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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Mar 29. 2024

그땐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한다고 아빠가 약속할게

세월호로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1반 김민지에게

차갑게 식어 버린 내 목소리마저

아직도 이렇게 널 부르잖아

이 길에서 널 만날 수 있다면

그날처럼 널 보내지 않을 거야

눈물이 멈춘대도

너를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아

oh 니가 다시 올까 봐 기다릴게

나 여기 서 있을게

늦기 전에 지금 내게 돌아와 줘

_ 나비, '길에서' 중


가수를 꿈꾸며 오디션 보길 즐기는 민지야!


네가 친구들과 열심히 연습했던 노래 '길에서'를 듣고 또 들으며 네게 안부를 묻는다. "하루 종일 비가 와서 네 얼굴이 또 생각나. 눈물이 났어."라고 시작하는 노래 가사가 비오는 오늘 날씨와 너무 잘 어울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아직도 널 부르잖아"라며 친구들이 코러스를 넣고 합창을 했다지?


이비 그치면 이제 본격적으로 벚꽃이 망울을 터뜨리고 봄 인 사를 하겠지. 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활발하고, 조용한 것 같으면서도 끼가 많은 민지가 노래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중저음의 네 목소리와 어울리는 노래였지? 그래, 가수도 되고 수의사도 되고, 꿈꾸는 것 하고 싶은 것 다 해 민지야!




꽁민지, 꽁민지!


너를 부르시는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네가 하도 작고 사랑스러워 콩만하다고 아빠는 너를 늘 콩민지라 부르셨지. 아빠에게 네가 얼마나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딸인지, 내가 어찌 필설로 다 쓸 수 있을까. 엄마 없이, 아빠 혼자 17년간 너와 두 살 위 오빠를 키우셨잖아. 친구 같은 단짝 부녀의 전화 수다 한 번 엿들어 볼까?


"아빠! 나 선부동에 도착했어. 아빠는 뭐해?"

"꽁민지, 뭐하긴, 일하지."

"아빠~~ 이번 주말에 오디션인 거 말했쥐~잉? 이따가 혜원이 집에 가서 강아지 보고 갈 거야. 앙! 앙! 앙!"

"알았어 꽁민지."



아빠와 오빠에게서 너를 앗아간 이 나라, 도무지 퇴행만 거듭하는 이 나라를 어찌해야 하니 민지야 . 해마다 이맘때면 나는 '별에게 보내는 편지' 쓰기가, 별을 부르는 맘이 복잡한 거 있지. 속절없이 부끄러워지고 말이야. 아빠와 오빠의 아픔은 오죽하겠니. 그럼에도 나는 부끄러운 손이나마 내미는 맘으로, 곁에 가만히 있는 맘으로, 보잘것없는 글을 또 쓰는구나.  


아빠가 지난 2018년 4월에 네게 쓴 편지 기억하지? 아빠의 목소리 조금만 옮겨 볼게.


우리 꽁민지,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행복하게 즐겁게 우리 민지 하고 싶던 거, 강아지도 키우고 고양이도 키우고, 우리 민지, 아빠와 오빠를 위해 노래도 부르고, 그렇게 잘 지내고 있어야 돼. 우리 딸 꽁민지, 아빠가 널 만나러 갈 때까지… 그때도 꼭 아빠 딸로 만나 줘야 한다. 그땐, 우리 딸 꽁민지가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한다고 아빠가 약속할게. 너무너무 사랑하고 미치도록 보고 싶 은 그리운 내 딸 꽁민지. _〔그리운 너에게〕, 57-57쪽



 "그땐, 우리 딸 꽁민지가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한다고 아빠가 약속할게.“     


민지야, 아빠 마음 알지? 엊저녁에도 안산에서 나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단다. 어디서? <세 가지 안부>라는 옴니버스 3부작 영화 시사회에서였어. "10번째 봄 벚꽃이 흩날리는 당신의 마음에 세 가지 안부를 묻습니다"라는 의미를 가진, 세월호 10주기 영화상영회였어. <그레이 존>, <흔적>, 그리고 <드라이브 97> 세 편의 영화가 각각 언론인들, 유가족 부모님들, 그리고 생존자 친구들의 고백이자 안부인사더구나.   

  

그중 세 번째 작품 <드라이브 97>에 너와 같은 이름 2반의 김민지가 나왔단다. "스물여덟의 우리가, 열여덟의 너를 만나러 갈게!" 이 카피 속 ‘너’가 민지였어. 그 민지랑 애진과 혜진은 중학교 단짝이었대. 두 친구가 봉안당으로 민지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였지.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도 있었어. <흔적>에 출연한 호성이 엄마 정부자님, <드라이브97>의 오지수 감독과 혜진이 10주기를 맞는 소회와 영화를 찍으며 느낀 점들을 들려주었어. 


한 관객이 혜진에게 말했어. 어려운 시간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하셨다는데 이렇게 살아주셔서,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혹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계획이 있는지 물었어. 혜진이 어떻게 답했는지 아니? 잔잔한 목소린데 오래 여운이 남는 말이었어.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저는 미래를 믿지 않게 되었어요. 10년 전 민지 보낼 때 장례식장에서 민지 아빠가 저를 꼭 안아 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너는 이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저는 그렇게 현재만 사는 거 같아요.“     


혜진이만 아니라 애진이도 그러더구나. 참사 후 애진의 인생 좌우명이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고 살자"로 바뀌었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가장 하고 싶은 응급구조사가 되기로 했대. 화면에 애진의 오른쪽 손목에 ‘20140416’ 숫자가 적힌 ‘노란 리본’ 모양의 타투(문신)가 보이더구나. 노란 팔찌는 색이 바래거나 끊어질 수 있고 깜박할 수도 있잖아? 타투는 항상 몸에 있으니 늘 볼 수 있어 좋대. 세월호 생존자로서 애진이가 초기부터 열심히 활동하는 건 너도 알지?



사랑스런 민지야!     


그런데 내가 말이야 민지야, 네게 사과할 게 있어. 영화 속 2반 김민지를 너라고 잘못 안 거 있지. 그런데 합창단 공연 가는 길에 가협에서 아빠 김내근 님과 처음으로 인사했지 뭐니. 내가 용기를 내어 네게 쓴 편지를 보여드렸지. 아, 아빠가 확인해 주신 덕분에 헷갈린 지점을 수정할 수 있었단다. 민지야 정말 미안해. 이쁜 꽁민지를 직접 만나본 적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구나. 더욱 보고싶구나 민지야.        


아빠를 뵙고 나니 "그땐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줄게"라는 아빠 말씀이 내 맘에 더 울리고 있어. 너희들에겐 “가만히 있으라” 하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가장 먼저 탈출해 버렸잖아. 그건 이 나라의 민낯이었어. 나는 어른으로서 그것만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나곤 해. 그래서 나는 지난 10년간 점점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 그리고 아이들에겐 아빠처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게 됐어. 

 

지난 10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겠지, 민지야? 변한 게 없다며 답답해 하다가도 마음을 바꾸는 게 바로 이런 이유야. 우선 내가 변해버렸거든. 내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게 됐잖아. 별이 이끌어 준 10년이었다고 고백하고 싶구나. 미약하나마 또 목소리를 내고, 함께 기억할게 민지야.


민지야, 고마워! 사랑해!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1반 김민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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