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로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1반 김민지에게
민지야, 아빠 마음 알지? 엊저녁에도 안산에서 나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단다. 어디서? <세 가지 안부>라는 옴니버스 3부작 영화 시사회에서였어. "10번째 봄 벚꽃이 흩날리는 당신의 마음에 세 가지 안부를 묻습니다"라는 의미를 가진, 세월호 10주기 영화상영회였어. <그레이 존>, <흔적>, 그리고 <드라이브 97> 세 편의 영화가 각각 언론인들, 유가족 부모님들, 그리고 생존자 친구들의 고백이자 안부인사더구나.
그중 세 번째 작품 <드라이브 97>에 너와 같은 이름 2반의 김민지가 나왔단다. "스물여덟의 우리가, 열여덟의 너를 만나러 갈게!" 이 카피 속 ‘너’가 민지였어. 그 민지랑 애진과 혜진은 중학교 단짝이었대. 두 친구가 봉안당으로 민지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였지.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도 있었어. <흔적>에 출연한 호성이 엄마 정부자님, <드라이브97>의 오지수 감독과 혜진이 10주기를 맞는 소회와 영화를 찍으며 느낀 점들을 들려주었어.
한 관객이 혜진에게 말했어. 어려운 시간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하셨다는데 이렇게 살아주셔서,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혹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계획이 있는지 물었어. 혜진이 어떻게 답했는지 아니? 잔잔한 목소린데 오래 여운이 남는 말이었어.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저는 미래를 믿지 않게 되었어요. 10년 전 민지 보낼 때 장례식장에서 민지 아빠가 저를 꼭 안아 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너는 이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저는 그렇게 현재만 사는 거 같아요.“
혜진이만 아니라 애진이도 그러더구나. 참사 후 애진의 인생 좌우명이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고 살자"로 바뀌었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가장 하고 싶은 응급구조사가 되기로 했대. 화면에 애진의 오른쪽 손목에 ‘20140416’ 숫자가 적힌 ‘노란 리본’ 모양의 타투(문신)가 보이더구나. 노란 팔찌는 색이 바래거나 끊어질 수 있고 깜박할 수도 있잖아? 타투는 항상 몸에 있으니 늘 볼 수 있어 좋대. 세월호 생존자로서 애진이가 초기부터 열심히 활동하는 건 너도 알지?
사랑스런 민지야!
그런데 내가 말이야 민지야, 네게 사과할 게 있어. 영화 속 2반 김민지를 너라고 잘못 안 거 있지. 그런데 합창단 공연 가는 길에 가협에서 아빠 김내근 님과 처음으로 인사했지 뭐니. 내가 용기를 내어 네게 쓴 편지를 보여드렸지. 아, 아빠가 확인해 주신 덕분에 헷갈린 지점을 수정할 수 있었단다. 민지야 정말 미안해. 이쁜 꽁민지를 직접 만나본 적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구나. 더욱 보고싶구나 민지야.
아빠를 뵙고 나니 "그땐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줄게"라는 아빠 말씀이 내 맘에 더 울리고 있어. 너희들에겐 “가만히 있으라” 하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가장 먼저 탈출해 버렸잖아. 그건 이 나라의 민낯이었어. 나는 어른으로서 그것만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나곤 해. 그래서 나는 지난 10년간 점점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 그리고 아이들에겐 아빠처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게 됐어.
지난 10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겠지, 민지야? 변한 게 없다며 답답해 하다가도 마음을 바꾸는 게 바로 이런 이유야. 우선 내가 변해버렸거든. 내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게 됐잖아. 별이 이끌어 준 10년이었다고 고백하고 싶구나. 미약하나마 또 목소리를 내고, 함께 기억할게 민지야.
민지야,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