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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퀸즈랜드 골드코스트 56km 백사장에 드러누워

내 눈앞에는 푸른 하늘과 태평양이 철썩이며 밀려오고 밀려간다.

by 꿀벌 김화숙

보더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호주 퀸즈랜드 주 골드코스트 해변 백사장에 누웠다.


성수기를 지난 해변이라 한가한 편이다. 서핑을 배우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이고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안전을 위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을 여기저기 정해 둔 게 보인다. 안전 팻말이 곳곳에 있고 안전 요원들이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한없이 한가하고 평화롭게 해변을 즐기고 있다.


무려 40km나 되는 하얀 백사장이다. 내가 동해안에서 자라서 바다 좀 안다고 착각했구나. 평생 가 본 해변을 다 모아 봐도 퀸즈랜드만한 백사장을 만들긴 어렵겠다. 남북으로 해변이 56km란다. 내가 본 해변 중 가장 크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넓고, 가장 탁 트였다. 거칠 것 없이 고운 모래밭이다. 일본 자본이 들어와 비치를 개발해서 옛날의 멋이 많이 사라졌다지만 내 눈엔 높은 고층빌딩 호텔들보단 맑고 푸른 해변만 보인다.


하늘은 말로 할 수 없이 투명하게 푸르고 맑다. 시원하게 아름답다. 눈앞의 하늘도 태평양도 30도의 뜨거운 태양열로 함께 지글지글 반짝인다. 우리나라도 사계절 햇볕이 좋은 나라지만, 이곳의 햇볕은 투명하고도 투명하게 뜨겁다. 백사장에 드러누우니 온 세상이 내 것인양 가슴이 넓어지는 것 같다. 부드러운 바람이 파도소리와 함께 몸을 시원하게 쓰다듬는다. 내 등 아래 모래밭은 침대인양 포근하게 몸을 받쳐준다. 2월 26일 수요일 한낮의 태양 아래 누워 있었다. 내가 알고 지낸 계절도 동서남북도 절대 기준이 아닌 걸 알겠다.


며칠 후면 북반구의 겨울나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현실이 아니길 바라며....




엄마!


엄마 딸이 너무 소심해서 여행 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 하나 했어. 오늘 쇼핑센터 구경하다 정말 맘에 드는 모자를 하나 찜했거든? 바로 사기 보단 습관대로 좀 더 둘러본 후에 돌아와서 사야지 했어. 근데 말이야, 호주의 쇼핑센터가 정확히 몇 시에 문닫는지 그걸 의식하지 못하고 돌아다닌 거야. 여유있게 요것조것 구경하다 그 모자 가게로 돌아갔겠지? 세상에 문이 닫혀 있더란 말이야. 제법 멀리 돌아다닌 거였어.


레게머리가 주렁주렁 달린 털실 비니 모자였어. 모자만 보면 빨강 녹색 노랑 세 가지 색으로 넓은 띠가 나눠진 크게 특별할 것 없는 털모자인데, 레게머리가 포인트라 할 수 있지. 나한테 너무나 어울리고 맘에 들었단 말이야. 딱 쓰는 순간 기분이 확 좋아지면서 노래하고 춤이라도 출 분위기였어. 완전 맘에 들었는데 왜 그자리에서 바로 살 생각을 못해 봤을까? 시공간의 감각을 왜 좀 더 예민하게 켜놓지 못했을까?


더 둘러 보고 온다고 미루지 말고 바로 샀어야 하는 건데, 정말 후회할 짓을 한 거야. 이번 여행은 정말 내가 용감하게 저질렀잖아 엄마. 그런 여행이라고 매순간 용감하고 통크게 시원시원 모든 걸 대처하는 건 아닌 게 보이지? 특히 물건을 살 때 내가 참 재고 또 재는 편이잖아. 쓸데없이 낭비하는 건 아닌지, 이 물건 없으면 안 되는 건지, 꼭 살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아, 과감히 유산탕진 쇼핑할 걸, 몇 만 원이었는데 겨우.


다음 기회엔 이런 실수 반복하지 않을 거야. 기분 좋게 용감하게 떠난 여행에서조차 난 쇼핑 탕진을 못한 거야. 너무 알뜰히 살피고 재고 하느라, 맘에 드는 모자 놓쳐 버렸어. 몸에 밴 습관 쉽게 바뀌는 거 아냐 그치? 해 봐야 할 수 있는 일임에 틀림 없어 그치? 너무 후회스러워.


엄마, 그 넓은 백사장에 드러누워 끝없는 바다와 하늘을 다 내것인양 가슴에 안아 봤다는 소리, 참 무색하고 부끄럽다. 그래봤자 새 가슴은 새 가슴이네. 하늘처럼 바다처럼 단숨에 내 마음이 넓어지는 일은 없다는 거 알겠어 엄마. 모야도 나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어 엄마. 까이꺼 저질러 살 걸.


레게머리 달린 모자는 없고 그걸 써보며 쇼핑센터에서 찍은 사진만 남았어. 사진을 볼수록 다짐하게 돼.


아, 잊지 않을 거야. 반복하지 않을 거야. 다르게 살아 볼 거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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