도 간절히 응원할게. 예지야! 보고 싶구나! 너를 잊지 않을게.


하늘나라로 유학 떠난 예지에게


예지야, 그곳에서 너의 꿈을 이루고 있지?

힘들고 힘든 이 세상에 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우리 예지니까.

엄마, 아빠, 그리고 네 동생도 너를 그리워하며

매일 보고 싶어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단다.

.....

다시 만날 그날이 올 때까지

네가 없는 이 세상, 네 몫까지 열심히 살다 갈게.

너에게 많은 얘기를 해줄 수 있게

그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줄래?

ㅡ<그리운 너에게> 128-129쪽. 예지 엄마의 편지 중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9반 박예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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