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좀 더 잘 노는 인간으로 늙어갈 수 있을까?
월요일 아침 도착한 시드니에서 어느새 토요일 밤이 깊었다. 한주를 통째로 놀고먹으며 지내다 보니, 노는 게 너무 좋다. 춥고 뻣뻣한 나라 한국을 잊을 지경이다. 자유롭고 활기찬 시드니니엔 노는 사람들로 넘치는 거 같다. 전철도 타고 트램도 타고 패리도 타고 버스도 탔지만 발로 가장 많이 돌아다녔다.
오늘 하루 동안 발로 걸어 다닌 지역을 이름만 정리해 본다. 바랑가루투어, 더 록스마켓, 스탠리 스트릿 페스티벌, 패딩턴 그리고 옥스퍼드 스트릿. 오늘의 걸음 수는 29,185보고 한 주간 합은 155,006보를 찍었다. 길고 긴 옥스포드 스트릿을 걷고 패딩턴 주택지를 돌고돌았다. 토요 장터 록스마켓이며 거리축제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노는 내가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보고 또 봐도, 매일 또 새롭고 토요일 오늘은 또 다른 도시의 얼굴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걸까. 밤늦도록 사람들로 북적이고 거리 버스킹도 넘쳐나고 있다. 좀 놀 줄 아는 사람들이 이곳에 다 모였나 싶다. 내가 전생에 도대체 나라를 몇 개나 구했길래 노는 사람들 속을 누비냔 말이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더 잘 먹는다고 했던가. 놀아 본 사람이 더 잘 논다는 말도 되겠다. 이제 절정을 향해 가는 마디 그라 축제 때문에 시드니는 더욱 축제요 노는 분위기임에 틀림없다. 가는 곳마다 거리마다 펄럭이는 무지개깃발이다. 사람들은 모두 놀기로 작정한듯 놀고 있었다. 맥주 한 잔 놓고, 커피 한 잔 놓고, 먹고 웃고 놀고 있었다.
웃고 노는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이 도시의 토요일을 채우고 있었다. 아, 나는 늙도록 일만 하며 심각한 얼굴로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다 죽을 뻔했지 뭔가. 남반구의 낯선 시드니에서 놀이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뭉클하는 내 가슴은 뭐지? 저마다 재미있게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며 놀고 있는 사람들. 아, 놀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도 기계도 놀 수 있게 돌아가는 시스템은 얼마나 멋진가.
어떻게 하면 더 자유롭고 신나게 노는 인간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날개에 관한 단상
양선희
결혼비행을 끝내고 죽은 수캐미들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는다. 몸통 따로 날개 따로 떨어져 있다. 몸의 꿈과 날개의 꿈을 달리 품고 저승으로 간 것일까?
결혼한 여왕개미는 제일 먼저 제 몸에서 두 날개를 떼어낸다. 정착해 일가(一家)를 이루려면 더 이상 높이 더 높이 비상을 꿈꾸어서는 안 되는 법(法)일까?
일생(一生)을, 양식을 모으는 육아에 힘쓰는 집을 지키는 궂은일을 도맡는 일개미는, 날개가 없다. 날개는 생업(生業)을 방해해서? 날개는 외계(外界)와 간통해서?
사랑하는 엄마!
엄마가 떠난 후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이 잘도 돌아간다. 아니, 아무 일 없는 건 아닌데, 엄마가 없는 게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이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야. 참 야속한 세월이다 그쟈?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이 세월은 고장도 없네~~" 딱 엄마가 부르던 그 유행가 가사 그대로지? 시 '날개에 대한 단상' 을 가져와 옮겨 봤어. 엄마 떠난 후에 가끔 읽는 시야.
여행 중에 즐겁게 놀고 웃고 쏘다니다가 울컥하고 엄마 생각이 나곤 해. 화가 나려 할 때도 있고 눈물이 찔끔 하기도 하지. 내 어린 시절을 돌아 보면 울 엄마 참 노래 잘하고 흥이 있는 사람이었어. 동네 잔치가 있으면 엄마가 무조건 노래했잖아. 젓가락 장단도 잘 두드렸고 말이야. 재주 많고 총기 있고 열정 있는 엄마였어.
그러나 일찍이 한 번도 날개를 펴 본 적 없는 엄마. 아니 너무 일찍이 날개를 떼고 주저앉혀진 엄마였지. 아내요 며느리요 엄마로, 줄줄이 자식 낳고 남편과 어른들 뒷바라지로, 날개를 잊어야 살 수 있었던 엄마. 비상을 꿈꾸지 않도록 길러진 여자, 집안에만 붙어 있어야 했던 엄마였지. 야속한 세월이었어.
수캐미도 일개미도 딱하긴 마찬가지였지 물론.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야속한 건 야속한 거야. 날개와 삶을 바꿔야 했다니, 아, 엄마, 그 삶을 한번도 제대로 헤아려 본 적 없었던 못된 딸 용서해 줘. 엄마의 삶이 싫어서 엄마처럼 안 살리라 했건만, 나도 날개를 떼는 법부터 배웠던 거 같지? 엄마가 그랬듯, 놀 줄 모르는 인생 한없이 진지하게만 살다 죽을 뻔한 인생이었지. 그러나 엄마 딸은 날개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지?
날개를 퍼덕이며 날기를 연습하는 딸을 위태위태 바라봤을 엄마, 그 맘 알아. 날아도 살 수 있었어 엄마. 다시 나는 딸을 지켜봐 준 엄마 고마워. 엄마보단 내가 조금 더 날고 있으니, 엄마 손녀는 더 날 거야. 그렇게 살자고 이렇게 엄마 유산 탕진하며 싸돌아다니고 있잖아. 잘 놀다 갈게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